시각장애 피아니스트 박사의 꿈

새해 희망인터뷰: 불가능과 불편의 차이를 아시나요?

등록 2001.01.01 09:23수정 2001.01.0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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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8일, 미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학위 수여식장에 특별한 박사가 탄생했다. 시각장애인이자 피아노 전공 음악학박사(Doctor of Musical Art)인 안영호(39) 씨.

이날 그의 학위수여는 길고 험난한 역경에 대한 승리의 상징이자 장애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앞날에 대한 경외의 표시였다. 많은 미국 신문과 방송에서는 그의 학위수여를 보도하여 '한국인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박사'의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악보와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이 필요 없는 그의 특이한 연주가 무대에 울려 퍼지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각고의 노력은 그와 더불어 그의 아내 안영금 씨의 몫이었다. 어려운 유학생활에 머리카락까지 빠져가며 고전하는 남편을 위해 온갖 일을 하며 경제를 책임졌던 안씨는 '이제는 남편이 경제를 맡을테니 나도 내 일을 해야겠다'며 웃는다.

안영호 씨는 '브람스와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분석'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기까지 두 곡을 모두 연주해야 함은 물론, 영어와 독일어로 된 방대한 관련문헌을 독파해야 했다. 비장애인들도 힘겨운 박사 학위 취득까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땀이 배인 그의 체험이 장애의 길에서 힘겨워 하는 이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위한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새 해 새 희망의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기원하며...

- 박사 학위 취득을 축하드립니다.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언제입니까?
"1985년 서울신학대 교회음악과를 졸업하고 91년에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으로 왔습니다. 95년에 음악석사학위를 마쳤으며 올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 시각장애 정도는?
"태어나면서부터 시각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물체 혹은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앉았는지 서 있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때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구별할 수 있을 때도 있습니다."

- 피아노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7살에 처음 피아노를 만져 보았으니 대략 32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목포에 살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아주 시골이라 목포 시내에 피아노가 몇 대 있지 않았을 겁니다.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 어느 집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들었어요. 아마 부자 동네였던 것 같은데,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한번만 피아노를 쳐봤으면 좋겠다고 그 집 문을 두드렸지요.

옛날이라 인심이 좋아서 한번 쳐보라고 하셔서 그 때 처음으로 피아노라는 악기를 만져 보았습니다. 그 후 제가 목포 맹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 피아노가 한 대 들어왔지요. 학교에서는 피아노 배울 사람을 단 한명만 선발했는데 저는 떨어졌어요. 그렇지만 가르쳐달라고 한 일년동안 따라 다녔더니 가르쳐 주시더라구요. 그런 식으로 해서 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 미국에 유학 오시기까지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사실은 대학 다닐 때부터 미국에 공부하러 오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80년대 초라 쉽지가 않았습니다. 우선 제가 미혼이었고 당장 생계 걱정에 일단은 유학 가는 것을 접어 두고 '연합세계선교회'라는 시각 장애인들의 재활과 교육을 돕는 선교단체에서 음악 가르치던 일을 하던 중에 제 아내를 만났지요. 제 아내는 그때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점자로 번역하는 자원봉사 하러 왔다가 저를 만나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제 아내는 제가 미국 가고 싶은 생각을 알고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최대한 지원을 할 테니 갈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어요. 제 생각에도 이제는 둘이니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옆에 계시던 사모님께서) 경험이 없으니까 그랬지, 경험 한번 해봤으면 안 했을 거예요.(웃음)"

-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힘들었던 점은?
"미국에 와서 첫 학기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었어요. 샤워를 하고 나면 제 아내가 그러는데 머리카락을 한 웅큼씩 건져냈다고 해요. 제 아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둘이 다 그랬어요. 왜냐면 일반 사람들도 첫 학기는 힘든데 저 같은 경우는 눈이 불편하니까 더 힘들었어요.

그리고 나서는 논문 쓸 때가 좀 힘들었어요. 많은 자료와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 제가 도서관에서 일일이 찾을 수 없으니까 결국에는 누군가와 같이 자료를 찾거나 책을 읽어야 하는 한 단계 더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거기에서 오는 시간적인 소모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최소한 2∼3배가 되는 것이 큰짐이 되었습니다.

피아노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그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악보와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악보를 사서 보면 되지만 저는 그 것을 점자로 옮겨야 하니까 그 옮기는 작업이 시간이 걸리지요. 보통은 제 아내가 해왔는데, 어떤 점자악보들은 이곳 미 국회도서관에 있어요. 그런 사실을 처음에는 모르다가 몇 년후에 알게되어 도움을 받았는데 그나마도 현대곡이라든가 없는 곡들이 있어요.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제 아내가 만들어야 했지요."

- 시각 장애 때문에 연주에 어려움이 겪지는 않는지
"피아노를 치는 방법은 저나 정상인이나 다를 바가 없지요. 다만 저는 먼저 악보를 외우고 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치기까지는 힘들지만 일단 외우면 실수 없이 친다는 장점이 있지요."

안영호 박사와 그의 아내 안영금 씨
ⓒ 2001 안영호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욕심이 많은 지는 모르겠지만 3가지 정도로 정해놓고 있어요. 하나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다고 생각하고 또한 제 자신도 가르치는 것이 좋은데, 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달란트를 이용해서 특별히 피아노에 있어 교회 음악적인 요소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아무래도 피아노를 배웠으니까 계속해서 연주활동을 하고 싶고, 세 번째는 교회 안에서 음악사역을 하고 싶어요.

교수사역을 위해 몇 곳의 미국대학에 지원서를 넣을 계획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봐야겠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어디에서 어떻게 가르치게 하실 지 저는 잘 모르지만, 그러나 사용하실 것은 확신하니까 한국에서건 혹은 미국에서건 상관하지 않고 준비중입니다. 연주회는 지난 10월 박사학위를 위한 연주회를 가졌으므로 1년 정도 준비를 해서 내년 가을쯤 연주회를 열 계획입니다."

- 대학에 자리를 잡을 경우 장애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지?
"미국에서 장애는 불편할 뿐이지 차별의 근거는 아닙니다. 장애인이라고 더 특혜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차별도 하지 않지요. 물론 도움을 줄 여지가 있을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것이 보통입니다. 규모가 큰 대학의 경우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에만 불편하지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교육을 받으셨는데 교육에 있어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교육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교육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볼때 옛날과 현격하게 바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만해도 어떻게 시각 장애인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대학들이 안 받으려고 했어요. 부루베이커라는 미국에서 오신 교수님의 도움으로 입학할 수 있었는데 그건 하나의 단적인 예인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가서도 처음에는 한국 교수님들께서 '네가 이걸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할 수 없다'고 단정을 미리 내려요. 학교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도 비슷한데 만약 제가 무얼 가르친다고 하면 '시각 장애인들이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생각해요. 사실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신적인 어려움을 이중적으로 경험한 적이 많아요.

이런 문제로 인해 제가 노이로제에 걸려 미국 학교에 지원할 때는 미리 시각 장애인이라고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학교 쪽에서 그것은 입학여부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답장이 왔어요. 교수들이 '네가 공부하는데 필요한 점이 있으면 최대한 돕겠으니 말하라'고 해요.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전혀 달라요. 그것이 가장 큰 다른 점이 아닌가 싶네요. 제가 여기에서 공부할 때는 한국에서 느꼈던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어요.

반면에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교수님들께서 '시각 장애인이 어떻게 이런걸 할 수 있겠냐'며 약간 봐주려는 성향이 있었어요. 그러나 미국에서는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전혀 없어요. 미국은 불편함에서 오는 문제를 해소하려는데 초점을 둔다면, 한국은 그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보다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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