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가요분야 시상식, '드럼'이 없었다

'댄스'와 '발라드'에 치우쳐진 문화지형...

등록 2001.01.01 10:35수정 2001.01.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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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형태가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최근 '비트겐슈타인'이라는 그룹을 조직해 돌아온 신해철이 홈페이지에 연재하는 에세이에서, 90년대 초반의 '무한궤도'때나 90년대초중반의 '넥스트'때나 밴드로서 음반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신성우와 배두나가 주연을 맡았던 SBS 드라마<미스힙합 미스터락>의 극중에서, 신성우의 매니저는 "어휴,누구(신성우)는 솔로를 하라는데 그룹을 하겠다고 우기고, 누구(댄스팀의 리더)는 그룹을 하라는데 솔로를 하겠다고 우기고..."라는 '명대사'를 내뱉기도 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들국화', '송골매', '사랑과 평화'등이 수놓았던 80년대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댄스음악계에서는 단연 '그룹'이 유행이다. 여러가지 이미지를 가진 소년들을 오디션을 통해 인위적으로 규합하여 만든 일종의 '상품'이다. 음악성은 기획사로부터 발탁된 후에 몇 가지 훈련을 통하여 신장될 뿐이다. '아트'가 '엔터테이먼트'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힘을 잃어가는 한 반증이다. 솔로의 경우도 사실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대개 댄스는 '그룹', 발라드는 '솔로'가 대세라는 것이다.

어쨌건 '그룹'이건 '솔로'건 음악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연주하는 과정에서는 '밴드'가 참여를 하게 된다. 전 파트를 컴퓨터 작업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말이다. 조성모의 노래도, GOD의 노래도 드럼-베이스-건반-기타의 기타의 기본 구성을 취하게 된다. 그것을 감안했을 때 결국 방송중에 화면에서 돌아가는 'LIVE' 표시는 사기라고 볼 수 있다.

락그룹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무대에는 위와 같은 악기 편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MR(Music Recorded) Tape를 배경으로 깔고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가수나 방송스텝이나 라이브에 대한 의지와 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게 아닌지 우려가 된다.

희한하게도 한국은 음악을 만드는 주체인 밴드의 출연이 귀하다. 미국에서는 락이나 재즈가 아닌 자넷 잭슨이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같은 공연만 봐도 항상 밴드가 등장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반가요에서의 밴드의 등장은 보기가 드물며, 그나마 나오는 밴드들도 '락밴드 혹은 유사락밴드'일 뿐, 재즈나 포크 등 여타 장르는 완전히 물을 먹는다. 많은 연주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방송에서는 이들을 다 썩힐 셈인가. 경기가 여러워서 무대에 올리는 사람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만을 되풀이 하리라는 짐작이 든다.

드럼-베이스-건반-기타의 편성을 취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공연장의 세팅 작업을 어깨 너머로나마 본 사람들은 대충이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악기 볼륨의 밸런스를 맞추고 좀더 섬세하기 위해서 각 위치별로 사운드가 어떻게 뽑혀 나오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정말 까다로운 작업이다.

그런데 마땅히 한국 최고의 세팅 실력을 자랑해야 할 방송스텝이 이러한 세팅 작업을 자주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Y2K'나 'CLICK B'같이 멤버들이 손수 연주를 하는 밴드조차 잭도 꽂지 않은 채 '손가락판 허리케인 블루'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는 가수들과 기획자들의 태만탓도 있을 수 있겠지만 방송의 책임도 적지 않다.

"매체에 있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신중현, '월간SUB'와의 인터뷰중), "미디어가 어떤 음악을 트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취향도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노이즈가든의 보컬리스트 박건, MBC <수요예술무대> 중) 등의 발언에 적극 공감한다. 방송의 태만과 석연치 않은 태도로 인해 공중파를 통해 대중들에게 꽂히는 음악들이 대중의 성향을 결정한다.

물론 대중들의 성향이 매체의 방향을 결정한다고도 반박할 수 있지만 이는 '닭과 알중 누가 먼저?'식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먼저 매를 맞아야 하지 않을까. 방송의 편파성으로 인해 형성된 대중들의 입맛, '예술창작'보다 '상품제작'에 치우쳐진 기획자, 제작자들은 그 치우쳐진 문화지형에 맞춰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방송은 다시 몇몇 장르의 가수들을 출연시킬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할 주체로서 방송이 가장 먼저 움직일 필요가 있다.

작년 연말, 각 방송사에서는 가수들의 놀이터를 만들어 신나게 한판 축제를 벌였다. 하지만 거기에 출연한 '연예인'들과 그 분위기로부터 거리를 두고 바라본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대중음악에 관한 방송에서 어찌 드럼세팅 하나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인가. 그 떠들썩한 분위기속에서도 '대중음악계의 실패'는 감지되고 있었다.

연예인 몇몇이 중국, 대만, 홍콩, 동남아 등지에 진출해서 떼돈을 벌어왔다는 사실이 성공을 가늠할 단서가 되지 못한다.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 한, 한국의 대중음악은 천민자본주의의 상징적 존재가 될 뿐이다. 방송, 대중, 기획자가 모두 대오각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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