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사는 외톨박이'들과의 대화

살아선 남 뒤치닥거리, 죽어선 우리에게 용기

등록 2001.01.02 20:33수정 2001.01.0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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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불예방에 관한 공익광고가 티비에 자주 나오더군요. 그 광고의 광고문안 중에 산불 때문에 사라져간 야생동물을 다시 보려면 5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더군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사라져가지만 50년이 아니라 500년을 기다려도 다시 볼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숨어사는 외톨박이>(윤구병 외, 뿌리깊은나무)는 바로 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5000년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늘 응달에서 살아온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문화의 빛에 가려서 사라져가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내시, 백정, 장돌뱅이, 기생 머슴,땅군...이 그들입니다.

이 책이 쓰여진 때가 1977년이고 그때에 이미 대부분 이들은 고령이었으니까 지금은 모두들 고인이 되셨을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은 더 더욱 중요한 역사적인 사료의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적지 않은 책 중에서 가장 소중한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전 주저 없이 이 책을 꼽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종규 님이 저번에 기사에서 이 책을 소개할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관련기사 - <책벌레> 예쁘고 깨끗한 헌책방을 꿈꾼다 / 최종규 기자

늘 천대받고 구박받았던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소중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들 몇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마지막 내시 정완하

이분은 이 책이 쓰여진 당시 양주군에 있던 고자마을 혹은 내시마을에 살고 있던 분으로서 기골이 장대하고 목소리도 우렁차지만 어딘가 애잔하고, 내시부에서 칙첩을 받았던 분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분입니다.

그 동안 생활이 많이 어려워 살림살이를 골동품수집상에게 모두 팔았으며 마지막으로 왕비로부터 받았다는 손때 묻은 반닫이만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마지막 내시입니다.

뱀처럼 울며 사는 땅꾼 마씨

조선시대 문둥이보다 더 징그러워한 것이 땅꾼이었답니다. 당연히 마을 사람과 같이 못살고 산꼭대기에서 움집을 틀어놓고 외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땅꾼입니다.

이름을 밝히기도 거부한 이 땅군은 "아무래 계급이 없고 직업이 없다고 하지만 말이외, 예나 지금이나 땅군을 사람으로 쳐줍니까? 선상님 같은 분도 만일 저하고 하룻밤을 이 방에서 자자고 하면 말이외, 아마 펄쩍 뛰실 거 아나갔음메. 허허"하며 사람에게 귀엽을 받지 못하는 뱀처럼 외로움에 고통받으며 살아서 평생을 울고 지낸 분입니다.

소를 신성시했던 백정들

백정들은 자신의 일을 신성시 여겨 소의 영혼을 하늘 나라로 보내는 구실을 한다고 믿었으며 소를 잡는 도살장을 천궁(소의 넋이 하늘 나라의 대궐로 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불렀던 백정도 더 이상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대신 소를 돈을 벌어다 주는 고깃덩어리로 여기는 장사꾼만 있을 뿐입니다.

동네종놈 재지기. 전복순

재지기란 동네의 초상집과 혼인집의 잔심부름과 양로당 노인들의 시중 따위를 하면서 그 대신에 동네의 공동으로 소유하는 논 다섯 마지기쯤을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197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재지기를 하고 있던 전 복순할머니는 그 동네의 어떤 사람에게도 말을 높여야 하며, 심지어 어린애들마저 양반이 상놈에게 그러는 것처럼 말을 낮춥니다.

그리고 동네에 초상이 나면 제일 먼저 제지기 할머니에게 알려진답니다. 왜냐하면 초상이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 곡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제지기이며 제지기는 친부모가 죽었을 때와 똑같이 아이고 아이고하고 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그런 일을 어떻게 할까? 하고 황당해 할 것입니다.
하지만 1977년 그 당시에도 요즘 같이 살기 어려웠나 봅니다.

제지기를 두고 그 당시 박문호라는 사람이 한 말을 되새겨 봅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그 천대를 견디면 지지기 노릇을 하려고 할 사람이 있으라고 생각되시었지만 그렇지 않아라. 지난 겨울에 남안 향고에 지지기가 비었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다섯 사람이나 서로 재지기를
허것다고 나섭디다."

나무를 깎아 덩달아 복까지 깍아먹는 목수 배희한

배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일본 궁목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목수는 천년된 나무로 건물을 지으면 그 건물이 천년을 버틴다고 믿었으며 그 나무를 베면 그 옆에다 새로운 한 나무를 심는다고 하더군요.

천년이 지나 지었던 그 건물이 허물어지면 예전에 심었던 그 나무의 수령이 천년이 될 테니 그 나무로 또다른 궁을 짓는다는... 나라는 다르지만 그 일본궁목수의 건축관은 배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분을 취재하던 1978년 마침 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이 있었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배희한 목수가 한 말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으로 야바위 놀음을 해서는 안돼. 천벌을 받어. 집은 돈으로 지어지는 게 아냐. 돈 먹자고 짓는 집은 집이라고 할 수 없어. 그런데 어찌된 셈판인지 나라가 온통 장삿길로만 짜고 들어서 이제 사람이 사는 집에서까지 이문을 먹으려고 야바위 판을 벌여."

순종황제의 인산에도 참여했던 염쟁이 육십년의 김봉희

1980년 일흔여섯 살인 김봉희 노인은 염쟁이입니다. 한때는 순종의 인산에도 참여했으며 이기붕과 박마리의 염까지 했었고 돈을 많이 벌었지만 취재 당시(1980)에는 한달 벌이가 십만은 남짓해져서 예전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분의 글을 읽으면서 저희 동네에 있던 상여를 타고 구성지게 "이제가면 언제 오나"를 외치던 동네어른이 생각납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달래주었던 그 분은 정작 당신이 돌아가셨을 땐 자신의 임무를 대신할 사람이 없어 녹음기를 상여에 매달아 가야만 하셨던 그 분이 생각납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분들은 굳이 책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마을마다 솥을 떼우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가마솥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구멍이 생기는데 그 구멍을 메워주는 분들이었지요. 그분들이 와서 마당한켵에서 일을 할 때면 벌겋게 녹아 내리는 쇠붙이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고향엔 담약(담결릴 때 먹는 약)을 만들어 파시는 어른이 계셨습니다. 물론 값도 싸고 잘 들어서 인근마을뿐만아니라 먼 곳에서도 소문을 듣고 그 약을 사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벌써 돌아가셨고 그 기술을 전수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또 저희 할아버지산소의 축대를 자연석으로 멋지게 쌓아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 축대는 요즘 기계로 깍아만든 돌만큼 번듯하지는 않지만 튼튼하고 자연미가 참 보기 좋지만 그 축대를 쌓으신 분도 더 이상 이 세상분이 아니며 요즘에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그렇게 축대를 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그런 분들은 그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사셨던 그 분들의 삶은 또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따지고 보면 살아서는 남의 뒷치닥거리를, 죽어서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그 분들이야 말로 우리들의 또 다른 버팀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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