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영화 <아이다호>의 질문, '자신이 누구인가'

등록 2001.01.28 16:49수정 2001.01.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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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가게에 <아이다호> 무삭제판이 있길래 주저하지 않고 빌렸다. <거미여인의 사랑>과 함께 과거 퀴어 영화의 대명사로 불려졌던 이 영화는 감상하기 전부터 벌써 큰 흥미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던 셈이다.

마이크와 스콧 그리고 밥, 이 세 사람은 주류사회에서 일찌감치 동떨어진 인물들이다. 도둑질이 주업인 밥은 거리세계의 정신적 지주로써 권총을 쏘며 강도질도 하고, 마약과 도박에 찌들어 있으며, 성욕을 못이길 때는 거리의 소년들을 집적거리는 제 멋대로 인생이다.


스콧은 재력가이자 한편 시장이기도 한 부르주아지를 아버지로 둔 20대의 청년이지만,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속박을 떨쳐 버리기 위해 거리를 전전하며, 밤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팔고 있다.

마이크는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불행한 어린 시절을 간직한 채 삶의 질곡을 내달리는 노동계급의 산물이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역시 몸을 팔지만, 마이크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섹스하고 싶은 감정', 즉 사랑에 대한 갈구와 함께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깊은 향수로 얼룩져 있다.

영화는 마이크가 아이다호의 황량한 도로에서 서성거리는 걸로 시작된다. "난 이 길을 알지. 길은 누군가의 얼굴 같아. 일그러진 얼굴"이라고 중얼거렸던 마이크. 이 말이 끝난 뒤 가느다랗게 손가락을 떨든 그는 길바닥에 푹 쓰러지고 만다.

이윽고 화면은 마이크가 황량한 도로 위에 서 있게 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관객에게 설명한다. 마이크와 스콧의 관계, 밥의 등장, 마이크와 스콧이 어머니를 찾아 같이 떠나는 여행, 그리고 스콧이 이태리에서 만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홀로 포틀랜드로 돌아와 남창 생활을 하게 되는 마이크 등등.

이 영화에서 밥은 아이러니라는 안경을 통해 유머와 긴장을 증폭시키면서 스토리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밥은 스콧에게 제2의 아버지인 동시에 스콧이 처음 사랑을 느꼈던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즉, 밥을 통해 반항아 기질인 스콧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밥은 장애물로 대치되고 <아이다호>의 스토리는 반전된다. 그것은 스콧이 여성과 결혼,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주류사회로 편입되는 드라마틱한 장면과 결부된다.

고급승용차에 내리는 스콧을 알아보고 다가간 밥에게 "한 때 당신을 사랑했지만, 이제 다시는 나를 아는 채 하지 말라"는 스콧의 냉담한 반응.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밥은 그날 밤 하느님을 찾으면서 차가운 돌이 되어 버렸다. 밥의 시신 주위에 앉은 거리의 형제들. "밥은 천국에 있어."


팽팽하지만, 모호한 긴장감은 스콧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해결된다. 목사의 기도문이 엄숙하게 낭독되는 그 순간 공동묘지 저쪽에서 음악소리가 낭자한 가운데 실성한 듯 처절한 소리를 지르는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보인다. 밥의 장례식!

관객은 당황하게 된다. 체제 안에 갇혀 살면서도 언제나 체제의 저 편에 있기를 원했던 길거리의 사람에게 이렇게 형편없는 장례식은 무슨 의미일까? 구스 반 산트는 이 의미를 검은 정장에 넥타이를 맨 스콧의 싸늘한 눈빛과 대조하면서 설명한다.

스콧 아버지의 장례식은 스콧 자신이 주류사회에 완전히 편입했음을 입증하는 기념식이었고, 밥의 장례식은 이러한 스콧을 묻어버리는, 다시 말해서 과거 밥을 사랑했던 스콧을 묻어버리고, 마이크가 사랑했던 스콧을 묻어버리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마이크는 아이다호의 원점에 있다. 그는 성장했다. 과거와 비슷할 수 있어도 결코 동일할 수 없는 미래를 겪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가 마구 뒤엉키면서 그는 이 모든 것을 잊고 싶어한다. 또 다시 푹 쓰러지고!

<아이다호>의 전체를 관통하는 통일성은 '자신이 누구인가!', 바로 이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동으로 점철되고 있다. 차라리 아메리카리즘의 사생아가 되기를 원했던 스콧과 자기 삶을 콘트롤할 능력도 부재한 채 범죄와 거짓으로 삶을 살아 온 밥, 절망적인 과거를 잊고 싶어하는 마이크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천천히 돕는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없다.

이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이것이 실은 대단히 단순한 스토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스토리텔링의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아이다호>의 캐릭터가 동성애자라는 점은 관객의 정서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게이 영화가 아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다호>의 성격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면, 나는 이 영화가 <오즈의 마법사>와 같이 환상적인 차원의 성장영화가 아닌,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상상할 수 있었던 흑백의 성장영화가 아닐까 한다.

영화가 끝난 뒤 그 여파는 아직도 혼란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라고 대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다호>의 두 번째 반전은 감상이 다 끝난 다음에 찾아오는 바로 이 느낌일 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1991) 감상문
감독 : 구스 반 산트  주연 : 리버 피닉스, 키아누 리브스

덧붙이는 글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1991) 감상문
감독 : 구스 반 산트  주연 : 리버 피닉스, 키아누 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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