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4자매의 뜨거운 향학열

"한글 배우며 세상과의 거리 좁혀요"

등록 2001.02.21 13:16수정 2001.02.2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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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4자매 할머니들이 선생님이 부르는 대로 열심히 '받아 쓰기'에 열중이다.

요즘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의 파주시여성회관에서는 4자매의 할머니들이 늦깎이 향학열을 불태우느라 여념이 없다. 김채봉(75. 파주시 금촌동), 채남(71. 파주시 금촌동), 복순(68. 파주시 금촌동), 채희(66. 파주시 금촌동)등 4자매가 주인공.

이들 할머니들은 파주시에서 무료로 실시하고 있는 한글 기초과정을 배우며 문맹탈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친자매인 이들 할머니들은 1년전 먼저 공부를 시작한 큰언니 채봉 씨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의리를 끊겠다"는 반협박에 못 이겨 처음 연필을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글공부의 재미는 물론 4자매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할머니들은 하루 2시간씩 한글 기초교육을 받는다. 수업시간엔 한시도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을 정도로 진지하다. 책상에 앉으면 선생님이 부르는 대로 받아쓰기를 하는 수줍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기 전 편지가 와도 읽을 수가 없어 편지를 들고 옆 집으로 가야 했다. 또 거리를 걸어도 장님이나 다름 없었다. 요즘은 한글을 배우고 나서 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멀기만 했던 세상과의 무한한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김채봉 할머니는 한글을 배우고 나서 사람들의 거짓말이 보인다고 했다. '공짜로 준다', '한 개 더 준다'는 등 광고도 온통 거짓투성이라고 요즘 세태를 꼬집는다.

막내 채희 할머니는 "큰언니의 협박에 못이겨 막상 공부를 시작했지만 한글을 배우고 나서는 자식들을 봐도 떳떳하다"며 "요즘은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간판 읽는 재미로 산다"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

네자매 할머니에게는 꿈이 있다. 한글을 다 배우고 나면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자식들과 손주들에 대한 사랑을 편지에 담아 보낸다는 희망에 요즘 할머니들의 하루는 너무 짧다.

이들은 매주 화, 목, 금요일 등 일주일에 3일간 수업을 받는다. 때를 놓친 공부가 쉽지는 않지만 한글을 배워가며 세상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즐거움에 수업시간이 마냥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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