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는 '재벌'도 있습니다

[1주년기념 해외게릴라 리포트2] 스티브김 인터뷰

등록 2001.02.21 13:26수정 2001.03.1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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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사회에서 최고의 갑부로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벤처기업을 창업해 '순식간'에 미국의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한 인물입니다. 정보통신기업인 자일랜(Xylan)사로 미 벤처업계의 기린아로 등장한 김윤종(스티브 김, 51)회장이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그는 자일랜을 20억달러(약2조5천억원)에 프랑스의 알카텔사에 매각한 후 현재 이 회사와 합작으로 설립한 벤처투자 및 자문회사인 알카텔 벤처스의 회장입니다. 일본에 빌게이츠 다음 가는 거부로 불리는 손정의 씨가 있지만 그는 교포3세로 거의 일본인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반면에 교포1세로 군대까지 나온 후 미국으로 건너간 김 회장은 사실상의 해외교포 최고의 거부인 셈입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엄청난 부를 거머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특이한 것은 그의 돈 써 나가는 방식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막상 벌고난 후부터는 '쓸 줄을 몰라하는' 이들에 비해 보면 그의 삶은 확실히 '특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왜 그처럼 돈을 쓰는 데 열중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창간기념 특집으로 특이한 '재벌'인 그를 로스엔젤레스의 베벌리 힐스 저택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최근 연변 과학기술대학(총장 김진경)은 미국에 있는 한 교포로부터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한 재미교포 거부가 연간 10만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연변 과기대는 중국동포들이 재학생의 대부분인 중국 내 거의 유일한 민족대학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재미교포사회에서 스티브 김이라는 이름은 '통 큰 자선사업가'로 통한다. 백만달러가 넘는 거액의 기부금을 여러 차례 내놓는 등 돈을 '물쓰듯이'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LA 교포2세 교육관 건립사업에 1백만달러, UCLA치대에 1백만달러, 교포 장학기금에 수십만불, 미국인 복지봉사기관들에 얼마...하는 식으로 그의 기부는 '헤프기' 그지없다. 그가 운영하는 미국 내의 각종 장학금은 웬만해서는 현황 파악이 힘들 정도이다.

그는 이뿐만 아니라 재미 교포사회의 각종 사회봉사단체와 소수계 장애인 봉사기관 노인회 등에 적게는 수천달러부터 많게는 수만,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크고 작은 금액을 희사해, 미주 동포사회에서는 '기부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의 희사 대상은 비단 미국 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국 사회에도 다양하게 자선금을 내놓지만 그 주된 대상은 세계에 사는 한국인들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김회장은 수년전부터 국내에도 소년소녀 가장돕기 등 자선사업에도 관여해 온 바 있다.


그는 이런 저런 분야 가리지 않고 '투자'하지만 그가 특히 관심을 둔 분야는 교육계통이다. 미국 내에서 적게는 20~30명에서 많게는 1백명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장학금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는 그는 최근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장학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부터 약 70명을 선발해 대학 전 과정에 걸쳐 혜택을 주는 장학금재단을 신설한 것이다.

그런데 김회장이 운영하는 장학사업이 '별난' 점은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수혜대상을 관리'해 나가는 이른바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수혜대상자가 특정목표까지 당도할 수 있도록 기업의 매니지먼트 개념까지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장학금'이란 한두 차례 돈만 대주면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김회장 부부가 지난해 말부터 한국에서 시작한 장학사업의 특징은 고등학생들부터 시작해 형편상 대학가기 어려운 학생들을 골라서 대학입학시부터 졸업할 때까지 필요할 때마다 꾸준하게 지원한다는 점이다.

김회장 부부는 약 반년전에 이 사업을 위해서 한국에 나가 재단과 사무실을 확보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진 5명의 직원들을 확보했다.

김회장의 복지사들이 하는 프로그램 가운데는 여름방학때 학생들이 캠핑을 하는 프로그램과 선후배간 만남의 행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수동적인 차원에서의 도움이 아니라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는 차원이다.

김회장은 올해에는 다시 수혜대상자 1백명을 확보하는 등 점차 프로그램들을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국내에서 이미 수년전부터 한동대 등에다 장학금을 희사해 오고 있는 중이다.

김회장이 이렇게 장학금 희사를 저돌적으로 하는 것은 이것을 단순한 '기부'행위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투자'라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최고의 투자가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것이다.

그가 현재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가졌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김회장은 자일랜사 매각 당시 20억달러 매각대금 중 주식지분 30%인 6억여달러(약7500억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 전에도 파이버먹스사를 5400만달러에 매각한 적이 있어 "평생 돈걱정은 안해도 될 만큼 벌어 놓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쓰지 않았고 벌지 않았다면 계산상으로는 약 1조원이라는 재력을 가진 '재벌'인 셈이다.

돈을 이처럼 '헤프게' 쓴다고 해서 그가 번 돈을 '쉽게 번 돈'으로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HP 등 대다수 미국 벤처출신 기업들의 출발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출발 역시 보잘 것 없었다. 사무실을 임대할 만한 돈이 없어서 자기 집 차고에서 '빈 손'으로 '파이버 먹스'라는 벤처를 시작했다.

'세상인심의 야박함'도 맛보아야 했다. 기술을 개발해 놓고서는 운영자금이 필요해 손을 내밀었지만 주위나 친척들은 모두가 그를 '외면'하더란다. 한 친척이 5천달러인가를 내놓은 것이 주위에서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의 전부였다.

그가 만든 것은 '랜'으로 불리는 기업체의 컴퓨터 시스템을 연결하는 갖가지 스위칭 장비들이었다. 그는 차고에서 창업 후 '밤과 낮 가리지 않고' 제품을 개발해냈다. 그러나 막상 자신 있는 제품을 개발했지만 이걸 시장에다 내다 팔 만한 자금력이 없어 '좌절'하던 그에게 말 그대로 '천사'들이 나타났다. '에인절(angel)'로 불리는 벤처 소액 개인투자자들이 그들이었다. '겨우' 수십만달러를 손에 쥔 그는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

"개발한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도무지 그땐 그 '돈' 이란 게 얼마나 귀하던지..." 이 '천사'들은 자신의 설명만듣고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선 말 그대로 '천사들'이라는 것이었다. 수혈을 받은 그의 '회사'는 탄력을 받아 웬만큼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성큼 자랐고 그는 창업 7년만인 91년 이 '금광'을 5400만달러에 매각, 투자자들에게 원금의 20배 이상을 돌려주었다.

그 후 "이젠 자금 걱정하지 않고 한번 제대로 해 보자" 싶어서 시작한 것이 바로 자일랜. 그는 93년 창업 이래 매년 수십배씩의 매출성장으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하이텍 기업'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네트워크 장비업체 대열로 진입하게 된다.

96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 내 1백개 초고속 성장기업 중 1위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96년 나스닥에 주식이 상장되면서 첫날 주가가 125%나 급등, 미국역사상 4번째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그해 그는 <어네스트 앤 영>사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벤처기업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그는 알카텔사와 합작으로 설립한 벤처투자펀드 알카텔 벤처스사의 회장으로 있다. 일종의 워렌 버페 같은 투자 및 고문역할을 하는 자본주인 셈이다.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군대까지 마치고 지난 76년 이민온 그는 미국에서 엔지니어 대접을 받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렸다. "창고에서 짐 나르는 일부터 했죠. 배가 고픈데 체면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야간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짐꾼 신세부터 면하자' 졸음이 쏟아지면 이렇게 각오를 다졌다고 말했다.


김윤종 회장 인터뷰 요지

- 이렇게 저돌적으로 보여지다시피 사회 희사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옛날부터 항상 남들과 쉐어하고(share,나누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런 게 강하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제 아버님이 사업에 실패해 가지고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아버지가) 외투를 안입고 들어오시드라구요.

추운 겨울날인이었는데 길거리 지나가시다가 불쌍한 사람보고는 벗어주고 오셨다고, 그럴 정도로 어려운 과정이지만 저도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았고 남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부라는 것은 살아 생전에 그것도, 나중에 유산으로 학교나 병원 같은 데에 물려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보다는 주위에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데에다 인베스트(invest), 투자하는 게 참 중요하다고 봐요. 또 그런 데서 굉장히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거구.

또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후손이 '3대도 못가서 다 말아먹는다'는 말처럼 돈을 주어가지고는 안돼요. 부모가 자식들이 나가서 건전한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고 또 사업을 한다고 그러면 여건을 갖추었을 때는 도와주는 것은 좋아요. 그러나 돈과 재산을 많이 물려주면 후손이나 자식들이 그 부를 키우고 더 잘 될 수있는 것보다는 잘못되는 경우가 더 많지요."

- 갈수록 자선사업을 직접 관여해 나서시는데...

"예전에는 어디 자선단체라든지 학교같은 데서 좀 도와달라 그러면 내가 피동적으로 들어보고서 '아, 그것 괜찮다'하면 주고 그랬지요. 교포사회 등에서 장학금도 여러 개 하고 했지만 그것 가지고는 내가 하고 싶은 사명을 다할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을 본격적으로 해 보는 겁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일단 학생을 선택하면 그 학생들의 뒤를 보살펴 주고 그들이 나가서 자립할수 있도록 하고 나중에 사회에 환원도 할 수 있는 그런 건전한 사람들을 만들려고 그러지요."

- 재력이 있으시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최소한 수백명의 뒤를 보아 주는 일들을 벌여놓으시면 벅차지 않으십니까?

"글쎄 그 동안 많이 벌어놓은 것도 있고 해서 뭐 벅차지는 않은데요 앞으로 제 욕심은 이런 걸 계속 좀더 확대를 하고 싶어요. 이건 내 비즈니스다, 그렇게 보고 해나가고 있거든요. 앞으로는 질을 높이고 양을 늘릴 수 있어야 하는데 결국 제가 열심히 해서 많이 더 벌어야지요.

앞으로 어떻게 하든지 좀더 열심히 벌어가지고(웃음) 좀더 큰 자금을 확보해서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려고 하는 게 내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열심히 하면 그런 기회도 온다는 꿈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죠."

- 김회장께서 돈을 쓰는 방식은 국내 재벌이라든지 부유층에서 쓰는 방식과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부자들이 어떤 식으로 돈을 써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생각하는 것은 하여튼 돈은 쥐고서 무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살아 생전에 정말 필요한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지요. 어떤 사람은 학교기관에 내는 경우도 있고 어떤 이는 자기이름으로 박물관 같은 공공건물을 지어서 기증해 이름을 남기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인데, 제가 보기에는 제일 뜻있고 생산적인 미래에 대한 투자로 볼 때는 결국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인 것 같아요."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사업을 계속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는 후손에게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은 이런 자선사업, 장학사업을 만들어서 계속 자식들이 이어갈수 있게끔 터를 닦아놓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 자녀들에게 기업이라든지 이런 걸 물려준다는 생각은 없으신지요?

"기업이야 뭐 자기네들이 알아서 해야지요. 여기서는 기업 물려준다는 것은 구멍가게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 거야 자기 네들이 알아서 하는 일이고, 이제 장학사업이라도 좀 물려주고... 여기서는 자기들이 건실하면 잘 살잖아요. 또 걔들도 욕심도 없어요. 얘들 보면 그런거(돈) 모르잖아요, 순진해요."


수 년전 국내에서는 한 대기업이 직원들을 위한 탁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정작 본 사업보다는 그것을 알리는 데 (광고)비용이 더 들어갔다"는 여론의 호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부의 사회환원'을 말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주저하는 기업들의 남의 눈을 의식한 '생색내기' 차원이 아니냐 하는 눈총를 받고 있는 국내 기업인과 기업문화에 비추어 볼 때 김회장의 저돌적인 '돈쓰기'는 결코 쉬운 '용단'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가 뿌린 투자의 씨앗이 과연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둘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돈을 버는 과정을 철저히 나눔의 과정으로 공식화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미국사회에도 '베푸는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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