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실록' DB도 우리가 만들 겁니다"

<벤처인물탐험 9> 누리미디어 최순일 사장

등록 2001.03.12 13:32수정 2001.03.2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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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 그대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이것이 바로 누리미디어 최순일(39) 사장이 10여년 인생을 바친 한국학 데이터베이스(DB) 구축사업의 현실이다. 하지만 정작 최사장의 시야는 안방 도서관 시대가 열리게 될 미래 디지털 컨텐츠의 가능성을 향해 있다.

업력 4년째인 누리미디어(대표 최순일)는 자본금 3억원대에 불과한 작은 벤처기업이지만 최근 학계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주요 역사서 CD롬 DB화 작업을 위해 북한 번역본을 들여와 남북문화교류의 물꼬를 트는가 하면 청와대 통치사료시스템 구축에 참여하는 등 중소업체가 감당하기에 만만치 않은 사업들을 펼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98년 5월 'CD롬 고려사'를 시작으로 누리미디어가 지금까지 디지털 DB화한 제품에는 팔만대장경, 발해사,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 증보문헌비고 등 우리의 주요 역사서와 고전의 번역본이 모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작 학술 DB 구축사업은 디지털 컨텐츠사업 가운데서도 '3D업종'으로 분류되곤 한다. 이와 같은 고전들은 보통 원고지 5만~7만 매 분량에 이르는 데다 입력과 교정작업에 손이 많이 가 적게는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는 방대한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명감으로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죠"

"저희 사업 내용을 본 사람들은 먼저 '참 좋은 일 한다'고 말하고는 곧 '밥은 제대로 먹고 사냐'고 걱정해요. 하지만 전 이 분야가 정말 전망 있다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의미도 살리면서 돈도 되는 사업이라는 의미죠."

실제 누리미디어는 실적 면에서 웬만한 IT벤처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출발은 초라했지만 매년 매출도 2배씩 성장해 직원수가 13명인 누리미디어가 지난해 올린 실적은 매출은 15억6천만원. 올해는 3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머잖아 외국 대형 컨텐츠 회사와 같이 연매출이 몇 백 억 규모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DB구축사업은 아직까지 민간기업보다 관 주도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명감만 갖고 양질의 제품이 나올 수 없어요. 우수한 인력, 우수한 기업 끌어들이려면 돈 쓰기 위한 사업이 아닌 돈 벌기 위한 사업이 돼야 합니다."


고전 DB사업으로 남북 교류 실타래 풀어

국가보안법 이적 표현물 규정이 시퍼렇게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역사학이나 고전 연구 분야에서만큼은 남북의 벽은 낮다. 여기엔 알게 모르게 누리미디어가 일정 몫의 공헌을 했다.

97년 최순일 사장이 굳이 국내 학계의 눈치를 봐가며 북한 번역본을 사용해 고려사 등 고전 DB를 구축한 이유는 값싼 판권료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한 번역문은 중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 쉽게 번역된 반면 국내에서 번역된 고려사의 경우 한문 원문에 토씨를 다는 수준이어서 대학원생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말 그대로 일부 소수를 위한 번역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죠."

실제 누리미디어의 한국학 DB 가운데 절반 정도가 북한 사회교육원이 만든 번역본을 사용했다. 동국이상국집의 경우에는 아예 북한 사회교육원에 원고지까지 보내 직접 번역을 의뢰했다.
"우리나라에 비해 북한에서는 유능한 번역 인력을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앞으로 북한의 양질의 인력을 활용한다면 남북이 협력할 분야는 많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단가를 낮추겠다고 한 일이지만 그들에게 작은 보탬이 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CD롬이 맺어준 한국학 DB와의 인연

총학생회 홍보부장 출신으로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최순일(39) 사장은 대학졸업 후 월간 말 등 진보잡지와 단행본에 기고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그가 92년 뒤늦게 시작한 첫 직장이 한국학 전문 출판사였던 여광출판사. 당시 여광출판사에서는 이조실록의 CD롬 DB화 사업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다.
"당시 CD롬이 등장하면서 출판업계 고사 위기가 나올 정도로 관심을 끌었어요. 이왕이면 새로운 CD롬 사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게 됐죠."

CD롬 동의보감, 한방대전 등 국내 최초의 CD롬 DB 개발 과정에 참여했던 그는 여광출판사의 부도로 95년 당시 조선왕조실록 CD롬 제작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든 서울시스템으로 자리를 옮겨 마케팅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당시 서울시스템은 신문사 CTS사업에 주력하고 있었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불과한 DB사업부는 찬밥 신세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97년 최사장은 당시 개발팀 직원 4명과 함께 회사를 나와 한국학 DB 전문업체인 누리미디어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주력사업으로 인정 못 받을 바에야 나가서 하자는 생각이었죠. 게다가 DB사업은 출판의 연장인 전문 분야여서 소수가 모인 전문회사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죠."

이후 누리미디어의 매출은 매년 2배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학 CD롬 판매, 학회지 DB 개발 용역 등으로 15억6천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3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사장은 머잖아 누리미디어가 외국 대형 컨텐츠 회사와 같이 연매출이 몇 백 억 규모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글로벌 DB업체인 UMI사의 경우 직원이 4천여명에 이르고 연매출이 조 단위에 달하고 우리나라에서만 수백만 달러 매출을 가져가는 대기업입니다. 처음엔 그저 밥벌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이젠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청와대 통치사료 DB시스템 구축 참여

누리미디어에게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과거의 역사뿐 아니라 현재 진행되는 역사를 DB화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리미디어는 포스데이타와 함께 청와대 내에서 발생하는 문서, 기록, 육성, 동영상, 사진 자료 등을 통합관리하기 위한 네트워크 시스템 통합 작업에 참여해 지난해 9월 대통령 녹취 DB를 구축하는 1차 작업을 마친 상태다.

"조선왕조 기록 시스템은 정말 대단했어요. 사관이 왕의 술자리까지 따라다니며 기록해 태종이 '제발 술마시면서 하는 얘기는 적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을 정도예요. 덕분에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방대한 역사자료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청와대 비서실에도 통치사료 담당자가 있지만 기록물 보존개념 없어 지금까지 통치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앞으로 대한민국실록을 쓰게 되면 도대체 무얼 갖고 쓸지가 의문이었죠."


학술DB 구축으로 안방도서관 시대 준비

지금까지 인터넷 컨텐츠는 주로 젊은 세대를 위한 오락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순일 사장은 머지 않아 도서관이 소장한 수백만 권의 책이 온라인 상에서 검색하고 원문을 볼 수 있는 안방도서관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누리미디어는 학술 컨텐츠의 디지털화에 앞장서고 있다. 교보문고와 함께 학술정보 DB 사이트인 DBPIA(www.dbpia.co.kr)를 통해 인문, 경제, 의학, 공학 등 각 분야 170여종에 이르는 학술지 1만 5천권 분량의 DB 검색 및 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1권당 10편 정도의 논문 있어 모두 20만편에 이르는 논문 DB를 구축한 셈이죠. 앞으로 DB가 늘어나면 의미 있는 사업이 될 겁니다. 당장 수익성 때문에 기관을 중심으로 서비스하고 있지만 앞으로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재가공해 개인을 위한 서비스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우리도 'e-Book'(전자북) 업체

"e-Book은 업계에서 만들어낸 상업적 개념일 뿐이고 사실상 E-Book에는 모든 디지털 컨텐츠가 포함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역시 e-Book업체라고 생각해요. 단지 우리가 B2B 개념이라면 일반적인 전자북이 B2C서비스인 차이일 뿐이죠. 하지만 지난해 e-Book 업체 치고 제대로 매출을 낸 곳이 거의 없는 반면 우리는 학회지 DB 사업으로만 5~6억원의 매출을 올렸죠."

그는 아직 전자북 시장에 대해 부정적이다. 사람의 습관이 바뀌기 힘들고 전자매체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아직 구매력이 없다는 것. E-Book 업체들이 회원 확보를 위해 경품 걸고 유명 작가 영입에 나서는 등 닷컴 패턴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것. 전자북 사업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앞으로 3~5년 정도 걸릴 것이고 현재로선 수익모델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한국학뿐 아니라 한의학 등 관련 고전자료 등으로 차츰 분야 넓혀갈 계획입니다. 이미 출판시장은 포화상태여서 아이디어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지만 디지털 컨텐츠 분야는 아직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어요. 여러 출판사들과 제휴해 그들의 컨텐츠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도우면서 윈윈할 방법을 찾을 계획입니다."


최순일 사장 프로필

1963년 1월 전북 군산 출생
1989년 2월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졸업
1989~91년 자유기고가 활동
1992~95년 여강출판사 근무
1995~97년 서울시스템 DB개발부(CD-ROM 조선왕조실록 마케팅 팀장)
1997년 8월 누리미디어 대표이사(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스닥신문 71호(2001.3.12)에 실린 인터뷰 기사와 별도로 신문에 실리지 못한 내용까지 포함해 재작성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코스닥신문 71호(2001.3.12)에 실린 인터뷰 기사와 별도로 신문에 실리지 못한 내용까지 포함해 재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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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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