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의 변신은 무죄! '우리'는 IT로 간다"

<벤처인물탐방-10> 우리기술 김덕우 사장

등록 2001.03.21 16:06수정 2001.03.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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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도전정신이 벤처기업의 필수조건이라면 일부러 '모험(adventure)'을 찾아 나서는 듯한 우리기술의 행보는 '벤처(venture)'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기술력 하나만 믿고 출발, 온갖 고생 끝에 제어계측시스템 국산화에 성공하며 안정된 사업기반을 찾기 무섭게 정보통신사업에 뛰어들어 새로운 사업을 숨가쁘게 벌여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이나 통신시설의 핵심장비인 제어계측시스템을 국산화한 기술벤처인 우리기술(대표 김덕우, www.wooriTG.com)이 지난해 6월 코스닥에 입성할 당시 제시한 당기 매출 목표는 330억원. 하지만 결과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0억원대로 나타났다. 제어설비의 주 수요처인 한국통신과 한국전력이 신규사업을 잇따라 연기하면서 수백 억 규모의 납품이 올해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기주총을 2주 앞둔 지난 3월 8일 봉천동 우리기술 사옥에서 만난 김덕우(40) 사장의 표정에선 오히려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올해 정보통신기업 변신의 발판 마련하겠다"

"연초 사업계획서를 만들면서 평소 하던 대로 의욕적으로 잡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전까진 우리끼리의 목표였을 뿐이지만 주식시장에 들어가서는 '당연히 해야 할 수치'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몰랐던 거죠. 그래서 올해 실적 목표를 잡을 때는 신규사업 중에서도 지난해부터 시작해 올 1/4분기에 구체화되는 아이템만 포함시켜 부수적으로 잡았죠."

사실 우리기술의 주력사업인 제어계측시스템 분야에서 한국통신과 한국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이처럼 공기업에 대한 매출의존도가 높다보니 안정적일 수도 있지만 이들 회사가 투자를 늦추기라도 하면 우리기술 입장에선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기술이 지난 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도청감지시스템, 전자지불솔루션(아이스페이), 디지털 셋톱박스, 인터넷 쇼핑몰(행복한 아침) 등 신규사업들이 소비자 시장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두고 전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원자력 제어시스템의 기술 베이스는 인터넷, 정보통신 기술과 다를 게 없어요. 공장 내 네트워크에만 한정되던 것을 인터넷으로 확장시키도록 인터페이스만 바꾸면 해결될 문제였죠."

실제 우리기술은 지난해 원자력 시스템을 개발하던 팀 하나를 해체시켜 22명의 연구원을 와치독, 위성수신카드, 생활용 로봇 사업 등 정보통신분야에 투입했고 상시 도청감지시스템인 와치독(Watch dog)을 석 달만에, 지하철 물류시스템을 단 두 달만에 자체 제작해 자체 기술력을 과시했다.

"우리기술 없으면 국내 원자력 제어분야 고사"

하지만 상대적으로 지금까지 주력사업이었던 제어계측시스템 사업에 소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했다.
"시스템사업은 나름대로 꾸준히 성장할 것입니다. 흔히 제어계측시스템 분야를 굴뚝산업이라고 하면서 이 분야 개발을 소홀히 했지만 사실 첨단 제품인데도 인식을 못하고 있을 뿐이죠. 특히 우리기술이 없다면 국내에서 원자력 제어계측시스템 분야는 고사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에서는 제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적,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라고 봅니다. 이미 우리기술은 안정성 측면이 중요한 원자력 제어 분야에서 해외에서 더 인정받고 있죠."

우리기술은 93년 서울대 제어계측연구센터에 있던 김덕우 사장과 노선봉 연구소장을 비롯해 박정우, 노갑선, 이재영 이사 등 5명의 선후배들이 모여 설립됐다. 이들 모두 제어계측공학박사들로 당시로선 이 분야 최고의 정예 멤버들이었지만 대기업 연구소가 아닌 중소기업 창업을 선택한 이들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전공과는 거리가 먼 동전교환기, 감자튀김자판기 등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 곁을 떠나지 않은 창업멤버들은 김덕우 사장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창업초기멤버가 우리처럼 전부 남아있는 기업은 드물어요. '한솥밥문화'를 통해 서로 비전공유가 가능했고 제가 내린 결정에 대해 반대가 있더라도 따를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 있는 제품을 가만 둘 수 없나요"

우리기술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95년 원전 디지털 경보설비 국산화에 성공한데 이어 97년 9월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제어설립 입찰에서 웨스팅하우스, 미쓰비시 등 세계적인 원전설립업체를 물리면서부터다. 이어 99년에는 원전 제어시스템의 핵심인 플랜트제어시스템(PCS) 국산화 업체로 선정돼 기술력을 확고하게 인정받았다. 또한 공장 상황을 감시하는 분산제어시스템과 한국통신 통신설비에 들어가는 전원집중관리시스템을 잇따라 개발해 제어계측시스템분야의 선두업체로 떠올랐다.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전 시스템 분야에서 국산제품의 이미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제품에 대한 김사장의 강한 책임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김덕우 사장 스스로 어떤 물건이든 잘못된 점을 발견하면 가만 두고 보지 않는 '까탈스런' 성격의 소유자.

자신이 쓰던 카세트라디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편지를 보내 감사 인사까지 받았던 그는 최근 반송시키려는 콧물흡입기에도 문제점을 지적한 편지를 동봉할 참이다. 이런 성격이 남이 만든 물건에 그칠 리 없다. 한전에 처음 원전 설비를 납품하던 시절 두 번째 제품에서 사소한 결함이 있음을 발견하곤 2억원짜리 제품을 다시 제작해 교환해 줬던 것이다.

"중대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둬도 크게 문제될 것 없었지만 초창기였기 때문에 회사의 이미지가 중요했어요. 덕분에 그 다음부터 한전 사람들이 우리 회사 제품을 신뢰할 수 있게 됐죠."

"자식에게 대물릴 주식이라고 하더군요"

지난해 6월 코스닥에 등록한 이후 우리기술은 기존 증시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악재'를 감추기에 급급한 우리 현실에서 지난해 11월 한통 납품 연기로 예상 매출의 대폭 감소가 예상되자 규정에도 없는 자진 공시를 시도했던 것이다. 뒤이어 대주주 보호예수 제한이 풀린 지난 2월엔 자신의 지분을 팔기는커녕 김덕우 사장 자신이 주가 부양을 위해 20억원 어치의 회사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공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덕분일까 얼마전 주주게시판엔 우리기술이 앞으로 자식에게 물려줄 만한 주식이라고 칭찬한 투자자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주주들로부터 회사의 긴 미래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차원에서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저 역시 우리 시가총액이 새롬기술을 넘기 전까진 제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소니 같은 창조적 기업 만드는 게 목표"

"아직 매출로 연결되지 않아 정보통신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지만 이제 변신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봅니다. 우리기술의 목표는 앞으로 소니 같은 회사가 되는 겁니다. 소니가 로봇을 만든다 게임기를 만든다 하면 사람들이 모두 믿잖아요. 앞으로 우리기술 역시 소니처럼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회사로 인식될 수 있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국내 제어계측 분야의 인재들이 모여 전공분야에서 괄목할 만큼 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지만 이처럼 '비전공분야'에서의 활약 역시 대단하다. 현재 우리기술이 갖고 있는 등록 특허만 20종. 현재 출원중인 특허나 PCT 등을 모두 포함하면 70여종에 이른다. 이중 상당수의 아이디어는 김덕우 사장의 머릿 속에서 출발했다. 96년 모니터 절전장치를 둘러싼 삼성전자와의 특허 분쟁에서 실패한 것을 계기로 특허 제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김덕우 사장이 갖고 있는 특허 지식은 거의 변리사 수준이다.

'특허공화국' 만든 아이디어 뱅크

현재 이 특허 아이디어는 우리기술의 정보통신분야 신규사업에 활용되고 있지만 이밖에 특원 등록이나 출원 이후 타 업체들이 이미 진행하고 있는 사업도 있어 상당한 로열티 수입이 예상되고 있다. 증권정보 무선단말기('데이터가 원격으로 자동 갱신되는 전자수첩'에 관한 특허)와 현재 출원중인 이동통신업체의 투넘버서비스('복수의 가입자 번호를 사용하는 무선전화시스템 및 무선전화기'에 관한 특허-출원중) 등이 대표적.

가장 큰 폭발력을 갖고 있는 것은 지난해 특허 등록에 성공한 '통신망을 이용한 전자고지서 결재장치'에 관한 특허다. 김덕우 사장은 이미 많은 통신서비스업체나 금융결제원 등에서 이 전자고지서 방식을 활용하고 있어 앞으로 상당한 로열티 수입이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특허권을 내세워 돈벌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려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특허 장사를 하자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외국 특허에 맞서는 방어적 차원도 강하죠. 무리한 로열티를 요구해 업체의 사업을 방해하기 보다 합리적인 가치에 따른 최소한의 로열티만 받을 생각입니다."


김덕우 사장 프로필(dwkim@wooritg.com)

1962년 출생
1985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졸업
1989년 서울대 대학원 석, 박사 과정
1988~91년 서울대 자동화시스템연구소 연구원
1991~93년 서울대 제어계측연구센터 연구원
1993년 3월~ 우리기술 대표이사(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스닥신문 71호 코스닥CEO초대석 내용을 오마이뉴스를  위해 재작성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코스닥신문 71호 코스닥CEO초대석 내용을 오마이뉴스를  위해 재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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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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