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가 된 서장' 네티즌에 '항복'

'괘씸죄' 순경 감봉 1개월, IP 추적 적법성 논란

등록 2001.03.20 14:48수정 2001.03.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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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없던 때라면 그 순경은 그냥 죽었어요. 네티즌의 승리죠."

경찰서장이 인터넷을 통해 직언을 한 말단 순경에게 '괘씸죄'를 적용, 감봉조치를 내렸다가 네티즌의 거센 반발로 뒤늦게 사과문을 내며 사태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서장의 사과문 게재에도 불구하고 순경에게 내려진 징계는 철회되지 않았고, 네티즌들은 "경찰서장이 직언을 한 순경을 찾아내는데 '불법적'인 IP추적을 동원했다"며 관련자 처벌을 요구해 IP추적 적법성 논란이 예상된다.

충주경찰서 김모 서장은 지난 2월 15일과 27일 경찰서 홈페이지에 서장의 시책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자 이를 삭제시키고, IP추적을 통해 글을 올린 '범인'을 찾았다. 글을 올린 경찰관은 '궁예가 된 서장'이라는 글에서 궁예의 전횡을 서장에 빗대어 "간신의 말을 듣지 말고 종간의 말을 들어 나라를 바로세우고 직원들의 고충을 생각해 달라"고 했다.

"비번 날도 들어가지 못하고 남아 서장님께서 오신다면서 청소를 해야 한다고 붙잡아 놓고 청사환경정리에... 대통령이 오시는 것도 아닌데 융단을 깔고 현수막을 내걸고 하는 것들이... 그렇게 대접받은 서장님은 기분이 좋았고... 인사 등의 특혜(?)를 주었고... 솔직히 미인대칭(미소짓기, 인사하기, 대화하기, 칭찬하기)운동과 술잔 안 돌리기가 주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의 실적과 현황 파악을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오로지 파일에 모아둔 '미인대칭 추진실적'이 얼마나 화려하느냐가... 가늠하게 되지 않는냐 말이다..."

김서장은 세 차례에 걸쳐 올려진 이 글의 등록자가 관내 신의파출소 소속 안희종(27) 순경임을 확인한 뒤 3월 15일 경찰서 감사관을 통해 보통징계위원회를 소집했고, 안순경에게 감봉1개월(월급의 3분의 1을 제함)의 징계를 내렸다.

쓴소리 한번에 감봉 1개월


이 일이 인터넷상에서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충주경찰서 홈페이지 '대화의 광장'과 경찰청 홈페이지 '경찰발전제언'란에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무려 600여 건의 항의글을 올렸다. 네티즌들의 대부분은 안순경과 같은 일선 경찰들이었다.

자신을 경찰관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우리 조직에서 이런 정도의 글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스럽다"며 "직접 말씀드리거나 비공개로 할 수도 있겠지만 (경찰서) 게시판은 최말단인 순경들을 위해 열어놓은 공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 경찰관은 또 "근거 없는 비방이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아닌, 단지 서장이 추진하는 시책에 대한 쓴소리를 했다고 징계한다면 현재 청와대에 올라온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들을 모두 추적하여 일반인은 몰라도 공무원들은 징계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티즌들의 항의성 글이 빗발쳐 한때 경찰서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이르자, 충주경찰서 보통징계 위원회와 경찰서 감사관은 16일과 17일 경찰서 홈페이지에 네티즌의 자제를 호소하는 "충주경찰서 대화방게재 답변서"를 게시하기로 했다.

충주경찰서 감사관은 답변서에서 "익명으로 조직 내 동료상사에 대해 허위사실을 음해, 비·속어로 공개 비난하는 행위에 대한 법규와 경찰네티즌 윤리강령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부득이 조사, 처벌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네티즌의 항의는 멈추지 않았다. 평소 2∼3건의 글이 게재되던 충주경찰서 '대화의 광장'에는 18일 하루만 60여건의 글이 올라와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예비경찰아내'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네티즌들이 이대로 쉽게 물러나면 비간부 10만 명이 패배하는 것"이라며 "쓴 소리 한마디에 감봉 1개월은 열 번, 백 번 생각해도 너무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내 잘못은 인정하나 징계 취소는 못한다(?)"

김서장은 결국 19일 오후 6시경 경찰서 홈페이지에 '네티즌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김서장은 사과문에서 "잘못된 일은 그것을 깨닫자마자 빨리 시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평소에 생각하여 왔다"며 "국민을 위한 시책의 본 취지가 훼손되는 것 같아 그런 가슴아픈 결정을 내렸지만, 그 또한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순경에게 내려진 징계에 대해 김서장은 "보통징계위원회의 결정으로 확정된 것이고, 이는 일종의 행정행위로써 번복이 어렵다"며 "서장을 비롯한 청문감사관 등 참모들은 안순경 본인이 소청을 제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안순경은 전화인터뷰에서 "징계 받을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소청에서 승소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기쁜 것은 인터넷의 힘으로 경찰 조직 내에서 하의상달 문화가 성공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서장의 글이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대부분 환영하는 반응을 보였다. '인천논개'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서장님이 큰 결단을 내렸다"며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또 한편에서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상당수 게재되고 있다.

ID가 '전남포돌이'인 한 네티즌은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부당한 징계, 직권남용적 징계...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순경에 의한 최초의 항명사건이자, 앞으로 경찰이 민주화되느냐의 시금석"이라면서 "이번 사건은 불법적인 IP추적이 관행화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장이 사과문을 게재하기는 했지만 안순경을 찾아내기 위해 사용한 IP추적의 적법성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명백한 범죄행위가 아닌 때의 IP추적의 적법성 여부'를 밝혀 관계자 처벌 등 분명한 조치가 있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순경은 "당시 IP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시내 PC방을 이용해 익명으로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안순경이 덜미를 잡힌 것은 그 다음 올린 글이었다. 안순경은 자신이 올린 글이 삭제되자 이에 항의하는 글을 파출소와 집에서 두 차례 올렸다고 한다.

충주경찰서 감사관은 "수사기관장인 경찰서장의 승인을 받아 절차를 거쳐 IP추적을 했다"며 "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역시 "수사기관장의 승인을 거친 IP추적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부산공무원모임(부공련) 강순태(39) 총무국장은 "명예훼손 등의 불이익을 당한 자가 고발을 해야만 IP추적이 가능하다"며 "과연 충주경찰서가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쳤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수사기관장인 충주경찰서장이 안순경의 글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기 때문에 고소를 통해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한 것인지 아니면 조직 내부 문제로 판단하고 자의적으로 IP추적 수사를 지시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안순경이 올린 글이 과연 서장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내용이었는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충주서쪽은 처음 안순경의 글에 대해 "음해, 비·속어, 허위사실 게재"라며 징계 결정을 내려놓고 5일만에 "이는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서장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강국장은 "충주서의 경우 직언을 한 공무원을 IP추적을 동원 찾아내 징계를 내린 것은 군사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며 "양심선언을 보호할 수 있는 '내부고발자보호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충주서의 경우는 반복될 것이고 행정의 민주화는 어렵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해 9월 인터넷상에서 전남도지사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관계 기관이 게시자를 IP추적으로 밝혀 내 논란이 됐던 광양시의 경우 해당공무원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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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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