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갖고 싶다면

박균호의 <빛깔이 있는 책읽기>

등록 2001.03.24 01:14수정 2001.03.24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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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적인 성급함, 분열된 목표,
지나치게 복잡해진 머리, 마비된 심장,
현대생활의 이 이상스러운 질병이
무르익기 전 옛날에,
지혜는 신선하고 청명하며
삶은 테임즈강처럼 명랑하게 흘러가던
그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 메슈 아놀드<스콜라 짚시>


저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제 전공에 만족(점잖게 표현해서)한 편이 아닙니다. 1987년 대학 합격통지서의 잉크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저는 당시 학과장 교수님의 연구실을 노크했습니다. 대학중의 대학은 문과대학이고 문과대학의 핵심적인 과는 영어영문학이라는 대단한 학문적 자부심과 학부시절에 이미 교수직을 보장받았음직한 개인적 자부심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던 학과장 교수님에게 영어영문학과에 더 이상 다니기 싫으니 다른 과로 전과를 시켜줬으면 좋겠다라는 항명에 가까운 말을 하였습니다.


물론 전과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학시절 내내 아니 지금까지도 영어영문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전공했으면 좋겠다! 영어선생이 아닌 다른 과목선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항상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당시로는 영문과 학생으로서는 드물게 법학을 부전공 하게 되었고.

그러나 늘 떼어버리고 싶었던 영어영문학과 학생이라는 딱지였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제 인생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 가지를 얻었습니다. 마치 평소 싫어하던 친구에게서 뜻밖의 도움을 얻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 처음의 것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존경스럽다"라는 감정을 품게 한 교수님을 영문과에서 만나 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어교사라는 직위를 얻게 된 것이며 마지막 것이 제 사고나 세계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교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교수입니다.

사실 이러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고민을 잠시 했습니다. 하지만 제 서고에는 이 천권에 육박하는 책이 꼽혀 있지만 정작 책이야기를 연재하면서 흔히 말하는 풍요 속의 빈곤을 맛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적지 않은 책 중에서 남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이 눈에 잘 띄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한 이유로 누구를 만나거나 자신 있게 권해도 부끄럽지 않은 이 책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녹색평론은 잡지로는 처음으로 "단재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독자모임이 결성되어 있는 "이제는 외롭지 않은" 잡지가 되었습니다.


녹색평론은 생태관련 잡지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수필, 시 , 서평, 등 생태와 직접관련이 없는 글도 빠짐없이 실려 있습니다. 그 녹색평론의 글 중에서 일부를 추려 선집한 것이 녹색평론선집1입니다.

이 책은 잡지 녹색평론과 마찬가지로 요즘은 보기 힘든 재생용지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표지의 흑백사진을 제외하고는 사진이 전혀 실려있지 않은 언뜻 보면 장식효과가 없는 볼품이 없는 책입니다.


말로는 환경 살리기 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신문지 일면에 정치인의 얼굴을 대문짝 만한 컬러사진을 싣는 일간신문의 형태와는 완전히 차별되는 것이죠(컬러사진은 환경오염의 주범중의 하나입니다).

녹색평론선집1에는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 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구절로알게 모르게 유명한 시애틀 추장의 연설, 제리 멘더의 "나쁜 요술 - 테크놀리지의 실패, 쟝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웬델 베리의 나는 왜 컴퓨터를 안 살 것인가/ 여성주의, 육체, 기계" 볼프강 주커만의 " 파국을 향해 가는 자동차" 천규석의 "시민과 농민이 두레로 짓는 공동체 농장" 제레미 리프킨의 "쇠고기를 넘어서"등 녹색평론의 1991년 창간호에서 1992년 9-10호의 글 중 총 23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글의 면면을 대충만 살펴보더라도 "사유재산" "개발" "컴퓨터" "농업의 기계화" "쇠고기"등 이 책이 비판하고 도전하는 대상은 하나같이 난공불락의 위치를 이미 점유하고 있는 그래서 그 누구도 감히 그 존재이유에 대한 이설을 내 뱉지 못하는 너무나 견고한 성채를 구축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엔델 베리는 그의 글 중 <기술적 혁신에 대한 기준>이라는 대목에서
1. 새로운 연장은 먼저 것보다 값이 싸야 한다.
2.그것은 적어도 먼저 것만큼 크기가 작아야 한다.
3.그것은 먼저 것보다 분명히 그리고 현저하게 나은 일을 해야 한다.
4. 그것은 먼저 것보다 에너지를 적게 써야 한다.
5.그것은 가족관계나 사회관계를 포함하여 이미 있는 좋은 것을 대신하거나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이하중략) 고 컴퓨터의 해로움을 절실하게 우리에게 호소합니다.

또 레메미 리프킨은 우리가 자주는 아니더라도 영양보충을 위해서 꼭 먹어뒤야 한다고 믿는 쇠고기의 또다른 이면을 이렇게 고발합니다.
"코넬대학의 데이비드 피멘틀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축의 먹이를 완전히 풀로 바꾸면 1억3천만 톤의 곡물이 절약되어 4억이 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부의 식물유형과 땅의 형태를 변경시키는 데 수많은 소들의 발굽과 입이 끼친 영향은 그 지역에서 이루어진 수리공사, 노천탄광, 발전소, 고속도로 건설, 구획분할개발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큰 것이었다"

"세계 축산업의 최종적인 희생자는 동물들 그 자신들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린 수송아지들은 좀더 "순종적"으로 되고 그 고기의 질을 개선하기 위하여 거세된다. 심지어 화학 약품으로 뿔을 태워버리기도 한다. 이런 일이 마취도 하지 않고 이루어진다"

"사육장에서 기르는 미국의 소 전체의 95%가 현재 성장촉진 호르몬을 투여 받고 있다"

"파리 떼를 쫓느라고 소들이 몸을 움직임으로써 매일 반파운드까지 몸무게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고도의 독성을 가진 살충제가 사육장에 살포된다"

녹색평론선집1을 읽는 독자들은 이런 글을 읽으면서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하지만 컴퓨터 없이, 고기도 먹지 않고 어떻게 살수 있어? 하며 반문을 할 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이 책이 출판된 1993년에는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믿습니다.

너무 순진하지 않고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생각들이 아니냐? 하는 비판과 의문을 많이 받았지만 요즘 광아무개병 때문에 너도나도 소고기를 피하는 것을 보면 그런 사람들은 어떤 표정이 될지요?.
앞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이렇게 우울한(?)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다른 살맛을 느끼게도 해주는 따뜻한 글도 많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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