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투쟁, 연세대 동아리 '게르니카'

'갇혀진 나로부터의 자유, 억압하는 사회로부터의 자유'

등록 2001.03.27 00:37수정 2001.03.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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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교육부는 장애인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넓힌다는 취지 아래 대학입시에 장애인 특례입학제도를 마련하였다. 이 제도를 통해 1995년 연세대학교에는 11명의 장애학생들이 입학했다. 그들의 입학은 장애인들의 권익향상과 사회참여를 촉진할 것으로 주위의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입학한 장애학생들은 열악한 교육환경 탓에 실망과 좌절을 거듭해야했다.


지체장애학생들은 편의시설이 없어 건물간 이동이나 강의실 접근은 물론이고 화장실도 가기 힘들었고, 시청각장애학생들은 보조학습기자재가 전무한 까닭에 제대로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고달픈 1년의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몇몇의 장애학생들은, 충분한 준비도 없이 장애학생들을 받고 장애학생들이 입학한 후에도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학교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95년 12월, 2명의 장애학생이 모여 자신들의 교육권 확보를 주장하는 모임을 결성한다. 이듬해 96년에는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다른 장애학생들과 비장애학생들이 동참했고, 모임의 목적은 학교 내 장애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 차별적 요소들에 저항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또 모임은 '사회가 부여한 장애라는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싸움이며 그 싸움은 외부로부터 규정지어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갇혀진 나로부터의 자유, 억압하는 사회로부터의 자유'라는 모임의 모토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에 대한 목마름과 투쟁의 절박함을 스페인 내전 당시 자유를 향한 처절한 싸움에 비할 만하다하여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게르니카'의 이름을 따 모임의 명칭을 정했다. 오늘날의 장애인의 현실이 나치 치하의 게르니카에서 일어난 학살과 다름 아니라는 문제인식을 공유 했다.


그것이 오늘의 연세대학교 장애인권운동동아리 게르니카의 시작이었다.

게르니카는 모토에서 보여지듯이 장애학생들이 주체가 되어서 자신을 둘러싼 학교와 사회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장애의 틀을 넘고자 한다. 그래서 게르니카의 활동은 크게 편의시설 등을 비롯한 학내 장애학우 교육권 보장 사업과 장애인노동권문제나 장애인사회복지시설 문제 등의 사회활동,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는 장애학생들의 교육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중심으로 게르니카 5년을 살펴보았다.


96년 게르니카의 초기 활동은 학내 인식사업 위주였다. 주변의 장애학생들이 얼마나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알리고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는데 동의를 구할 목적이었다. 그래서 96년 3월에는 우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 장애인 특례입학을 실시한 대학들의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장애인 특례입학제도와 교육환경에 관한 연구를 했다.

그 연구에 기반해 장애학생들의 열악한 교육환경에 대한 토론회, 장애체험, 교내 편의시설 사진전, 서명운동, 한겨레 문화센터 비디오 제작팀이 제작한 '게르니카의 전쟁' 다큐멘터리 상영, 연세대 농구팀과 휠체어 농구팀의 농구대회 일명 <작은 난장-천국만들기> 등 일반 학우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홍보작업을 했다.

97년에는 여론을 조성하는 수준을 넘어 좀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새로 입학하는 장애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 등을 표시한 학내지도와 요람지를 발간하고 '개성영화제'에서는 장애인 관련 영화들을 통해 연세학우들과 좀더 깊은 대화를 시도했으며, 청각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수화과목을 개설했다.

또한 한국일보와 함께 장애인대학생에 대한 설문조사를 대대적으로 벌여 연세대학교 내의 편의시설의 전모를 명확히 파악하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을 통해 휠체어장애인들의 접근이 가능한 건물이 캠퍼스 안에 4곳에 지나지 않으며 경사로, 손잡이 등의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거의 전무함을 밝히게 되었다. 이는 이후 편의시설 사업에 중요한 기초자료로 쓰였으며 학교에서도 편의시설 설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96년의 기초연구 및 학내 홍보와 97년의 구체적인 편의시설 조사 및 매체홍보에 힘입어 98년에는 학교와 협조해 이룬 성과들이 많았다. 하나는 연세대 학생상담소와 장애학생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를 바탕으로 '연세대학교 장애학생 지원 모형체계' 자료집을 발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꾸준히 요구해온 기본적인 편의시설들이 하나, 둘씩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4년간 요구해온 중앙도서관의 편의시설 뿐 아니라, 장애학생들의 사용이 비교적 빈번한 국제교육부 건물은 대대적인 공사를 거쳤다.

99년과 2000년은 지난 3년의 활동들과 약간의 차별성을 보인다. 3년의 활동이 초기단계로서 연구와 홍보, 편의시설 사업 등 시기에 따라 유동적인 일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난 2년간은 회칙개정과 조직개편을 통해 동아리로서의 형태를 갖추는 시기였다. 정기 총회와 엠티, 이끔모임, 대동제와 연고제의 정기사업 등의 동아리 정례사업을 잡고 후배들을 교육하는 사안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물론 2년 동안에도 편의시설 사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99년에는 오래된 건물이라 난공사를 예상했던 '연희관'에 시각장애학생을 위한 유도 블록과 확대게시판, 경사로, 장애인화장실 등의 대대적인 공사와 그밖에 각 단과대학의 경사로, 핸드레일 등의 작은 공사들에 참여했다. 또 2001년부터는 학교 행정부처 아래에 장애학생들을 위한 전담창구가 운영되고 장애학생을 위한 장학금도 신설될 예정이다.

오는 3월 26일에는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장애학생휴게실과 시각장애학생들이 요구한 점역실이 오픈한다. 2000년 강도 높은 등록금 투쟁의 결과로 얻어 냈던 휴게실과 점역실의 약속을 몇몇 뜻있는 교수님 도움으로 지켜냈던 것이다.

현재 연세대학교에는 약 40여명의 장애학생들이 재학중이고 2001년, 올해에도 5명의 장애학생이 입학을 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힘겹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들과 동기, 선배들을 봤을 때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게르니카가 생기던 초창기와 비교할 때는 여러모로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장애학생들의 교육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시각장애학생들은 아직도 중앙도서관에 있는 수 만 권의 책들을 그냥 지나쳐야하고 청각장애학생들은 수업에 대한 어떠한 보조도 없이 혼자 힘으로 수업을 들어야한다. 경사로와 리프트가 많이 생겼다고는 하나 휠체어장애학생이 1층까지밖에 접근하지 못하는 건물이 태반이다. 뿐 아니라, 지금까지 열심히 공사해온 편의시설들에 대한 점검과 관리도 필요하다. 이렇게 아직도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들을 보면서 밀려드는 미안함과 갑갑함을 감출 수가 없다.

이런 가운데 학교 당국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인 휴게실과 점역실이 행여 연세대의 장애인 문제를 희석시키고 장애 학생에 대한 시혜적인 접근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높은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99년도부터 올해까지 입학한 장애 학생들과 부모들의 연세대에 대한 인식도를 보아도 잘 나타난다. 이들은 대부분 연세대는 장애인 학생들에 대한 해방구 인냥 아주 시설이 훌륭한 것으로 생각하고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들어오지만 들어오자마자 이들의 꿈은 여지없이 깨어진다.

이번에 장애인 휴게실과 점역실도 실제적으로 작년의 게르니카의 독자적인 등록금 투쟁과 학생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얻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한 교수님의 기부금과 적극적인 학교 움직임 때문에 마치 학교 당국이 불쌍한 장애 학생들에게 베풀어 준다는 권위적인 자세를 견지해 장애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게르니카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심지어 올곧게 우리의 자치권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자치권을 깨끗이 포기하고 학교 당국의 시혜적인 시스템의 배출구로 전락할 것인가?라는 딜레마 빠져 고민 중이다.

누구의 말대로 '자유'를 얻기는 쉬워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안타까움에 장애인 후배들의 앞으로의 방향이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에서 발간하는 '자유공간'에 썼던 원고를 참조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에서 발간하는 '자유공간'에 썼던 원고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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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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