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진 곳에 MBA 꽃 핀다

경영대학원에서 피난처 찾은 실리콘 밸리의 닷컴가

등록 2001.03.28 04:29수정 2001.03.2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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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 사직, 재충전, 자기 계발, 도피성 유학...

IMF한파로 잔뜩 움츠렸던 한국 직장인들 사이에 몇 년 전 유행처럼 번졌던 공부 열풍이 실리콘 밸리의 닷컴가에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나스닥 붕괴로 스톡옵션과 백만장자의 장미빛 꿈이 허망하게 무너진 지금 닷컴 기업에서 해고된 수많은 젊은이들이 경영대학원을 도피처 삼아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위크'지는 미국 경영대학원의 지원자 수가 예년에 비해 최고 46%까지 폭증했으며 상위권 대학의 경우 15% 가량 지원자가 늘었다고 보도했다. 한 구직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말 기준으로 383개의 닷컴 기업에서 총 3만여명이 넘는 직원이 해고되었는데 찬바람이 쌩쌩 부는 취업전선에 다시 뛰어들기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경영대학원이 매력적인 피난처로 떠오른 것.

이에 따라 지난 몇 년간 지원자 수가 계속 줄어 고민이 깊어가던 미국 경영대학원 관계자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다. 합격통지서까지 받은 학생이 입학을 포기한 채 신생 인터넷 기업으로 달려가고 재학생들은 자퇴서를 낸 뒤 창업 전선에 나섰던 몇 년 전의 닷컴 열풍에 비하면 완전히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경영대학원 입학에 필수적인 GMAT 시험 응시자 역시 12% 이상 늘어났고 카플란이나 프린스턴 리뷰같은 GMAT 대비 학원들도 덩달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경영대학원의 입학사정 담당자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지원서에 적힌 'IPO'니, '비즈니스 모델'이니 하는 생경한 단어에 흥미를 느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지원자가 인터넷을 언급하고 있어 닷컴 근무 경력만으로는 입학을 자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닷컴 출신의 경영대학원행이 단순히 피난처를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간 인터넷 신생기업을 꾸리느라 사무실 집기구입부터 투자 유치까지 모든 것을 맨주먹으로 해결해야 했던 닷컴의 경영자들이 회사규모가 커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엔 전통적인 경영학의 지혜에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


회계, 조직관리, 마케팅, 인사 등 경영지식으로 무장한 연륜 있는 인재들이 턱 없이 모자란 것을 깨달은 이들이 뒤늦게 MBA(경영학석사)에서 그 해답을 찾은 것이다.

지원자가 대폭 늘어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미국의 경영대학원은 이들 닷컴 출신의 쇄도를 반기고 있다. 이들을 겨냥한 인터넷 관련 과정을 신설하고 있는 대학원측은 닷컴 출신들이 창업 과정의 모든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한 탓에 주로 실전 사례 위주로 진행되는 교과 과정의 특성상 이들의 경험담이 수업의 질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불경기의 경영대학원 회귀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90년대 초 공화당 정권 말기의 혹심한 불경기로 인해 투자금융과 컨설팅 업계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감원의 칼바람이 불 때도 경영대학원이 이들의 도피처 역할을 해냈다. 당시 와신상담하며 경영수업을 충실히 받은 이들이 민주당 정권의 호경기 때 경영일선에 복귀해 사상 최장의 황금경기를 이끈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 돌고 도는 것일까? 몇 년째 계속되는 불경기에 지친 한국의 직장인들 역시 곰곰히 새겨 볼 지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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