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동백숲 그 상념의 공간으로

자기를 태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꽃들

등록 2001.03.29 04:58수정 2001.03.3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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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숲 가는 길
가지에 달린 동백보다 땅위에 떨궈진 동백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백이 절정에 달한 남도 소식

곳곳에 핀 매화는 이제 봄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게 한다. 더욱 따뜻한 남도에서 왜 이제야 매화가 피는지 의문스럽게까지 한다.


매화는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진 까닭이기도 하지만 남도의 곳곳에는 매화가 지천이고 그만한 매화 중에 어김없이 양지녘 돌담 아래서 먼저 꽃을 피운 매화가 진즉부터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리라.

지난 겨울 얼마나 추웠던가? 하지만 도심의 거리에서 벌써 짧은 반팔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벌써 봄이 저만치 가 버렸음을 무심하게 느껴야 한다.

내가 눈길을 주지 않을 때 봄이 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계절과 달리 봄은 사람의 애틋한 눈길을 요구하는 욕심 많은 계절이다. 눈을 들어 산자락을 보면 오늘과 내일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산 빛을 보게 된다.

어떤 힘이 그 삭막한 산을 기운 생동한 청년의 모습으로 바꾸어 가는지 자연의 힘 앞에 다시금 경외의 마음을 줄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하지만 무감하게 살고 있는 이들의 눈에 보이는 자연은 그저 이용대상의 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필요로 할 때 자연을 찾아갈 뿐인 그들은 거기 그곳에 나와 더불어 있는 이 아름다운 대지와 산과 강과 하늘이 주는 정기에 눈맞춤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억지를 쓰면서 보듬어 갈려고 버둥거린다. 그때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데 말이다.



▲동백꽃에서 꿀을 먹는 새
동백숲에 이 새들의 카랑이는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동백 숲에 불러준 스님


봄의 소식을 전해주는 화신의 종류는 많다. 딱히 무엇이 피었으니 봄이라고 얘기하기에는 각 지역이 주는 조건마다 달라 얘기하기 어렵지만 보편적인 정서속에 봄을 얘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대상은 매화이며, 그 뒤를 이어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를 얘기한다. 그리고 빠지지 않고 며칠만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어도 망울을 터뜨린 동백을 말한다.

며칠전 약속이 있어 여유있게 예술의 거리를 갔는데 누군가 나를 부른다. 무척 다감한 화가 김선생이었다. 차 한잔 하시자는 권유에 끌려 찻집에 들어서니 이미 몇 분이 함께 하고 있다. 미술평론을 하시는 이세길 선생과 스님 한분, 화가선생에 나까지 넷이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처음뵌 스님과 인사를 하게 되었다.

범능이라 하신 그 스님은 내가 어렵게 손에 쥘 수 있었던 시디 "오월의 꽃"을 부르셨던 속명 "정세현"이라는 분이었다.

바로 전날 섬진강에서 필림통에 넣어둔 매화꽃을 찻잔에 띄워 마시면서 그 자리가 범능 스님이 취입한 앨범의 표지 사진과 디자인에 관한 회의 자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4월중에 나오게될 시디의 제목은 "먼 산"이라고 하는데 기왕에 디자인 된 것의 단점을 얘기하며 보강할 계획을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사진 얘기가 등장하고 거기에 내 역할이 주어지는 분위기였다. 이미 모아둔 사진에서 필요한 부분을 골라 디자인을 하는 분에게 전달하고 보강할 사진을 강진의 백련사에서 촬영하자는 것으로 얘기를 마치고 날을 잡았다.

3월 23일 금요일 대전에 계신 스님이 백련사로 내려가면 내가 강의를 마치고 거기에 합류하여 1박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동백과 부도
동백과 함께 살고 있는 부도가 무척 다정해 보였습니다.
절집에서 열리는 동백 축제


3월 23일 강의가 길어져 광주에서 출발이 늦어졌지만 화가 선생과 둘이서 백련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얼마전 알게된 내륙 강가의 등대인 영산포의 등대를 보고 저녘 공양시간이 지나서 백련사에 도착해 난생 처음 절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게 됐다.

혀가 짧은 탓에 속으로는 걱정을 했지만 담백한 음식에 구수한 된장국과 봄나물들이 맛깔스러워 단숨에 한 공기를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만경루의 1층 찻집에서 녹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주지스님이 들어오셨다.

혜일이란 법명을 가지신 주지 스님은 4월 8일 일요일날 동백 축제를 준비하시는 과정에 대해 말씀을 하신는데 그 목소리가 힘이 있고 절도가 있으면서 자칫 흐르기 쉬운 속단들은 껌뻑 거리는 눈 빛 속에서 거르는 특징을 지니고 총기있고 재미있게 이끌어 가신다.

"사람들이 욕심을 부려서 인지 백련사의 숲들이 많이 망가지고 있어서 그 소중함을 알려드리기 위해 축제를 기획한 것입니다. 그 방법의 하나로 동백나무와 사람과 자매 결연을 맺도록 해서 보호 활동을 강화하고 환경에 대한 관심을 늘여 나갈 생각입니다"

"지금 동백 숲은 수령 5백년부터 2백년 정도의 나무들이 6헥타르에 3천여주가 있는데 매년 10년생 나무를 200∼500여주를 심어 그 면적을 넓혀가고 숲을 확산 시킬 생각입니다"

"축제만 열리면 대중들은 소외받고 정치인, 관료들이 우대 받는 분위기를 바꿀렵니다. 백련도암만쪽에서 오는 찻길을 통제하고 다산초당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오도록 할렵니다. 국회의원이건 도지사가 되었건 우리 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되었건 모든 분들은 그날 걷거나 셔틀 버스를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9시 55분부터 열리는 축제는 다른 여느 축제와는 달리 단상에 누가 올라서서 연설을 하고 찬조 연설에 누구누구 의원이 나오는 그런 식의 개막은 하지 않을렵니다"

"음식점은 딱 한곳만 운영을 하고 동백숲과 사찰 일원에서 들차회를 합니다. 음식점도 팥죽 단일 품목으로 하고 지금 무료로 드릴 것인지 유료로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의 가장 중요한 점은 동백나무 심기와 사람과의 자매 결연이며, 동백 꺾꽃이입니다. 자칫 유흥장처럼 혹은 정치인의 선전장처럼 변하기 쉬운 축제를 이 행사에 중점을 두고 해 나가면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주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절에서 축제를 한다는 염려가 싹 가셨다.

한 하늘아래 있으면서 종교가 다르다고 혹은 신념이 다르다고 해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이 발생하는 지금 간혹 선입견에 의해 권위와 이질적인 공간으로 비춰질지도 모르는 절에 대한 두려움이 친근감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고 절 집에서 지치지 않고 울어대는 슴새의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만경루의 스님
무슨 생각에 잠기신 것인지... 만경루의 현판은 억겁의 세월처럼 큰 무게로 스님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동백과의 만남

아침 공양을 하라고 깨우는 화가 김정삼 선생의 채근에 눈을 떠보니 벌써 7시가 되었다. 흠모해왔던 산사의 새벽 적요의 순간 빛나는 동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가버린지 오래고 구강포 앞 바다에는 아침 햇살이 넉넉할 뿐이었다.

이곳에 오기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출발한 것이 후회스러운 순간을 준 것이다.

하지만 부지런히 공양을 마치고 카메라를 들고 적요한 숲을 찾았다.

1,500그루라고도 하고, 3천 그루라고도 하고, 천연기념물 안내 표지판에는 7,000그루라고 나와 있는 그 숲에 가보니 사람의 자취보다 더 빠른 새들의 울음만이 가득했다.

도대체 무슨 새소리가 이리 요란한지 눈여겨 살펴보니 조그마한 몸짓으로 동백의 꿀을 먹는 동박새 보다 더 덩치가 큰 새들의 소란스러움이었다.

선홍빛 뚝뚝 떨어진 동백꽃은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고 새들은 이 나무와 저 나무 사이를 오가며 꿀을 먹기에 정신 없는 표정이었다. 주둥이는 노란 꽃가루로 범벅이 된 것이 마치 욕심 많은 개가 고기를 물고 또 다른 고기를 노리는 모습과 같아 보였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낯설었지만 그 속에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숲속 이곳 저곳으로 빛을 찾아 헤메는 내 눈에는 아침 햇발을 받은 동백의 나뭇잎은 너무나 푸르러서 검게 빛을 반사하고 있고 촘촘한 그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온 한줄기의 빛은 더욱 온화한 모습으로 동백꽃의 자태를 선연하게 만들어 주었다.

황토색의 바닥위에는 선홍빛의 동백이 스스럼없이 쓰러져 있고 그 치열한 동백의 생애를 생각하여 차마 밟지 못하고 요리 저리 피해가는 사이에 온 정신이 죽음에 이른 낙화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 새들의 울음조차도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스님의 무덤 부도 한켠에 앉아 상념에 잠겨 보았다.

대저 산다는 것의 의미는 또 어떤 것인지. 생과 사의 사이에 놓인 동백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관점이 아닌 동백의 관점으로 돌아가 생각을 더듬어 본다.

그들에게 새들은 만나기 어려운 암술과 수술 사이의 오작교 역할을 해 주는 반가운 존재일 것이다.

그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간 자리에 남은 동백꽃은 새로운 생명을 이어갈 신비한 탄생의 작업을 할 것이고 그러면서 부활을 꿈꾸며 송이째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500살이 더 된 나무 등걸은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굳센 다짐을 할 것이다. 다음 생으로의 환생을...

사실 백련사의 동백숲에서는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추한것이지를 정확히 분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아름다웠던 순간들도 이곳 숲속에서는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죽음속에 있다는 것을 말없이 몸으로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떨어진 낙화를 보노라면 그 아름다움속에 깃든 처연한 마음과 만난다.

무엇이 저 꽃을 댕강 떨어지게 만든 것인지 조금만 생각을 쫓다보면 그 마음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백련사 사적비
백련사 그 오랜 절집의 내력을 거북이 몸에 용머리를 한 씩씩한 고려 거북이 지고 있습니다.
지사의 모습을 닮은 동백

동백 숲의 이곳 저곳을 누비며 그 사이에 조그마한 빛을 받아 꽃망울을 터뜨린 춘란의 모습이나 진달래의 모습도 보았다.

다산이 이곳 혜장선사와 교류하기 위해 걸었던 조그마한 오솔길 사이로는 산수유와 꽃 모양이 흡사한 생강나무가 피어 있었고 첫 번째 언덕에서는 백련사의 전경이 푸른 숲과 아직은 피어나지 못한 겨울 냄새 뚝뚝 달고 있는 뒷 숲 사이 중간에 듬직하게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세편으로 나눠진 동백숲은 하나는 백련사의 주차장에서 들어오는 길섶 왼편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 오른편이었고 마지막은 초당가는 길 윗편 부도밭의 동백 숲이었다.

동백의 모습이 속세의 먼지에 휩싸인 내게 빛나게 보인 것은 입구 왼쪽 편의 연못위에 꽃잎을 떨구고 있는 것이 멋져 보였지만 웬지 싸구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 그 오른편은 절집의 아랫편으로 절집을 떠 받들고 있는 형국이어서인지 어둑 어둑하여 들어서기에는 무섭고 사람보다 그곳을 찾는 짐승들을 위한 공간으로 비춰졌다.

폐허가 된 백련사를 다시 일으키고 수행 도량으로서 백련결사를 만든 요세 스님의 무덤인 원묘국사 중진탑등 4기의 부도가 있는 동백숲은 경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아서 다정하게 자리를 잡고 상념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공간의 해석은 각자의 마음에 달린 법.

이렇게 전체의 숲을 바라보고 다시 만경루로 돌아와 범능 스님과 그 도반과 함께 차를 한잔 하면서 동백의 떨어진 꽃잎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다들 처연하다고 말합니다" 라는 나의 얘기에 그 스님께서는 동백의 꽃말은
"지조와 절개"랍니다.
송이 째 떨어지는 꽃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모습이죠. 벚꽃처럼 눈 날리듯 하나 하나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활짝 피웠다 단숨에 몸을 날리고 다른 세상을 찾는 꽃의 모습에서 옛 사람들은 지조 있는 꽃이라고 동백을 읽어 내고 이런 동백의 풍모를 닮고자 했답니다. 라는 말로 내 의문에 답을 해 주셨다.


▲동백숲의 스님
동백숲 사이로 한줌 빛이 그 사이를 걸어오는 스님의 이마에 빛납니다.
수행의 도장으로서 백련사

한참 어릴적 백련사를 찾은 적이 있다. 그때 보았던 만경루의 분위기는 거대한 성곽의 망루와 같고 문을 지키는 중무장한 장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의 그 느낌은 강진을 떠 올리면 다산초당을 얘기하고 영랑을 얘기하고 청자를 얘기하고, 무위사를 얘기하는 것으로 마감짓게 만들었다.

첫 인상에서 백련사는 내게 위압적인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다산초당을 통해 백련사를 찾은 이후로는 그런 백련사의 이미지는 어렵게 다가가는 공간이 아닌 그저 세상밖에 있는 또 하나의 절로 다가왔다.

그 공간을 어느 곳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의해 이렇듯 가까움과 멀어짐 사이를 넘나드는 것이다.

백련사를 품고 있는 것은 만덕산만이 아니다. 곽재구 시인의 "다산 초당 가는 길"이란 시처럼 장검(긴칼)처럼 늘어진 도암만이 더불어 백련사를 품고 있다. 하지만 도암만은 품어 주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뱃길이 사찰 바로 앞까지 닿기 때문에 왜적들의 끊임없는 침입을 받아야 했고 그런 탓에 몇 번 불에 타는 수모를 겪기도 했던 것이다. 스님들은 그런 백련사를 구하기 위해 주변에 행호토성을 쌓았다고 한다.

원래 절이 지어진 것은 신라 문성왕 1년에 무염선사란 분이 창건을 했지만 쇠락하고 고려후기에 요세라는 분이 지역 호족의 도움을 받아 중건을 하고 수행의 결사체인 백련결사를 만들어 절의 이름을 세상에 빛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 스님의 공덕을 기리는 부도가 바로 원묘국사 중진탑인 것이다.

다른 여느 절과 달리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이 없는 백련사에서는 가장 먼서 우람한 체구로 백련사를 알리는 만경루와 만나게 된다.

전면에서는 2층의 건물인데 법당에서 보면 단층 구조로 보이는 이 공간은 강당으로 사용된 것으로 마루에 앉아 밖을 보면 도암만의 까막섬을 비롯하여 바다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시원한 눈맛을 주는 공간이다.

1층은 현재 차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은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탓에 주지 스님이나 찻집에 부탁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만경루와 법당인 대웅보전 두곳의 글씨는 신지도에 귀양을 왔던 원교 이광사의 글씨로 눈길을 끈다. 무겁고 장중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글에 묻어있는 떨림은 편치 않은 귀양의 심경이 베여 있는 듯 하다.

법당의 좌측편에는 백련사의 역사를 지고 있는 비석이 하나 있다.

원래 이 비석은 원묘국사의 부도비로 사용되었던 것인데 비가 없어지고 받침과 머리만 남아있는 것을 조선 숙종때 절의 역사를 담은 글을 써서 몸돌을 세워 고려와 조선이 만나 한 몸을 이뤄 오랜 풍상을 이기고 절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귀부라고 하는 거북이의 몸통에 용머리를 하고 있는 부분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 보면 정면을 응시하고 길게 수염을 늘어 뜨린 모습에서 당당함이 마치 만경루를 옮겨다 놓은 듯한 인상을 느끼게 한다.

비석 전체가 여러 문양을 세겨 넣어 용의 얼굴과는 달리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동백꽃
개량된 품종이 지닌 화장기 있는 얼굴은 아니어도 그만이 지닌 아름다운 모습은 내 어머니 같았습니다
또 다시 그 길 위에서

이렇듯 공간을 한바퀴 돌고 다시 범능 스님과 만나 촬영에 들어갔다. 무엇을 배경으로 삼을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만경루의 창과 동백숲과 절로 오는 길 그 세 공간 정도면 내 생각에는 충분했고 그렇게 사진 촬영을 하고 스님을 따라 영암의 도갑사와 광산의 포충사를 거쳐 광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사이 내가 찍어 두었던 사진만도 열통 정도였는데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 없었지만 필요로 하는 사진이 선택된 것은 10컷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스님에게 드렸다.

과요불급이라고 했던가. 필요로 하는 것 이상 욕심을 탐한 그런 사진찍기였기에 후회스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숨막히는 도심을 떠나 머물렀던 산사의 하루는 정말 동백으로 인해 더욱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어 가슴에 남아있었다.

그런 탓에 학교에서 실습차 떠났던 제주답사여행의 귀환길에 완도를 거쳐 뱃길로 돌아와 녹초가 된 학생들을 채근하여 다산 초당으로 올라 백련사의 동백숲을 보고 광주로 돌아오는 코스를 급조하여 다시 동백숲에 머물러 보았다.

그날 그 아침의 고졸한 분위기는 모두 학생들의 수근거림에 달아나 버리고 괜시리 아쉬움만이 남아 아직 피워내지 못한 동백을 바라보다 돌아오고 말았다.

낱개로 보았을 때는 화려한 모습을 지닌 동백이지만 숲 속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한송이 한송이 약간의 붉은 기운만을 간직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가졌고 생명을 마치고 다시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에 서 있는 땅위의 동백은 그 무엇보다 빛났던 것이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이었다.

소멸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낀 탓일까? 후두둑 지기 시작한 동백과의 만남은 이제 처음 열린다는 4월 8일 동백과 인간과의 자매 결연 행사에 대한 기대로 남겨 두고 또 나는 나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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