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정은 놀이터인가, 성지인가

KBS 1TV 역사스페셜을 봅시다

등록 2001.03.29 18:17수정 2001.03.3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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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鮑石亭)은 어떤 곳인가? 포석정(사적 제1호)은 경주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경주시 배동)에 있다. 돌을 포개어 놓은 정자라는 뜻의 포석정(鮑石亭)은 63개의 석재가 어우러져 구불구불한 물길을 만들고 있다.

동서의 긴 축이 10.3m, 가운데 남북으로 짧은 축이 4.9m이다. 수로의 폭은 일정치 않으나 평균 30cm 정도이며, 깊이도 일정치 않은데 평균 22cm 정도이다. 물이 들어오는 들머리와 나가는 곳의 낙차는 40cm 정도이다.


우리는 역사시간에 포석정은 물길을 따라 술잔을 돌리면서 놀았던 곳이라고 배웠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애왕 4년(927년)에 이곳에서 주연을 베풀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이 쳐들어와 신라가 망했다고 한다.

맞을까? 정말 포석정은 임금의 놀이터이고, 경애왕이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 비빈 궁녀들과 술판을 벌이다 살해를 당한 것이 사실일까?

[경주남산:겨레의 땅 부처님 땅]을 지은 윤경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산성은 당시 나라를 지키는 군사들의 심장부였으니 왕이 남산성을 순시하고, 나라를 위해서 애쓰는 충신과 장수들을 위로하는 잔치를 포석정에서 베풀었을 것이니 포석정은 남산성의 휴게소 같은 곳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전혀 다른 견해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기록과는 전혀 다른 것은 물론 윤경렬의 견해와도 다른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첫째, 경애왕이 살해당한 때가 927년 12월이다. 경주가 남쪽 지방이지만 12월이면 야외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기엔 추웠을 것인데 경애왕이 단지 연회를 베풀기 위해 포석정을 들렀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둘째, 살해 당한 그때는 경주에서 25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영천까지 견훤이 쳐들어왔던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한가롭게 가무를 즐긴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셋째, 포석정이 위치한 경주 남산은 신라의 4대 성지로서 대신들이 큰일을 의논하였던 곳이다. 또 포석정은 주변에는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 박씨왕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오릉, 천은사 등 신라의 성지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술판을 벌일 수 있을까?

따라서 이번 주 KBS 1TV '역사 스페셜'에서는 10세기 당시 신라의 정세와 사서를 통한 추적 그리고 유체역학(流體力學:기체, 액체 등의 유체 운동을 연구하는 학문) 기술을 도입한 포석정 곡수거(曲水渠:물이 흐르는 도랑)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포석정, 그 실체를 파해 쳐본다고 한다. 포석정에서 경애왕이 비빈 궁녀와 놀다 신라가 망했다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은 신라 멸망의 당위성과 고려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취해 사실을 왜곡한 것은 아닌지 검증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경애왕이 포석정을 찾았던 때는 12월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신라에서는 팔관회(八關會:통일 신라, 고려 시대에 토속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의식)가 열리는 시기와도 일치한다. 팔관회는 본래 불교의식이지만 신라 팔관회는 호국적인 성격을 강하게 띄었으며 실제로 선덕여왕 때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팔관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경애왕은 팔관회를 열기 위해 포석정을 찾은 것은 아닐까? 팔관회의 호국적인 성격을 고려해 봤을 때 경애왕은 적의 침범을 막는 팔관회 즉, 호국제사를 포석정에서 열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삼국유사의 기록 '유포석정연오(遊鮑石亭宴娛)'에서 '유(遊)'자를 '놀다'로 해석하는데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해주고 포석정을 왕들의 놀이터로 해석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현존하는 유상곡수터 때문이다. 유상곡수(流觴曲水는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놀이이다. 하지만 유상곡수의 기원을 거슬러올라가 보면 이것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유상곡수의 전통은 중국의 왕희지에서 비롯되는데 그가 쓴 난정기(蘭亭記 : 蘭亭集序)를 보면 유상곡수가 계사라는 의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사는 3월 첫 번째 뱀날에 동쪽을 향해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 부정을 없애는 의식으로 유상곡수와 함께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유상곡수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계사라는 신성한 의식을 동반한 것으로 풍류의 멋을 지니긴 했지만 성스러운 의식도 있었다. 단순한 왕들의 놀이터로 볼 수는 없다.

포석정은 어떤 장소였을까, 경애왕이 정말 연회를 베풀던 장소였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포석정하면 떠오르는 것이 정말 술잔이 흐르다 멈췄을까하는 것이다.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장근식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포석정을 1/6 크기로 줄인 모형 실험을 해 보았다. 이 모형에 물을 흘려 보냈더니 16군데에서 수로의 벽면을 따라 작은 소용돌이가 생기는 와류현상(渦流現狀)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명 회돌이라고 하는 이 와류현상은 물이 관이나 수로를 따라가다 떨어져 나올 때 생긴다. 포석정에서 술잔은 이때 치는 회돌이 때문에 돌았던 것이다.

구전에 의하면 포석정에서 신라의 왕과 신하들은 흐르는 수로에 술잔을 띄워놓고 자기 자리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석 잔의 벌주를 마시는 놀이를 했다고 전한다.

98년 10월 경주문화엑스포를 앞두고 경북도청은 포석정에 실제로 술잔을 띄워 보기로 결정했다. 당시 인간문화재인 유명한 석공이 실물 크기의 절반 만한 포석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술잔을 띄워보았더니 술잔이 물을 따라 흐르지 않고 정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흐르는 물을 따라 술잔을 돌리는 곡수의 풍습은 중국과 일본 등에도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곡수는 술잔이 물을 따라 흘러가기는 하지만 포석정처럼 술잔이 한 자리에 머무르거나 도는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포석정의 유상곡수는 언제 술잔이 멈추고 돌아 나오는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짜릿한 재미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포석정에 대해 일가견을 가진 학자들도 술잔을 띄웠을 때 어떻게 흐를지는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고 한다. 술잔의 모양·크기·무게 그리고 담긴 술의 양에 따라 물의 흐름이 바뀌며 잔을 놓는 위치도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선조들이 어떤 방법으로 놀이를 진행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라는 장근식 교수의 말이다.

포석정은 한마디로 현대 유체역학으로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신라의 장인들이 경험과 직관으로 완성한 결과물이다. 결국 신라인들은 포석정이 호국제사의 장소이자 계사를 행한 성소였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 당시의 수리기술을 총 동원해 포석정을 만든 것이 아닐까?

주변이 모두 성지 둘러 쌓인 포석정은 그 위치를 거론해 볼 때 왕들의 놀이터라고 보기는 다소 억지스럽다. 그런데 이것은 화랑세기(花郞世紀) 필사본의 진가가 드러나면서 그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포석정이 포석사 및 사당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삼한을 통합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화랑의 우두머리인 문노가 그 곳에서 결혼을 했으며 그 후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장소라고 한다.

또 화랑세기의 포석사 기록을 뒷받침해 주는 발굴이 지난 98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이뤄졌다. '포석(鮑石)'이라 쓰인 명문기와가 발견됐고, 궁궐이나 대규모 절에나 쓰이는 기와가 다량 출토된 것이다.

결국 포석정은 신라의 성지인 남산자락에 위치한 성소로써 현재 남아 있는 석구는 포석정의 일부 시설일 뿐이고, 포석정에는 사당과 절, 제단 등 호국제사와 국가 안위를 기원하기 위한 중요시설이 들어있던 성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겠다.

우리는 이 역사스페셜을 보면서 현대 과학을 뛰어넘는 우리 조상들의 비범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역사를 단순하게 바라보지 말고, 깊이 있는 분석을 할 필요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석정(石亭) 주악사(奏樂詞)

기원사 실제사 화려한 두 절 동서로 서 있는데
그 가운데 자리잡고 포석정이 있다네
소나무 잣나무 서로 어울려 무성한데
넝쿨은 온통 하늘 덮었네
머리를 돌려보는 곳마다 진달래 꽃 피고 피어
짙붉은 웃음 골짜기에 가득 차 넘네
으스름 실안개는 서리처럼 자욱이 빗겨 있는데......

경문왕(861-875)대 신라시인 최광유(崔匡裕)의 시

덧붙이는 글 | 담당 : 김정수 PD(781-3581)

참고 :
1. 신라 장인의 탁월한 과학성 담긴 포석정 : 경향신문 이은정 기자
www.postech.ac.kr/1999k/postech/news/postech_news/1999/0910/news19990910_scienceinhistory.html
2. 옛날 정원이야기 : galaxy.channeli.net/mmchi/원림/유상곡수문화.htm
3. 신라문화원/경주자료실 : www.silla.or.kr/guide/NO.9/no9-9.htm

덧붙이는 글 담당 : 김정수 PD(781-3581)

참고 :
1. 신라 장인의 탁월한 과학성 담긴 포석정 : 경향신문 이은정 기자
www.postech.ac.kr/1999k/postech/news/postech_news/1999/0910/news19990910_scienceinhistory.html
2. 옛날 정원이야기 : galaxy.channeli.net/mmchi/원림/유상곡수문화.htm
3. 신라문화원/경주자료실 : www.silla.or.kr/guide/NO.9/no9-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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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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