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역사교과서문제로 껄끄러운 요즈음, 한·일 문화계에는 두 가지 반가운 소식이 있다.
첫째, 성인 만화 '누들누드'로 유명한 만화가 양영순 씨가 5월 창간되는 일본의 격주간지 '코믹 브레이크'에 '누들누드'와 비슷한 형식, 그러나 성(性)에만 국한되지 않은 보다 작품성 있는 형식의 단편만화를 1년간 연재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첫 번째 소식이 조금 개인적인 것이라면 넓은 의미의 문화계 소식으로,
둘째, 오는 4월 28일부터 5월 27일까지 서울 소격동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차세대 디자이너 40여명이 대규모 전시회인 <액티브 와이어 Active Wire>전을 개최한다.
전시회의 제목인 '액티브 와이어'는 전기의 활성 교류 상태인 '라이브 와이어(Live Wire)'보다 더 역동적인 전기의 교류상태를 의미한다.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와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등 한일 양국간의 문화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양국간의 문화교류는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형태의 교류가 아니라 '액티브 와이어'처럼 활성적이고 짜릿한 문화교류, 현실적이고 다양한 교류의 실체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픽, 타입디자인, 일러스트, 캐릭터, 만화, CF, 뮤직비디오, 인터랙티브, 웹디자인 등 한국과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이번 대규모 전시회는 양국가 모두에게 획기적인 문화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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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티브 와이어 전시 작품 ⓒ 아트선재 |
이 행사를 주최하는 양국의 디자이너 단체는 일본의 도쿄 타입 디렉터스 클럽(TDC)과 한국 시각정보디자인 협회로, 행사에 참가하는 디자이너들의 이름 역시 우리에게 꽤 익숙한 이름들이다.
동아일보에 '도날드 닭'을 연재했던 이우일 씨를 비롯, '누들누드' 양영순, '스노우 캣' 권윤주, TTL과 굿모닝 증권 CF로 유명한 박명천, 차은택, 김수정, 현태준, 그리고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백현진 씨 등이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참가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는 움직이는 캐릭터와 그래픽 디자이너로 유명한 타쿠야 사토, 타입 디자인의 타카푸미 미야지마, 그래픽 디자인의 케이지 이토, 다찌바나 후미오, 일러스트레이터인 나기 노다, CD 커버 디자인으로 유명한 나오히로 우카와, 3명의 멤버로 구성된 디자인 팀 일도져(Illdozer), SONY사의 플레이 스테이션용 게임디자이너인 노리오 나카무라 등이 참가해 국내에서는 아직 취약한 게임디자인 및 다양한 장르를 종합적으로 소화해 내는 일본디자인의 역량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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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티브 와이어 전시 작품 ⓒ 배을선 |
이번 전시회에는 무엇보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다. 2층 전시장에는 공간감을 살릴 수 있는 25개의 포스터들이 천장에서부터 와이어로 늘어뜨려져 있으며, 웹 작업을 새로운 방식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CF 및 뮤직비디오 영상을 TV가 아닌 넓은 공간에서 영화를 감상하듯 즐길 수 있다.
한편, 3층 전시장에서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일러스트나 평면적인 포스터, 패키지 디자인, 토이 캐릭터 등의 정적인 디스플레이와 게임, CF, 뮤직 비디오 등이 프로젝션되어 2층의 전시와는 차별되는 분위기로 자유롭게 구성될 예정이다.
한·일 문화가 서로 개방되지 않았을 당시 특히 한국은 일본의 문화를 향해 환상과 거품을 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그 결정적 근거를 일본영화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러브레터>라는 영화이후, 큰 히트를 치는 일본영화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도 흥행에 실패했다. 실체를 알자 거품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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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티브 와이어 전시작품 ⓒ 배을선 |
농을 섞어 이야기하면, 일본은 한국영화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나 보다. 한국의 영화들이 일본에서 줄줄이 대히트를 치고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일본이 한국문화에 대해 거품을 물거나 환상을 쫓고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본영화의 잇따른 흥행 실패는 시대의 배경과 민족적 정서가 다른 더 구체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더 다양한 문화교류와 개방을 앞둔 양국가가 추구해야할 것은 보다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이해와 배움의 자세다. 어쨌든 양국가의 문화는 개방과 개방을 거듭하면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 안에는 여전히 서로에게 배우고 느낄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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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티브 와이어 전시 작품 ⓒ 배을선 |
사람들은 구시대의 혁명은 법률과 경제를 통한 것이었으며, 미래의 혁명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풀어야 할, 혹은 교류해야할 새로운 혁명은 "문화적"인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는 새로운 디자인의 이상에 접근해 가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가능성을 모색해보며, 한·일 양국 디자인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비교,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일본의 도쿄 타입 디렉터스 클럽(TDC) 타카코 네루누마 이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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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카코 네루누마 이사(이번 전시회 일본 큐레이터) ⓒ 배을선 |
- 일본 디자인이 너무 상업적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한국의 디자인 시장은 일본의 그것에 비해 많이 침체되어 있다. 예술이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만큼, 또한 새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부응하려면 어느 정도는 상업적으로 디자이너들을 키워줘야 한다. 이번 전시회에 전시되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도 상업적인 것이 많다. 그러나 단편적인 것을 보고 일본 디자인이 '너무 상업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한국 디자이너들은 이번 전시회를 위해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지만, 일본 디자이너들은 평소에 디자인 했던 작품중 대표적인 것을 전시할 뿐이다."
-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기자신의 느낌을 작품속에 많이 투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열정과 에너지도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디자인들이 일본의 그것보다 더 예술성이 높다. 그러나 상업적인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디자인 시장에서는 "여고생"이 최고다. 여고생들이 물건을 사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어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디자인을 많이 만들어 내어 한국 디자인 시장도 활성화 되어야 한다."
-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한국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만화는 TV속에서 어린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두가지 예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환경이야기를 하면서 다분히 정치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당시 일본인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사회적이면서도 문화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는 시대적 배경도 다르지만, 민족간의 정서도 다르니 흥행에 실패했던 것 같다. TV의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점? 아마도 대중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 어린이들이 좋아할 수 있게 대중적인 이미지로 그려졌으며, 일본의 애니메이션 기술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이들은 친근하면서도 또한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나? 이런 것이 일본 디자인의 상업적인 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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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 타쿠야 사토 ⓒ 배을선 |
- 미래의 디자인의 중심은 어디가 될 것 같나?
"국가가 아니다. 웹, 인터넷이다."
- 한국의 디자이너들과 화가들은 개인의 홈페이지를 가지고 자신의 작품을 웹상에 올리면서 인터넷으로 일반인들의 피드백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어떤가?
"일본의 인터넷 사정이 좋지가 않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갖고 있는 디자이너들도 그리 많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인터넷 사용 인구가 한국에 비해 적다. 지금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한국인들은 영어를 잘하는가?"
- 한국에서 영어바람이 몇 년 전부터 불고 있다. 조기영어교육도 유행이다. 그러나 한국도 영어라면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한국의 독자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일본 디자이너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오거나 게시판에 영어로 메시지를 남긴다. 일본의 디자이너들은 답변을 하고 싶어도 영어를 못해 답변을 할 수도 없고 메시지를 읽을 수도 없다. 내가 일본 디자이너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세계는 점차 국제적이 된다. 아무리 한·일, 한·일 하지만, 양국가의 디자이너들도 세계로 나가야 하고 더 진보해야 한다. 외국에 나가자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디자인은 인터넷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며, 그 때 디자이너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영어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 전시회 안내
- 기간 : 4월 28일(토) ~ 5월 27일(일)
- 장소 : 아트선재센터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정독도서관 방향 5분거리)
- 입장료 : 일반 2000원, 학생 1000원 / 단체 할인 : 일반 1400원, 학생 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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