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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들의 저녁식사
임상수 감독의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에는 <박하사탕>으로 '뜨기 전' 설경구가 만화가로 등장한다. 설경구는 병원에서 만난 진희경과 조개구이집에서 조개를 구워먹는다.
'설경구가 조개를 먹는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설경구와 진희경의 다음 씬(scene)이 무엇이 될지 예상하고 있을 터이다. 설경구가 조개를 먹는다는 것은 진희경과 성관계를 갖는다는 의미로 조개는 여성성기의 메타포로 쓰인 것이다.
오직 조개만 있을까? 그렇다고 하면 '냄비'가 버럭 끓고 '거기'가 섭섭해하며 '밑'이 비웃는다. '아래'는 어떡하고..
여성들은 자신의 성기를 호칭하는 단어가 결코 비속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성기의 이름이 '보지'라고.
왜? 여성들은 말하지 못하는가.
버자이너 모놀로그(The Vagina Monologues)
여성성기의 독백이라는 뜻의 연극<버자이너 모놀로그>가 5월 18일부터 6월 3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의 이혜경 씨 연출아래 '보지'라는 단어로 관객들의 귀를 간지럽힐 배우들은 김지숙, 이미경, 예지원.
김지숙은 연극의 나래이터를 맡아 '보지'라는 말을 가장 많이 말하며, 이미경은 30대 중년 여자를, 예지원은 20대 여성을 연기한다.
vagina / n. 질
monologue / n. 독백, 독백극
버자이너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질'이라고 해석되어 있으며, 우리의 말로는 '보지'이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로 비속어나 음란어가 아니다. 그러나 남성과 남성성 위주의 사회는 여성의 성기를 음(陰)하고 오(汚)한 것으로 보고 여성 스스로도 제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이 현상은 한국 뿐 아니라,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다는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서, 혹은 영어로 여성의 성기는 퍼시, 미미, 파자마, 메쉬멜로우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남성의 성기가 윌리, 해리.. 등의 이름으로 달리 불려지고도 있지만, 그 차이는 엄연히 크다.
윌리, 해리 등으로 불리는 남성의 성기는 보다 인간적이며(사람의 이름을 빌려와 쓰고 있다), 고양이라는 뜻의 퍼시, 캔디류의 메쉬멜로우 등으로 격하해서 부르고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 남성 스스로 남성들의 성기를 음하고 오한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는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원작자인 이브 엔슬러(Eve Ensler)는 '버자이너가 말하는 버자이너'라는 이 연극을 통해 여성성기를 퍼시도, 미미도, 메쉬멜로우도 아닌 버자이너로 원래 이름을 찾아주자고 제안한다.
이브 엔슬러는 미국의 극작가이자 사회운동가로 나이든 여성, 젊은 여성, 기혼여성, 미혼여성, 레즈비언, 대학교수, 배우, 기업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여성성의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고자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희곡을 쓰고 직접 오프 브로드웨이(Off-Broadway)에서 연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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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버자이너에 아무 것도 넣지 말라" 작품은 조각가 표찬용의 환영 ⓒ 배을선 |
이브 엔슬러는 독백을 하고, 다른 여자 배우들은 그리스 비극의 형식을 빌어와 여러 캐릭터를 연기한다. 배우들은, 여성의 성기 '버자이너'에 관한 이야기로 '너의 버자이너를 자유케하라'는 범세계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1997년의 오비상(Obie, 우수한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 작품에 매년 수여하는 상, 편집자주)은 이브 엔슬러에게 수여되었고, 많은 여성들은 연극<버지니아 모놀로그>를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근절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다.
여성들은 이 작품을 통해 섹스와 출산, 여성육체에 대한 폭력, 사랑 그리고 여성끼리 사랑할 자유까지, 여성자신의 가장 내밀한 경험들, 이제까지 말할 수 없었던 진실들을 찾아 떠나게 된다.
여성은 타자화되고 대상화된 여성의 육체가 아닌, 자신의 시선속에서 여성의 육체를 보게되며 주체적으로 여성성을 맞이하게 된다. 반갑고 새롭고 창조적인 보듬음으로..
그러나 아쉬움 하나. 둘..
하나.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1998년 미국 뉴욕과 1999년 영국 런던 공연 등에서 글렌 클로즈, 케이트 블랑쉬, 위노나 라이더, 수잔 서랜든, 우피 골드버그, 케이트 윈슬렛, 멜라니 그리피스, 브룩 쉴즈, 클레어 데인즈 등의 유명한 배우들과 가수 엘라니스 모리셋이 이 공연에 초청되어 일부 대사를 읊고 예쁜 이름 '버자이너'를 당당하게 말하고 갔다.
우리나라의 <버지니아 모놀로그>에서는 어떤 배우, 어떤 가수들이 공연에 함께 할까? 연극의 기획을 맡은 안미라 씨는 "하겠다는 배우도 없고 유명한 배우일수록 모두 거절했다"고 말하면서 관객 앞에서 여성성기를 직접 말할 수 있는 용기있는 배우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남편이 하지 말라고..." 혹은 "시아버지가 보시면 큰 일..."이라 말하면서 <버지니아 모놀로그>의 특별 게스트로 초청받아 대사를 읊는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언제쯤 한국 여배우들은 남자들로부터 자유로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둘, 김지숙, 이미경, 예지원. 이 세 배우들은 연습실에서 쫓겨나는 고초를 당했다. 연극에는 오르가즘의 신음소리가 많이 등장하고, 요들송 신음소리 등 다양한 신음소리를 연습했던 연습실 옆의 사무실에서 '제발 다른 곳에서 연습하길' 요청했던 것.
다시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영화<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강수연은 "남자 성기가 뭐가 예뻐, 우리 것이 훨씬 예쁘지"라고 말한다. 여성의 질은 더 이상 은밀한 구멍이 아니다.
시인 김선우의 시 <얼레지>를 빌려오자면 "나비와 벌을 기다리지 않아도 꽃은 핀다." 바람이 있잖아..
5월에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라는 바람을 타고 신비롭고 따뜻한 질의 세계에서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여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 연극 안내
- 일시 : 5월 18일 ~ 6월 3일
-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 공연시간 : 1시간 30분
(화/ 금 3시, 7시 30분, 수/목 7시 30분, 토 3시, 7시, 일 3시, 월요일 쉼)
- 티켓 : 티켓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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