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등쌀에 파김치되는 어린이들

등록 2001.05.05 08:46수정 2001.05.0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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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린이날.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지도 79돌이 된다. 당시 '어린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고 어린이날 제정에 앞장섰던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동의 인권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또 이를 무시하는 부모의 사랑은 옳은 사랑이 아니라고 맞서면서 어린이를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 대접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의 어린이는 방정환 선생이 우려했던 것처럼 사랑에 굶주리지는 않지만 역설적으로 풍요와 소외에 허덕이고 있다. 어린이에 대한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가. 물질적으로만 풍요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의 표현인가. 지금의 부모들은 어린이날만이라도 봉사하려고 마구 돈을 쓰고 물질적인 풍요를 안겨 자기만족을 위안삼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이들을 위한 배려는 이 하루로 그치고 날이 바뀌면 어린이는 그저 '미래의 희망'이라는 상투적 말치레 속에서만 대접을 받을 뿐이다. 그들은 꽉찬 하루 일과 속에 아침이면 학교로 향하고 파하면 다시 학원으로 향하는 기계적인 생활 속에 놓여 있다.

이같은 어린이들의 실태는 전교조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전교조가 전국의 3학년 이상 초등학생 1천90명을 대상으로 '어린이 문화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초등학생 3명 가운데 2명이 학교 수업과 학원 교습을 병행하는 등 상당한 학업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대부분은 가정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TV를 시청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가족과의 대화도 상당 부분 단절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이들 어린이들이 방과 후 다니는 학원 수가 2곳 이상 된다는 응답이 18.1%, 3곳 이상 5.2%, 4곳 이상 3.5% 등으로 나타나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받는 학습지가 2개 이상된다는 응답이 40.1%에 이르고 5개 이상 학습지를 본다는 학생도 6.7%나 됐다.

이같은 실태결과가 일부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이뤄지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가정경제가 어려워도 자녀들만큼은 남보다 뒤처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무리한 과외교습을 벌이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는 절반 이상 어린이가 예―체능학원이나 외국어학원에 나가는 것으로 취재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다니고 싶은 학원이 없다'는 학생이 39.1%, `억지로 하는 학원이나 학습지가 있다'는 응답이 27.9%에 달하는 등 절반 이상이 자신의 의지보다는 강요에 의해 학원이나 학습지 과외를 하고 있다는 어린이가 많다. 이들은 곧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부모의 강요와 지나친 사교육 열풍으로 그들의 인권은 빼앗기고 혹사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에게 맘껏 놀이문화를 즐기게 할 인권을 유린해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를 보호할 1차적 책임은 당연히 부모에게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자식의 양육은 부모의 희생이 아닌 의무이다. 하지만 이젠 자식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 남들보다 학원 더 많이 보내고 학습지 더 받게 하는 것이 결코 자식사랑이 아니다. 외국어학원을 보낸다고 세계화의 주역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자연을 알고 놀이를 실컷 즐기게 할 시간을 주는 것이 현명한 자식사랑이다. 그리고 인성과 품격을 갖추게 하고 정의롭고 질서를 잘 지키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급선무다. 또 점수 잘 받는 어린이가 칭찬 받는 사회가 아니라 인성을 갖추고 질서를 지키는 어린이가 주위의 칭찬을 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어린이를 그렇게 키워야 밝고 좋은 세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짊어질 어린이들을 건강한 인격체로 키우는 데 가정에서부터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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