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미륵과 거짓 인권대통령

"인권은 양보가 없습니다" 友선생님께 드리는 두 번째 편지

등록 2001.05.07 06:44수정 2001.05.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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뵙고 싶은 友선생님께.

선생님, 사춘기 시절 첫사랑마냥 봄은 저만치 소리도 없이 가버리고 날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가까운 날에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이렇게 다시 두 번째 편지를 올립니다. 어린이날이다, 어버이날에다, 스승의날까지 5월 무척 바쁘실텐데 어찌 지내시는지요?

그래도 자율 방학이 시행된 때문인지 이번 어버이날에는 '효도 방학'이란 재미있는 방학을 하는 학교가 부쩍 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서툰 솜씨로 선생님과 함께 부모님에게 달아드릴 종이 카네이션 만들기를 하던 기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어제는 일요일, 오랜만에 '태조 왕건'을 보았습니다. 권력 약화를 의식한 궁예가 왕후 연화와 두 태자를 죽이면서 오히려 민중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과정을 흡입력 있게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TV에서는 궁예가 죽여 내다버린 왕후 연화와 태자의 시체를 거두어 한 고승이 상여를 세우고 민중들과 함께 일종의 거리 시위를 벌이다 궁예의 충신인 내원의 공권력에 의해 제지당하는 장면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상여가 넘어지고 승려들이 군사들에 의해 맞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이번 대우차 폭력 진압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잘못된 권력에 항거하는 민중들의 방법이나 그것을 막은 정권들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왜 그리도 비슷한 것인지요?

그러고 보면 궁예와 김대중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패한 신라 왕조의 대안세력으로 미륵으로 민중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출발한 궁예나 문민정부 김영삼 정권에 비해 그래도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정권 교체에 성공했던 김대중 정권.

궁예가 백성들에게 현세 구원을 약속하며 미륵을 자처했듯이 김대중은 국민들에게 참된 민주화와 인권을 공약하며 국민의 정부, 인권대통령임을 자부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결국 궁예의 왕후 연화의 상여와 장례식이 거짓미륵정권 붕괴의 상징이듯 대우차 만행과 인권법을 포함한 개혁3법의 졸속처리는 거짓인권대통령, '근조' 국민의 정부임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선생님.

정부 여당인 민주당의 총무는 이를 두고 오히려 우리 국민들에게 감사하고 기뻐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노벨평화상도 받고 인권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인권법이라도 통과된 것이라고 잔뜩 자랑하며 '우매한 민중들이여 축배를 들라'며 뻐기고 있습니다.


선생님, 젊은 녀석이 너무 냉소적으로 말한다고 핀잔을 주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말씀하셨습니다.
"인권에는 어떠한 양보나 타협도 있을 수 없다"고 말이지요.

민중들의 권리를 논함에 단계론이나 우선순위를 따지는 작자들은 마치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빚을 받아야겠다고 살점을 도려내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의 논리라고 강조하셨지요.

이번 이 어설픈 얼치기 인권법은 부실공사가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것처럼 결국 인권구제는 해주지 못한 채 오히려 정권이나 공권력의 인권유린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올해 새해부터 서울 명동성당에서 수많은 인권단체 사람들이 혹한과 폭설 속에서 올바른 인권법제정과 개혁3법 입법을 외쳤던 것 아니었나요? 선생님.

이렇게 부실덩어리의 인권법을 원했더라면 그 추운데 명동성당의 구박을 받으며 그 차디찬 돌계단에서 노상 농성을 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말입니다.

그나마 태조 왕건은 드라마인지라 왕건을 궁예의 대안으로 떡하니 내세우고 있지만 지금 우리는 누구를, 아니 무엇을 김대중 대안으로 믿어야 합니까?

선생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 하나하나가 곧 국가요 나라이니 그래서 주인이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저나 우리 모두 왕건과 같은 영웅이나 대권을 추구하는 인물을 기다리기보다는 하나하나가 왕건이고 미륵이며 인권의 주인인 씨알이겠지요.

오늘따라 선생님이 제 일기장에 적어주신 글귀 하나가 가슴에 남습니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 말라."

선생님 내내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

못난 제자 형수 올림

덧붙이는 글 | 추신: 제가 행여 자신과 타협하지 말라던 선생님의 가르침을 그르친다면 언제나 그러셨던 것처럼 따끔한 일침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추신: 제가 행여 자신과 타협하지 말라던 선생님의 가르침을 그르친다면 언제나 그러셨던 것처럼 따끔한 일침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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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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