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아름다움을 찍고 싶습니다"

<카메라를 든 노동자> 노동자의 삶과 투쟁 속으로

등록 2001.05.08 00:55수정 2001.06.2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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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29일, 111주년 노동절을 기념하는 민주노총의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오래간만에 노동자가 가슴을 펴고 달리는 이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대여섯 대의 취재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공중파 방송의 카메라가 아닙니다. 그들은 카메라를 든 노동자였습니다.

카메라를 든 노동자 / 임유철 기자


▲김영석 씨(대우차 해고노동자)
ⓒ 2001 임유철
노동자, 카메라를 들다

4월 12일 방송 3사를 비롯해 전국을 들끓게 했던, 부평 대우사태는 한 노동자의 카메라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카메라맨을 만나게 위해서 부평시 산곡성당을 찾았습니다.

이춘상 씨, 대우자동차에서 용접공이었던 그는 한달 전, 악몽을 떠올리며 몸서리쳤습니다. 웃옷을 벗고 평화를 외치던 동료들이 군화와 방패에 쓰러져 울부짓는 모습에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합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작업복을 입고 나온 것도 자신은 카메라맨이 아니라 카메라를 든 노동자임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언제라도 공장으로 되돌아가 용접기를 잡는 것이 자신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4월 10일의 사건이 대우자동차에 대한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했습니다. 한달 용돈 1만원도 못주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에게 그는 카메라를 가르칩니다.

▲피로 쓴 노동해방
ⓒ 2001 노동자뉴스제작단
노동자를 담는 카메라

노동자 중심의 카메라는 노동운동이 활기를 띠던 89년 [노동자뉴스제작단]이 결성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착취와 폭압의 세월 속에서 노동자를 말하는 카메라는 13년이라는 세월을 멈춤없는 전진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노동자에게 스스로 카메라를 드는 법을 가르칩니다.

박세연(노동자뉴스제작단)
"예전에 고급 취미생활로 카메라를 접하던 노동자들이 이게 문화운동으로 발전했다. 일례로 대우차 사태는 그런 일상적인 활동에서 포착된 개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진보를 잘 활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상창작의 신비주의를 벗고 누구나가 영상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것, 그것이 카메라가 세상의 감시자로 작동되는 것이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의 강의를 듣는 대우차 노동자 김태우는 이런 기회가 생겨 너무 좋다고 말합니다.

10여년 동안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노동자의 모습을 담아온 전문 다큐멘터리스트 태준식 씨. 그의 카메라는 때마다 잠시 찾아오는 방송카메라가 아닙니다. 노동자의 겉모습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과 투쟁 속으로 보다 깊숙이 들어가고자 노력합니다.

카메라를 든 노동자의 소망

111주년 메이데이를 이틀 앞둔 4월 29일, 민주노총에서 주최하는 마라톤대회가 대학로에서 열렸습니다. 이 대회를 중계하기 위해 노동자 영상패와 독립영화인이 함께 모였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물론,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여성단체, 청년학생 등이 참여한 이 대회를 기록하는 카메라는 적어도 오늘 하루는 깨지고 짓밝히는 노동자의 모습을 기록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마라톤 대회 '출발' ⓒ 2001 임유철

그들은 대학로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서울 도심을 마음껏 달렸고, 모처럼 활짝 웃음짓는 노동자들을 기록하던 노동자 취재단도 오늘은 달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소망 한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이춘상(대우차 해고자)
"노동자 영상패가 해야 할 일은 4월 10일과 같은 그런 충격적인 일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만들고 싶은 영상은 노동자의 노동이 가진 아름다움을 담고, 그것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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