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난민캠프와 국경지대 교육 세미나에 참석하고 나서...

등록 2001.05.14 17:20수정 2001.05.1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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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 버마-태국 국경의 한 지역에서는 태국내 버마 난민촌과 국경 '해방구' 지역의 교육 문제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에는 몽족, 카렌족 등등 거의 대다수의 소수부족과 전버마학생민주전선 등 대다수 반정부민주단체들이 대거 참가하여, 각각 거주 '관할' 구역내의 교육 실정에 대해 보고하고 어려움을 짚어내고 그 대책을 토론하였다.

이들은 버마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고 소수부족의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며 전버마학생민주전선은 이미 한겨레21을 통하여서 한국에 알려진 단체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의무 교육 제도'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를 주된 화두로 삼아 캄보디아, 인디아, 태국, 필리핀 그리고 영국의 사례를 듣는 것으로 시작하여 각각 지역내의 교육 현실을 보고하고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다른 나라의 사례 발표에서 참석한 버마 교사들의 주목을 가장 끈 것은 역시 캄보디아의 사례 발표였다. 캄보디아에서 연구 조사 활동중인 영국인 학자가 '개인적 경험'임을 전제로 캄보디아의 교육 현실을 역사적으로 조망하였다.

이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캄보디아 내전 종식 이후 난민 캠프 출신과 현지에 남아있던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 대한 보고였다. 대체적으로 난민캠프 출신들이 보다 양질의 고등 교육을 더 많이 받은 경향이 있으며, 특히 영어 등 외국어 구사 능력이 본국에 남아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우수하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 기업을 비롯한 좋은 직장이 난민촌 출신들을 선호하는 바람에 본국에 남아서 '탄압'받던 사람들 사이에 불만이 생기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정확하게 현재 버마의 상황이기도 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보고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학교 출석률의 경우, 버마 본국보다 난민촌과 해방구 지역이 월등히 높은 편이다.

또한 버마 본국내에서는 군사 정권의 탄압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학업을 이어가기가 힘들고, 교육 내용에 있어서도 그 질이 난민촌이나 해방구 지역의 교육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캄보디아의 현재 모습은 버마가 곧 맞닥뜨릴 문제이기도 한 것이서 그 대책을 둘러싸고 참석자들간의 우려에 찬 열띤 토론이 있었다.

각 지역의 교육 현실에 대한 보고는 크게 다르지 않고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어린이들의 교육 기회를 제한하는 장애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보고되었다.


첫째, 가난으로 인하여 학비와 교육기자재비를 학부모가 조달할 수 없어서 학업을 시작하지 못하거나 포기하는 경우, 둘째 어린이들이 추수철을 비롯하여 농번기에는 가사일을 도와야하기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 셋째 질병과 조혼으로 인한 경우, 넷째 부모의 교육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어린이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는 경우, 다섯째 고아들이 자기 친구들이 학교에 갈때 같이 와서 교실 창문 너머로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을 쳐다보곤 한다는 보고는 참으로 가슴아픈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의 어려움에서 가장 많이 토론된 것은 역시 '언어'문제였다. 사실 이런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한국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언어문제이다. 버마 지역내에는 수많은 소수부족들이 살고 있으며, 그 소수부족은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같은 카테고리의 소수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또 다른 수많은 하위 소수부족들이 있으며, 이 하위 소수부족들도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어떤 언어를 학교에서 공용언어로 하여야 할 것인가는 참으로 민감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이다.

사실 버마의 건국 당시로부터 소수부족들은 중앙정부의 언어정책에 대해서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 반감과 갈등은 군사정권수립이후 버마언어강요 정책에 의해서 전지역에서 폭발하였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군사 정권 역시 스스로 소수 부족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한다고 이야기하며 국명 또한 이런 이유에서 버마에서 미얀마연방으로 바꾸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버마내 다수자인 버마족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강요하고 있는 형편이고, 이에 대해 소수부족 및 반정부 민주단체들은 국경 밀림 지역을 거점으로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으며, 이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부족의 자주권 수호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정을 더욱 복잡하게 한 것은 내전과 강제 이주로 말미암아 비교적 단순하던 부족의 지리적 분포가 복잡하게 뒤섞여 버렸다는 점과 하위소수부족의 자주권 문제이다. 예를 들면 카렌지역내의 회교 버마인들은 학교내 공식어가 카렌어인데 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학업을 포기하고 만다. 또한 하위 소수 부족들은 같은 카테고리의 다수 부족이 그 부족의 말과 문화를 강요한다고 반발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문제는 나아가 군사 정권을 종식시킨 이후 버마내의 단합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결합되어 있는 가장 민감한 문제여서 매 시간 집중적인 토론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아시아학을 전공하며 한국어를 배웠다는 버마인 친구는 "웃고 있지만 내 속은 정말 울고 있다"며 토론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 밖에도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토론되었다. 그러나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영어 통역에 의존하여 겨우 띄엄띄엄 알아듣는 외국인의 눈과 귀에도 이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정말 감동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군사정권과 늘 맞딱뜨려야하고, 때로는 강제이주, 때로는 도망다녀야하는 처지에서도 끝끝내 아이들에게 책과 노트를 들려주려 하는 이들의 모습은 교육이야말로 민주주의와 공존, 그리고 삶의 자부심을 이룩하는 최선의,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길이라는 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책걸상, 흑판 하나 변변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고, 제대로 된 교과서도 없어 때로는 군사 정권의 교재 그대로 사용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지고, 다양한 조직들끼리, 그리고 때로는 조직내에서 갈등과 반목으로 아픔을 겪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버마 교사들의 신념이 만들어 낼 '민주주의 버마'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얼마전 여기 오마이뉴스에 들어와서 한국에 있는 버마친구들의 기사를 접하고 심히 부끄러웠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기가 말한 것에서 아주 작은 것만큼만도 약속을 지킨다면 버마 친구들의 아픔에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캠프를 나녀와서 읽은 한 주간지의 기사에 의하면 국제 사회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아웅산 수지와 대화에 나섰던 군사 정권이 아세안 국가들과 분위기가 좋아지고 일본이 경제 원조를 약속하면서 파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얼마전 여기 오마이뉴스에 들어와서 한국에 있는 버마친구들의 기사를 접하고 심히 부끄러웠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기가 말한 것에서 아주 작은 것만큼만도 약속을 지킨다면 버마 친구들의 아픔에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캠프를 나녀와서 읽은 한 주간지의 기사에 의하면 국제 사회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아웅산 수지와 대화에 나섰던 군사 정권이 아세안 국가들과 분위기가 좋아지고 일본이 경제 원조를 약속하면서 파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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