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한 황당한 신원조회

여권 연장신청하러 갔더니...

등록 2001.06.09 13:02수정 2001.06.0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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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여권이 기간만료가 되어 6월 7일 종로구청에 연장신청을 하러 갔다. 구청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2시간 가까이 대기표를 받아 기다린 후에 가까스로 신청서류를 접수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 대부분은 6월 12일 화요일에 여권을 찾으러 오면 된다고 했는데 필자에게는 "신원조회 미회보 처리안내"라는 안내장을 하나 주면서 서울경찰청에 신원조회를 의뢰하여 그 결과에 따라 처리가 된다며 일주일 후에 여권 발급여부에 대해 다시 문의하라는 것이었다.

"미회보? 신원조회?"

왜 내가 신원조회를 받아야 하는지 궁금했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여권신청을 하러 갔기 때문에 2시가 넘어버려 빨리 회사로 복귀하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돌아왔다. 당장 출국할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남보다 여권이 며칠 늦게 나온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회사로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상당히 기분이 언짢았다. 우선 "미회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었고, 남들과 달리 내가 "신원조회"를 받아야만 여권이 발급된다는 사실에 무슨 범죄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성인 남녀는 여권을 신청하면 여권을 발급받기 위한 신원 조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여권서류를 신청할 때 구청 여권과 직원이 컴퓨터로 뭔가를 조회하는 것 같았다. 아마 전산으로 신원조회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전산 신원조회에서 적합일 경우에는 곧바로 여권 발급 절차로 들어가게 되고 신원조회가 미회보일 경우에는 구청장이 경찰청장에게 신원조사를 의뢰하게 되고 경찰청 신원반에서 서면으로 신원조사를 다시 한 경우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자료보완을 신청자에게 요구해 이상이 없을 경우에 적합 판정이 나면 여권 발급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회보가 되어 자세한 신원조회를 해야한다는 것이 신청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불특정 다수가 신원조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서울경찰청 신원반에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해 본 결과 미회보가 되어서 신원조사 대상이 되는 사람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경우 때문이라고 한다.


전화통화를 하면서 급히 대충 메모한 내용이라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으나 대충 무슨 뜻인지는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1. 형사사건에 계류중이거나 뭐 하여튼 뭔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
2.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뭐 그런 경우
3. 행정제재를 받은 경우
4. 국가보안법이나 공안 사건 등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 등등

전화통화를 하면서 필자는 깜짝 놀랐다. 형사사건, 주민등록말소, 행정제재는 고사하고 교통위반 딱지 한 번 뗀 적이 없는데 위 세가지는 문제가 없을테고 그럼 혹시 내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단 말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보안법과 필자가 문제가 될 것이 있다면 필자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좀 닮았다는 거 하나 뿐이다. 나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주위 사람들이 가끔 그런 말을 하기는 한다. 그런데 그게 잘못됐단 말인가?

혹시 필자가 무의식중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가 궁금해 서울경찰청 신원반장과 통화를 했다. 그랬더니 신원반장의 말이 가관이다. 필자와 이름이 똑같고 생일이 똑같고, 본적지가 비슷한(필자는 경북이고 필자와 비슷한 사람은 대구라고 했다) 사람이 형사사건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조사해 본 결과 필자가 문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권은 곧바로 발급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니 그럼 이름이 똑같은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내가 의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건 연좌제도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하나? 분명 전산망(이 전산망은 외교부와 구청과 경찰청이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하면 생년월일은 같아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텐데 말이다.

도대체 비싼 돈 들여가면서 만든 전산망이라는 것은 뭐하는 것인가? 비슷하면 아무나 무작위로 골라내서 서면조사를 해봐야 할 정도로 우리 나라 국가전산망이라는 것이 허술하단 말인가?

아무튼 필자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과 또 비교적 친절하게 답해주는 신원반장의 말에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그저 이름이 비슷하고, 나이가 비슷하고, 본적지가 비슷하다는 것 때문에 자세한 "서면신원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퍽이나 불쾌했다.

여러분들도 필자와 같은 경우를 충분히 당할 수 있다. 앞으로 자식을 낳아 이름을 지을 때는 무슨 오행이나 사주팔자 뭐 그런 것을 따져서 짓기 보다는 비슷한 이름의 범죄자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펴봐야하는 것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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