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씨는 미국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등록 2001.07.07 10:07수정 2001.07.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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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씨가 한국에 망명해 왔을 때 그가 주체사상의 이론적 입안자라고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가를 정밀하게 검증할 수는 없다. 나는 북한 내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며 주체사상의 형성사에 대해서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황장엽 씨 스스로 자신이 주체사상을 고안했다며 김일성 주석이 세상을 뜬 후 그것이 심각하게 변질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망명하게 되었노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은 있다.

그렇다면 나는 황장엽 씨가 텔레비전이나 신문, 그리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이 보여주는 오늘날의 북한 사회에 대해 심각한 책임을 느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오늘날의 북한 사회는 그야말로 '사람 살 곳이 아니다.' 물론 사람은 어느 사회에서나 어느 만큼씩은 적응해 살아갈 수 있는 신축자재한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사회는 자기 구성원을 체제내화 하는 이념적 기제를 양성하고 있기 마련이다. 북한에서는 바로 주체사상이라는 것이 그것에 해당한다.

북한 사람들은 한편으로 그 신축자재한 인간 본연의 적응력을 발휘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밤낮없이 설파되는 그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내면화하면서, 너무나 비정상적인 삶을 너무나 정상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쩔 수 없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숱하게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주체사상이라는 것은 조잡하면서도 지독한 독재사상에 불과하다. 나는 그것을 접해 보았으나 "수령은 인민의 뇌수"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혐오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조잡함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주체'라는 개념을 구조적으로 분석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이론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지독한 독재사상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사람들을 수령이라는 최고위자의 의지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하는, 생물체의 수족 또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국민 또는 인민 개개인이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체임을 가정하지 않는 사상이 야만과 억압의 사상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사상을 김일성 주석을 도와 입안했다는 분이 바로 황장엽 씨이다. 북한 방방곡곡에 거대한 동상을 세우고 이름난 산마다 자기를 찬양하는 글발을 새기도록 허용한 분을 도와 그런 것들에 이론적 근거를 부여한 사람이 바로 황장엽 씨인 것이다.

한국 현대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해방기에 월북한 문학인들이 미국의 간첩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죽음을 당하거나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것에서 언제나 슬픔을 느낀다. 또한 '같은' 사회주의자이되 탄압이 극심하던 일제말기에도 그 어떤 이처럼 조선을 떠나지 않고 꿋꿋이 지하운동을 했던 박헌영 같은 사람들이 정작 사회주의의 나라가 되었다는 북한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것에서 언제나 아픔을 느낀다. 북한의 현체제는 지독한 숙청의 과정에서 형성되었던 바 그 과정은 곧 주체사상이라는 것의 형성과정이기도 했다.


이제 미국 정치사회에서 매를 닮은 분들이 황장엽 씨를 초청하고 그 분은 그것에 기꺼이 응하여 한국을 떠나려 하고 있다. 한국의 정부는 그 분의 신변이 보장되지 않았음을 문제삼아 보내지 않으려 한다고 신문은 쓰고 있다. 그것은 내게는 그 분이 미국으로 날아가서 또 한 번의 망명을 선언하면서 한국정부를 비난하지 않을 것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아마도 황장엽 씨는 한국과 미국에서 야만적인 북한체제를 고발함으로써 망명객으로서의 자기를 정당화하려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런 활동을 제약하는 한국정부의 울타리를 벗어나 '진정한 말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보다는 강대국의 자존심을 내세우는데 밝은 미국내 강경파들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지독히도 비민주적인 북한의 정부와 협상을 벌여야 하는 한국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어 자기의 입지를 살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또한 그것은 혹여 북한 내에서 움트고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흐름을 외부로부터 막는 본의 아닌 결과를 빚을 것이다.

황장엽 씨는 미국에 가서는 안 된다. 주체사상의 이론적 입안자로서 책임을 느끼고 자기를 절제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 분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우울해진다. 미국의 강경 인사들은 어렵고 미묘한 한반도 상황을 얽힌 실을 단칼에 끊어내듯 해결하려 하고, 수십 년을 비민주적인 남한 체제의 수혜자로 살아온 한나라당의 '보수' 인사들이나 언론들은 야만적이고 믿을 수 없는 공산정권과 협상하려 한다고 지금의 정부를 비판하기에 바쁘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인권상황을 우려하고 북한체제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는 모든 말과 글을 위험시하면서 현 정권과 한반도를 위기로 모는 행위로 간주하는 분들도 있다. 제3의 태도란 이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진 사회에서는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말일까.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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