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의 좌우지간 중국이야기(20)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등록 2001.07.10 16:07수정 2001.08.0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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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96년 2월 2일부터 2월 12일까지의 중국 여행기이다. 필자와 10여명의 일행(교수, 시인, 화가, 사진작가, 학생 등등)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위해(威海)에 내려 장보고의 얼이 서려있는 적산(赤山) 법화원(法化院)을 거쳐 공자의 생가와 공묘가 있는 곡부를 거쳐 태산(泰山)이 있는 태안(泰安), 연대(烟台)를 거쳐 기차로 북경에 도착해 둘러본 후 프로펠러 쌍발기를 타고 연변에 들렸다가 다시 북경으로 나와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10박 11일의 일정을 적은 글이다. 편집자 주)

우리 일행은 9시에 곡부를 출발해서 10시 10분에 태안에 도착했다. "登東山小魯 登泰山小天下(동산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아 보이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 보이는구나." 공자가 타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고 회고한 말이다.


사실 태산은 우리에게도 꽤나 알려진 산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오르면 못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양사언의 시조는 누구나 다 외우고 있는 시조다. 필자도 태산에 오르기 전까지는 정말 태산이 높은 산인줄 알았다. 혹시 산소호흡기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고민까지 했을 정도니 말이다.

옛날에는 산소호흡기가 없었을 텐데 공자는 어떻게 태산을 올랐지? 아마 끝까지 다 오르지 못하고 중간쯤에서 천하가 작다고 읊조렸던 것은 아닐까 상상도 해보았다.

실제 태산은 백두산보다도 훨씬 낮다. 한라산보다도 낮다. 그러면서도 중국을 대표하는 산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태산은 산동반도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산이기 때문이다. 산동반도는 끝없는 평원으로 이어진 평지이다. 이런 평지 한 가운데에 불쑥 솟아있는 태산이 높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1545m. 이게 태산의 높이다. 에이. 고작 1545m인데 천하가 작아 보인다고? 공자도 중국 사람인지라 장비만큼 뻥이 심했나보다. 하지만 태산은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중국의 중심에 위치한 산으로 인식되어 온 상징적인 의미의 산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말 그대로 '泰山'인 것이다.

진시황도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지내면서 불로장생을 기원하였을 정도로 태산이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우리의 백두산처럼. 하지만 우리 백두산이 한끗발 위다는 사실이 가슴 뿌듯해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라서일까? 선조 때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1517∼1584)이 정말 태산을 올라보고 이 시조를 지었다면 아마 태산이 높다하되가 아니라 백두산이 높다하되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태산에 오르기 전에 먼저 우리는 태묘에 들렸다. 태묘는 태산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규모도 규모거니와 오랜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곳이다. 태묘에는 중국 국보 두 가지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비림(碑林)이라 할 수 있는 비석들을 모아둔 전각에 있는 진나라 비문이고 또 하나는 분재다.

진나라 비문은 하도 오래되어 선명하지는 않지만(사실 선명하다고 해도 무슨 뜻인지 필자가 알 길이 없지만)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는데, 비문의 사방은 유리로 덮여 보호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크고 작은 비석들이 정말 비석으로 만든 숲처럼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다양한 색깔과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의 비석에 새겨진 각양 각색의 글씨 등등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하나의 국보는 분재다. 당시는 겨울이라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화분은 땅에다 묻어두어 나무만 위로 올라와 있었는데 분재라고 해서 아, 그런가보다 했지 실제로는 키가 1m∼2m나 되는 것들이 즐비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분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수많은 분재들 중 하나가 국보라고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소나무 같아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소나무가 수령이 몇 백년 이상이 되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하기사 웬만한 건물의 기둥같은 밑둥을 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갔던 선생님 중에 아마추어 사진작가 한 분이 계셨다. 그렇지 않아도 여행 내내 이상한 것들만 찍어서 역시 작가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물만난 고기처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데 그래서 그런지 분재원의 나무들이 더욱 더 신기하고 특이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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