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형, 안녕하신지요.
일전에 보내 주신 정성 어린 메일을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요즘 적극적으로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저의 건강과 시간 손실을 걱정해 주시고, 그리고 일부 독자들의 좋지 않은 반응들에 의해 혹 마음을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로 여러 가지 귀한 조언들을 베풀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형이 저의 신념과 확실한 태도를 깊이 이해해 주셔서 우선 고맙고, 저를 따라 형도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해 주시기로 해서 더욱 고맙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젊은 사람들로부터 이해와 지지를 받는 것보다 저와 같은 세대인 50대 장년기의 세월을 사시는 분들로부터 이해와 격려를 받는 것이 훨씬 즐겁습니다. 사실 그동안 나와 비슷한 연령의 세대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절망을 안으며 살아왔으니까요.
사이버 세상의 삭막성과 익명 공간의 포악성을 잘 알고 계시는 형으로부터 '언어 테러'에 대한 염려를 접하고 나서 어젯밤에는 그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것에 관한 얘기를 쓰고자 합니다.
저는 일찍이 투서나 전화에 의한 '언어 폭력'을 많이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만,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모두 '테러'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가장 극심했던 때는 지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후였습니다. 그 당시 내가 사는 충청도에는 자민련에 의한 이른바 '신지역감정'바람이 온 땅을 휩쓸었지요. 저는 그것이 너무도 가슴아팠습니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사는 우리가 영남과 호남, 동서로까지 나뉘어 지역감정 대결을 벌이는 것도 슬픈 일인데, 거기다가 충청도까지 지역감정 바람에 휩쓸리다니! 나는 그것이 정치인들의 정략의 산물이라는 현실이 너무도 억울했고, 그것이 사람들의 이성을 집단적으로 한없이 철저하게 마비시켜 버리는 현상에 치를 떨었습니다.
어떻게든지 내가 살고 있는 충청도의 한구석, 서산과 태안 땅에서만이라도 지역감정바람을 극복하는 멋진 상황을 만들어 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너무도 엉뚱하고 불가능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작가로서 꿈마저 꾸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해서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비록 농촌의 한적한 풀밭 위를 나는 한 마리 반딧불이에 지나지 않는 미약한 글쟁이일지라도, 내 온 마음과 열정을 다하여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름 없는 작가의 한 조각 글의 힘이라는 게 거목의 잎파리 하나 흔들지 말지 하는 실오라기 바람 같은 것임을 잘 알면서도, 지역감정바람을 개탄하는 글을 많이 썼습니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정체와 성격과 폐해를 조목조목 설파하고, 민족 통일에의 꿈을 안고 통일 역량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지역감정 극복이 우선의 가장 중요한 명제임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글들을 지역신문들―<새너울> <태안신문> <홍성신문> 등에 열심히 기고하였지요.
그로부터 내가 겪었던 전화에 의한 언어 테러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연일 노모 님과 온 가족을 노이로제 상태로 몰아넣었던 당시의 그 상황은 제가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 11·12월호에 발표한 「한 번도 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소설 속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는 말로 소개를 대신하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런 과정에 의해 언어 테러에 대한 경험은 비교적 일찍, 꽤 충실하게 쌓은 셈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면역이 되었지 싶습니다.
나이 오십이 훌렁 넘어 중학생 딸아이로부터 컴퓨터 다루는 법과 인터넷을 배워 사이버 세상으로 나아갈 때 나는 그 익명의 공간 안에 내재해 있을 언어 폭력―익명 공간의 포악성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습니다. 참으로 경이적인 인터넷이라는 현대 문명이 인간의 품성까지 발전시키고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미리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세계를 동시에 하나로 이어주는 이 현대 과학 문명의 총아가 사람들의 심성을 더욱 거칠고 교활하고 음험하고 부박하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지만, 인터넷 세상 주민으로서의 생활을 마냥 회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할 때도 처음에는 나도 익명의 편리를 취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러나 나는 좀더 떳떳하고 확실하게 내 뜻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어떤 이는 사이버 공간에 실명으로 투신하고 있는 나에 대해서 '이름 없는 작가가 그 무명을 만회하고자 하는 술책이요 만용'이라고 몹시 비틀어서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니, 내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런 류의 '제멋대로의 생각' 들은 아예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나는 내 모든 글들에 실명을 밝히므로써 글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글의 설득력이며 효용성 따위가 배가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리고 나는 은연중에 내 나이도 밝히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인터넷 세상 주민들은 다수가 젊은 사람들일 터이므로, 나같이 50대 중반의 세월을 살고 있는 사람이 실명을 내놓고 글을 올리고 하면,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갖추어 줄지도 모른다는―그런 순진한 기대를 버리고 싶지가 않았지요.
그리고 안티조선 관련 글들을 처음에는 안티조선 운동 사이트인 <우리모두>에만 올리다가, 내 글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여기 저기 유명 사이트들에도 옮겨진다는 사실을 안 것에 연유하여 내 스스로 차츰 발표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이왕 나섰으니 안티 조선 운동을 좀더 적극적으로, 효과적으로 벌여보자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러다가 최근에는 또 하나의 대형 사이트인 <오마이뉴스>에도 들어가서 '자유게시판'에다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처음 <오마이뉴스>의 자유게시판 풍경을 볼 때는 솔직히 겁이 났습니다. 거칠고 포악하고 야비한 성정들이 유난히도 많이 드나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러 번 망설였지요. 그러나 식인종이 사는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찾아들어가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들을 생각하니 용기가 났습니다. 선교사, 순교자와 같은 비장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요.
<우리모두>는 물론이고, 중립적인 분위기가 유지되는 사이트들에서도 내 글은 비교적 호평을 많이 받은 듯싶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답변글로, 메일로, 내 개인 홈피 방문 등등으로 나를 격려해주었습니다. 그 고마운 인사들 중에는, 참으로 감동적인 말들도 많았습니다. 나를 칭찬하고 지지해 주었대서가 아니라, 그들의 예의를 갖춘 정중한 태도와 뜻이 깊은 말씀들은 내게 '깊은 밤 숲속 길 나그네의 발걸음을 이끌어주는 등불' 같은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반응들도 심심찮게 접하곤 합니다. 그것이야 뭐, 세상의 당연한 한가지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나에 대한 비판과 비난들을 잘 살펴보면 한가지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심성 안에 '지역감정'을 깔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 표현이 매우 포악하고 거칠다는 것이지요. 익명 공간의 포악성을 최대한 발휘한 표현들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예외없이 지역 감정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이버 공간 안에서도 즉발적이고 무조건적인 적개심―맹목적인 지역감정의 포악성을 일상적으로 느끼고 겪는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오마이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동원할 수 있는 모욕을 다 동원해다가 퍼부어대면서, '하와이 따블백이 주민등록을 옮겨놓고 충청도 사람 행세'를 한다고, 자기 목부터 마구 비틀더군요. 형께서도 알다시피 나는 충청도 태안 구석에 수백년 뿌리를 박고 살고 있는 동작 굼뜨고 느려터진 사람인데….
지역감정 말이 나왔으니 잠깐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군요.
나는 지역감정 문제에 관한한 경상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감정이 정치인들에 의해 가장 먼저 표발된 것도 경상도이고, 지역 차별의 수혜를 오랜 세월 가장 많이 누린 것도 경상도이며, 망국적인 지역 감정을 그대로 유지해 간다면 그것의 효과를 가장 많이 누릴 곳 역시 경상도니까요. 현실적으로 지역감정의 위력을 가장 크게 지니고 있는 경상도 사람들의 겸허한 성찰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새로운 역사 창조에서 참으로 중요한 미덕이 되리라고 보는 거지요.
천박한 우리의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에 의해서 지금도 무시로 조장되고 있고,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회창 씨가 다수 국민 여론과 정면으로 맞서며 족벌언론을 비호하는 것도 그 심층을 들여다보면 내년 대선과 연계하여 영남의 지역감정 덕을 볼 수 있는 조건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지요.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에도 우리나라의 다수 정치인들이 이렇게 지역감정에 기반하여 정치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입니다. 지역감정에 기반하여 정치 생명을 이어가는 정치인들에 의한 정치는 그만큼 퇴행적인 것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것과 연관하여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바라보게 되면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그의 정치 철학은 도대체 무엇일지, 제대로 있기나 한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나라의 장래에 대한 깊은 고민과 고뇌보다는 오늘 당장의 셈법에만 급급해하는 듯한 그에게서 별다른 비전 같은 것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참으로 불안과 허탈감을 갖게 합니다.
정치 환경상 정치인들이야 '속물근성'을 극복할 수 없고 그리하여 계속 지역감정을 이용한다손 치더라도, 그러면 그럴수록 지식인들은 스스로 그것을 극복하려고 애를 써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식인들부터 그것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각별히 조심해야 하고, 지역감정 문제와 조금이라도 연결될 소지가 있는 발언이나 처신은 극력 경계를 해야 합니다. 지식인들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비전을 온몸으로 안고 살아가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소설가 이문열씨가 최근에 보여 준 일련의 경망스러운 처신은 많은 아쉬움을 안겨 줍니다.
그가 만약 지역 감정이며 보수 이데올로기며 모든 기득권이 결부되는 자리에서 내려와 진보의 자리에 위치하고 오늘의 신문 개혁 운동에도 동참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그도 역시 영남 쪽의 지역감정과 결부되는 온갖 험악한 비난에 직면했을테지요. 더구나 그는 영남 출신이므로, 자기 동네 사람들의 배신감 때문에 엄청난 곤욕을 치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상황이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그의 그런 수난은 참으로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어쩌면 더 큰 희생을 자초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가까운 이웃들의 분노를 블러들여놓고 돌팔매질을 당하는 형국이기도 할 터이니, 그것만으로도 그의 그것은 참으로 크고 비장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스스로 자기 집 마당에서부터 지역감정의 위험스러운 덫을 해체해 가는 일이 되므로써 그것은 곧바로 역사적인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가정법은 무의미하고 헛심 빠지는 것이니 이 얘기는 그만 접고, 이제 결론을 꾸려야겠습니다.
원래 이 글을 시작한 동기는 보다 성숙한 안티조선 운동으로 인터넷 세상을 조금이라도 정화해 나갔으면 하는―그 희망을 표현하려는 것이었으니까요.
소설가 이문열 씨는 어제 <동아일보> 시론 「'홍위병'이 판친다」에서 오늘의 신문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으로 가정 비유하면서, "특히 안티운동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공격성과 파괴성" 운운의 말을 했습니다. 아마도 흥분한 일부 네트즌들의 거칠고 과격한 언사들을 접한 탓인가 봅니다. 또 어떤 이들이 이문열 책의 반환 운동을 벌이겠다고 한 것까지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우리들의 언어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은 결코 '홍위병'이 아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문열 씨의 럭비공식 발상과 말살에쇠살 같은 요설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가 그에게 그런 식의 '엉뚱한 연상'의 단서를 준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의 안티조선 운동이 단순히 족벌 신문권력을 개혁하는 것만을 목적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우리 한국 사회에―진정한 삶의 가치관, 참다운 사회공동선, 올바른 국민정신―을 세워나갈 수 있는 터전을 닦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터전 위에서 좀더 확실하게 '통일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작업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좀더 비장해지고 숭고해져야 합니다. 좀더 비장해지고 숭고해지기 위해서는 사이버 익명 공간의 포악성을 조금이라도 정화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마땅히 수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는―뜨거운 가슴과 치열한 고뇌를 지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합니다.
수구 기득권 세력의 그 어떤 요설과 변설에도 우리는 당당히 정확하고 명쾌한 논리로 대응해 나가되, 폭력적인 언어는 되도록 자제합시다.
익명의 공간 어둠 속에 숨어서 갖은 악담과 욕설을 다 퍼부어대는 자들―탐욕 덩어리들의 화려한 밥상 밑으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를 주워먹고 사는 추한 개들의 맹렬한 짖음을 듣더라도 초연합시다. 똑같은 수준의 소리로 대응하지 말고, 준엄히 꾸짖는 어른의 말로 대해 줍시다.
그리고 절대로, 그 어느 구석에서도 지역감정을 자극하거나 냄새를 피워내는 언동은 철저히 삼갑시다.
그리하여, 안티조선의 숭고한 운동과 함께 사이어 공간 안에서의 아름다운 언어 모럴을 우리가 세워 나갑시다.
또 그리하여 안티조선이라는 이름의 오늘의 이 민중적 에너지를 참으로 아름답고 탐실하게 승화시켜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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