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제정한 제6회 <농민주일>인 오늘 제가 대전 선화동성당에서 행한 '평신도 특별강론'의 원고입니다.
아침 6시 미사와 8시 30분 미사 때는 원고를 읽는 식으로 강론을 했지만, 10시 30분 주미사 때는 원고를 거의 무시하고 자유롭게, '언론 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더 많이 설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열정적이었고 재미도 있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 강론의 원고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농민의 자존심과 삶의 참 가치를 위하여
오늘은 여섯 번째 맞는 '농민주일'입니다.
우선, 우리 한국교회로 하여금 농업과 농민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로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설정하여 농업의 고귀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 농촌 현실을 돌아보며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등을 전개하도록 이끌어주고 계시는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아울러 저를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 서게 해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이 뜻깊은 기회를 베풀어주신 선화동성당 신상욱 주임 신부님과 모든 형제 자매 여러분께 충심으로 고마운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글짓는 일을 거지반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오랫동안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 덕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가톨릭농민회>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대단히 사랑스런 이름입니다. 어느 정도 인생 연륜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습니다만, <가톨릭농민회>는 군사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저 암울했던 시절―우리 나라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이었습니다.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도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별다른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결실을 오히려 군사독재정권에 붙어 기생했던 사람들이 더 많이 차지하고 누리면서 별의별 요사를 더 떨고 있는 이상한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차지한 것과 비슷한 양상인 것도 같고, 하여간 뭔가가 뒤죽박죽 지리멸렬해진 상황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들은 곤혹스럽고 비애스럽기도 한량없는 심정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밥상 앞에서 '식사 전 기도'와 '식사 후 기도'를 했습니다. 일년 열두 달 삼백 육십 오일을 살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는 기도가 바로 이 밥상 앞에서의 기도일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가족과 함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그리고 '삼종기도'를 성실히 바치며 사는 사람입니다만, 사정에 따라서는 더러 거르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밥상 앞에서의 기도만큼은, 아침을 금식하는 매년 사순절 동안을 제외하고는 거의 어김없이 하루에 세 번씩 바치며 삽니다.
그러고 보면 '성호경' 다음으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가 밥상 앞에서의 기도이지 싶습니다.
우리가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 같은 처지가 아닐진대, 그리고 푸지게 방귀를 뀌어본 때가 언제일지 모를 정도로 마른 입에 근근히 풀칠하며 살았던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시대를 똑같이 이어서 사는 게 아닐진대, 천주교 신자라면 그 누구도 하루 세 번씩 밥상 앞에서의 기도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긴 뭐, 다이어트를 한다고 억지로 배고픈 경험을 하며 사시는 분들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요.
말머리가 길어졌습니만, 저는 오늘 아침에도 밥상 앞에서 두 번 기도했습니다. 밥을 먹기 전에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라고 기도했고,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저 수많은 외교인들처럼 대뜸 숟가락을 들지 않고 내가 먹을 음식이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은총의 선물임을 헤아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며 숟가락을 드는 저 자신에게서 가끔은 신선한 경이감과 함께 다행스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이제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내 어린아이들이 밥상 앞에서도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아는 법을 배워 가는 것에서도 행복감을 느끼곤 합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밥'은 우리 인간 생활의 기본이며 기초입니다. 인간의 모든 에너지가 밥에서 나오고, 예술과 사상과 철학이 다 밥에서 연유하며, 심지어는 전쟁까지도 밥으로부터 가능합니다. 그래서 먹기 위해서 산다는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요.
이처럼 밥은 우리의 생명과 삶을 이어주는 중요한 사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밥상 앞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합니다. 나에게 밥을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의 기도 속에는 당연히 하느님의 항구적인 은혜를 기원하는 마음도 포함되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밥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가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밥을 얻습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조건 속에서, 나름의 방식과 능력과 노력으로 밥을 얻습니다. 확고한 부요의 성채 안에서 불로소득으로 골프나 치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일부 복터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의 밥이 다 땀의 소산이고 땀의 대가입니다.
그렇지만 그 밥은 일단 '땅'을 통해서 옵니다. 땅에서 생겨나고, 햇볕과 비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밥이 이렇게 일단 농업의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농업이 그만큼 신성한 일임을 의미합니다. 농업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인류의 기초 산업이며, 하늘과 땅의 산업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은혜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깃들어 있는 산업이라는 얘기지요.
저는 20여 년 전 각지 각처를 유랑하며 공사판을 떠돌 때 경기도 남양만의 한 간척공사장에서 함께 일했던 한 노인의 모습을 지금도 가끔 떠올리곤 합니다.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았던 그분은 식사 때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묵념'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까닭을 여쭈었더니, 햇볕과 비를 주신 하늘에 감사하고, 땀 흘려 곡식을 가꾸고 거둔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하기 위해서 묵념을 하신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 노인을 통해서 과거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 님들의 경건한 삶의 태도를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 감사하고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 땅을 경작하는 농민들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우리 민족의 기본적인 심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5년 전에 작고하신 저의 선친께서는 '밥상머리교육'이 매우 엄격하셨습니다. 한 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꺼번에 쥐고 사용했다가는 야단을 맞았습니다. 밥상에 밥풀을 흘린다거나 밥그릇에 밥풀을 붙여놓은 채 숟가락을 놓았다가는 당장 큰 꾸지람이 떨어졌습니다.
작가인 제가 이미 여러 번 콩트와 잡문으로 써먹은 얘기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어렸을 적에 수시로 겪었던 아버님의 그 밥상머리교육을 지금도 환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도 거기에서 많이 연유합니다. 아버님의 그것은 밥 먹는 일이 지니는 장엄함, 하느님의 은혜와 농부들의 노고가 어려 있는 곡식 한 알의 귀중함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지요.
저는 팔순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삽니다. 아내가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살림을 거의 맡아 주시는 어머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참으로 큽니다. 육순 시절에 두 차례나 대수술을 받으시기도 했던 팔순을 바라보시는 노인네가 지금도 손수 여러 가지 김치를 맛있게 담가서 어려운 이들에게 손도 쓰시고 예나 지금이나 수녀원의 김치를 전담하시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경탄하며 하느님께 감사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님께 가장 감사하는 것은 내 아이들을 '한국인'으로 키워 주신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김치 맛과 된장 맛을 알게 해 주신 일입니다. 사람의 평생의 건강에는 그저 김치와 된장이 최고라고 하시며 된장국에 밥을 말아 김치를 작게 찢어 얹어서 손수 먹여 주시곤 한 모습은, 제가 장래 내 아이들에게 값지게 말해 줄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김치와 된장찌개를 잘 먹는 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순종 한국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지혜로운 음식으로 평가받는 김치와 된장을 만드신 우리의 조상 님들 앞에서 절로 떳떳해지는 저 자신을 느끼곤 하지요.
저의 어머님은 손수 저자를 보아오시는데, 저자를 보실 때마다 절대 농산물 값은 깎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물품들에 비해 농산물 값이 너무 싸다는 것이 어머님의 생각입니다. 젊은 여자들이 외식비 등에 들이는 거금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농산물 값을 깎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거지요. 땅을 가꾸고 거두는 일의 어려움을 몰라서 그런다는 말씀도 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그런 어머님은 제가 집에서 하루종일 글 쓰는 작업을 할 때는, 요즘에는 간식으로 토마토와 참외를 주십니다. 제가 여름 과일을 좋아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거의 매일같이 우리 동네를 찾는 과일장수를 겸하고 사는 경작 농민의 애끓는 확성기 소리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그 확성기 소리가 내 작업을 방해해서 싫었지만 차차 그 농민이 가엾어지는 마음과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농민의 소득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저렇게 고생해서 오늘은 얼마나 벌까? 제발 많이 벌어서 대한민국 농민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야 할 텐데….
그 농민의 자존심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바로 나의 소중한 자존심임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 자존심은 개인의 자존심으로 머물지 않고 국민의 자존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외국 농산물에 현혹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선 돈이 좀더 들더라도 우리 땅의 농산물을 사서 먹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크고 중요한 민족 자존심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했던 것이지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가장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하느님 은혜의 실체입니다. 그리고 밥을 만들어 내는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방식은 농업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농업은 나라와 인류의 대본입니다.
이 대본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이 대본이 존재 가치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농민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은 바로 내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 농민들은 참으로 천대받고 소외 받는 상황에서 살았습니다. 만만한 꼴뚜기 신세에다가 찬밥 신세로 툭탁하면 공권력과 언론권력으로부터 구박이나 당하며 살았습니다. 요즘 한창 '언론 개혁' 문제로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조선일보> 등 족벌 신문들의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지면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농업 관련 기사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나온 적이 있습니까? 그저 정치 권력을 능가하려고 신문 권력을 키우려는 일에나 혈안이 되어서, 민족의 자존심도, 농민의 자존심도 마구 깔아뭉개며, 어쩌다 농민들이 생존권 수호를 위해 집단적인 의사 표시라도 한번 할라치면 대뜸 '불법 난동'으로 매도해 온 그들이었습니다.
농민들이 왜 시위를 하고 처절한 몸부림을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충분히 심층 보도를 해야 일반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를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며 해결점에 대해서 고민도 할 터인데, 그들은 그저 지극히 표피적인 현상이나 농민시위 현장만을 다루어 우리 농민들에게도 큰 상처를 주어왔던 거지요.
방금 <조선일보>니, <족벌언론>이니, <언론개혁>이니 하는 말이 나왔으니, 잠깐 몇마디 더 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앞에서 저는 우리가 피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결실을 오히려 수구 세력이 더 많이 거머쥐고 갖은 요사를 다 떨며 민족 정기와 삶의 가치관을 뒤죽박죽 지리멸렬하게 만들고 있다는 뜻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현상이 극에 달해서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운동이 지금 국민들 사이에서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언론 개혁' 운동입니다. 처음 '안티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그 운동은 최근 정부의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의해 급 물살을 타게 되면서 참으로 깊고 넓게 확산이 되어서 지금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새로운 민중적 에너지를 실감하고 확인합니다. 저도 이 운동에 기꺼이 사명감을 가지고 참여하여 인터넷 상에서 제법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 개혁'에 관한 제 글들이 지금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유명 대형 사이트들에 올려져서 제법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더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으니, 인터넷을 사용하시는 형제 자매님들께서는 <오마이뉴스> <우리모두> <창비> <한국일보 정보동호회> <한국소설가협회> <작가 네트> <태안군> 등을 접속하시면 쉽게 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개인 홈페이지를 방문하셔도 되고요.
형제 자매 여러분.
농업이 경시되는 상황에서도 땀흘려 농사짓는 농민들이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함께 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달으며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일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날이 갈수록 땅심이 죽어가고, 무분별한 외국 농축산물 수입으로 인해 농촌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정차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알 수 없는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인해 하느님의 창조 질서마저 훼손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고향인 농촌을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시키려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 자신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농민이 우리 땅에서 땀 흘려 가꾼 농산물을 즐겨 사주며 귀하게 여겨 주는 일입니다. 그 작은 행위가 우리 땅과 우리 농업을 살리고 우리 농민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겨레의 얼을 지키며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하는 일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교구에는 농민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가톨릭농민회>에서 운영하는 직판장이 대덕구 오정동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톨릭 우리농생협>이라는 이름의 이 직판장을 많이 이용해 주십시오.
우리 다같이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농산물을 먹지 맙시다. 우리 스스로 우리 민족의 먹을거리를 해결함으로써 '민족자주농업'을 실현해 나갑시다.
도시민과 농어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우리 밥상, 우리 먹거리 우리 농촌, 우리 생명을 살려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
(2001년 7월 15일·제6회 농민주일·대전 선화동천주교회에서 3번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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