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에 대한 고찰

등록 2001.07.16 17:14수정 2001.07.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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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칼럼'들을 읽을 때마다 내용의 조악함과 어설픔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느끼는 가운데서도, 한가지 재미로운 것은 이 양반이 칼럼이라는 글을 조금은 소설처럼 쓰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특히 '∼감상법'이라고 제목한― 즉 '감상법'을 활용한 글들에서 더욱 재미로운 소설적인 분위기를 느끼곤 했다.

그래서 나도 오늘은 어느 정도 소설적인 분위기를 깔고 감상법을 동원한 글을 하나 써볼까 한다. 그렇다고, 김대중 주필의 문투를 흉내내겠다는 건 아니다. 그건 큰일날 일이다. 어느 정도 밝은 눈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금방 김대중 주필의 글임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독보적인 '작문'의 경지를 확보하고 있는데, 그건 절대로 넘볼 수 없는 일이다. 그까짓 글 재주로야 얼마든지 넘볼 수도 능가할 수도 있지만, 그 요설의 경지까지 흉내를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또 절대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니까….

나는 김대중 주필이 한자까지 이름이 똑같은 김대중 대통령을 왜 그토록 증오하는 걸까? 오래 전부터 조금은 재미로운 의문을 품어왔다. 김대중의 김대중에 대한 적개심―그것은 정말이지 꽤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은 대체로 자신과 용모가 비슷한 사람이나 동명이인을 보게 되면 두가지의 심리적인 동요를 겪게 된다. 하나는 동질감에 접근하는 우호적인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고유성을 침해당한 듯한 껄끄러운 기분이다. 둘 다 모호한 것이긴 하지만, 사람이 자신과 용모가 비슷한 사람이나 동명이인을 만났을 때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끼리는 우호적인 기분이 좀더 수월하다. 그런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세상에 나서서 이름과 얼굴을 드날리며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물론 흔하지는 않지만) 서로 껄끄러운 기분을 갖게 되기가 십상일 터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침해되는 듯한 느낌을 안고 독자적인 자기 영역을 좀더 확실하게 확보하려는 심리를 가지게 되는 것은 거의 당연지사일 터이다.

아무래도 김대중 주필은 후자적인 심리 기제를 지녔을 법하다. 처음부터 그런 심리에 의하여 언론계 진출의 목표를 <조선일보>로 잡았던 것인지, <조선일보>에 몸을 담게 된 것을 계기로 그런 심리가 증폭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 속에는 아무래도 위에서 말한 그런 심리 기제가 내재해 있을 법하다. 그들 부류의 전매 특허와도 같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가 이런 변설을 늘어놓고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적개심은 이념적 성향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너무도 극렬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심리의 그림자를 얼마든지 유추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김대중의 김대중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의 근저를 들여다볼라치면 1980년 광주의 비극―그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주필은 당시에 <조선일보> 사회부장이었다. 부장님이 몸소 광주 현지에 내려가 맹활약을 했다. 광주 시민을 '폭도'로 만느는 일에는 여타 신문사들 중에서도 <조선일보>가 일등 공신이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 '역사적'인 작업의 한복판에 김대중 부장이 있었다.

그들은 광주 시민을 폭도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치인 김대중을 죽이려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도 <조선일보>는 신문의 더러운 사명을 다하였고, 그 일에서도 역시 김대중 부장이 선봉이었다. 김대중을 죽이려는 일에 김대중이 거드는 것은 일반적으로 동명이인에 대해 호의적인 한국인의 순박한 정서로 볼 때 상상을 절하는 일이기도 할 터였다.


<조선일보>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 모르지만, 광주의 비극은 <조선일보>에 있어서 하나의 '원죄'로 자리잡혀 있다. 그 원죄를 씻어내기 위한 '세례성사'를 받지 않는 한 그 원죄에 의한 음영은 <조선일보>에 언제까지나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둠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결국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매김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가지는 곤혹감은 컸을 것이다.
곤혹스러움은 대체로 공연한 '피해의식'을 유발한다. 원죄를 씻어내기 위한 세례성사의 길로 나아가지 않는 한 '광주'라는 이름으로부터 날아오는 곤혹스러움은 계속적으로 왜곡되고 굴절된 '피해의식'을 그들의 의식 심저에서 알게 모르게 확대재생산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핑계거리를 찾게 하고, 원망하고 전가할 수 있는 대상을 찾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의 모든 원인을 정치인 김대중에게로 돌리게 된다. 정치인 김대중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고 결과되었다는 관점이다. 그러자니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증오심은 자연스럽게 증폭된다.
거기다가 저 친일의 시대부터 지녀온 이념적 사상적 거탈을 더욱 무겁게 뒤집어쓰게 되니 그들은 철가면처럼 완전 무장을 한 폭이 되고 말았다.

광주 비극 때의 사회부장 김대중이 광주 시민을 폭도로 매도한 그 공적에 기반하여 <조선일보> 안에서 승승장구, 마침내 주필의 자리에 오르니, <조선일보>의 정치인 김대중 죽이기 작업은 점입가경을 지나 마침내 그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김대중의 김대중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 속에는 앞에서 말한 동명이인에 대한 모호한 굴절 심리와,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마음 한구석에 매달려 있는 광주에 대한 죄의식, 그것들을 통채로 분장해 줄 수 있는 사상적 성향과 이념적 거탈 따위가 종합적으로 어울려서 똬리를 틀고 있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언론인 김대중의 출세지향주의 근성이다. 사실은 신문사 주필로 끝낼 수 없는 그 출세욕이 김대중을 오늘로 이끌어 왔고,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그는 장관자리 하나 꿰차고 화려하게 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 그 조건을 일찍이 확보했고 그것을 지금도 확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97년 대선 때 그것을 자신했다. 투표 하루 전날 <조선일보>의 심각한 편파 보도를 항의하러 간 이인제 씨 쪽 사람들에게 술에 취한 그가 이회창 씨의 당선을 호언 장담하며 "너희들은 내일이면 끝장나게 되었다!"고 일갈했던 그 폭언 속에는 '나도 이제 장관 자리 하나를 꿰차게 되었다'는 속내의 일단이 그대로 묻어 있었던 것이다.

장관 자리가 일등신문 <조선일보>의 주필에 필적할 만큼의 권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천년만년 주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또 <조선일보>의 주필을 지낸 장관이라면 권력 핵심부의 실세로 행세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고도 정치 권력의 실세로 행세한 사람들이 여럿이니, 주필을 지낸 사람이 권력 핵심부의 실세 역할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그리고 그것은 거의 '떼놓은 당상'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언론인 김대중의 그런 야망과 기대는 어이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지난 97년 대선에서의 패배는 언론인 김대중에게 어처구니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그것은 김대중의 김대중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말았다. 그는 이를 갈았다. 김대중의 김대중에 대한 맹렬한 시비와 공격―5년이라는 새 라운드의 치열한 대결을 <조선일보> 주필로서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가 주필 자격으로 <조선일보>에 쓴 무수한 기명 칼럼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표적 삼아 공격한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그것을 방증한다.

이제 현 정권의 임기는 1년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여러 가지 조건과 정황으로 보아 이회창 씨의 대권 장악은 김대중 주필의 시각으로 볼 때 거의 틀림없다. 잘하면 또 한번 투표 하루 전 날 <조선일보>의 심한 편파 보도를 항의하러 간 민주당 사람들에게 "까불지 마. 너희들은 내일이면 완전히 끝장나게 되어 있어!"라고 술취한 소리로 일갈을 해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러면 그런 호통으로 휘날레를 장식할 수 있었던 지난 5년 세월의 노고와 공적을 인정받아 턱하니 장관 자리 하나 꿰차게 되고, 일등신문 <조선일보>의 주필을 지낸 위엄으로 정치 권력의 실세로 부상을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회창 씨의 최측근으로 더 큰 정치적 야망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참으로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보수와 수구의 무거운 무쇠탈을 뒤집어 쓴 채, 왜곡과 호도와 분식의 묘수를 다 부리며 밥을 잘 짓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써왔던가.
이제 그 모든 노고와 공적들이 큰 보람의 열매로 결과될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된 밥에 재를 뿌리려는 자들이 누구인가. 솥뚜껑 열고 밥을 푸려는 시점에서 코를 빠뜨리게 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안티조선 운동은 무엇이고, 언론 개혁은 무엇인가. 언론사들에 대한 정부의 세무조사는 도대체 무슨 해괴한 짓인가. 언론 자유에 의해, 언론 자유를 위해 그동안 세금 같은 건 생각도 않고 살았는데, 지금에 와서 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가. 도대체 국가의 조세 정의가 어떻게 언론 자유의 가치와 같을 수 있는가. 제까짓 것들이 아무리 그런다고 우리가 언론 자유를 포기할 것 같은가.

정부의 세무조사에 맞서 분연히 일어서서 더 더욱 언론 자유의 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수백만의 독자를 끌어안고 우리 신문을 그냥 '사보'로 만들 수도 있고, 한나라당 당보로 만들 수도 있는 우리가 아닌가. 그런 우리에게 저토록 '조세정의'라는 현실 가치가 별로 없는 칼을 들고 무모한 싸움을 벌이고 드는 저들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래도 재집권 욕심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지난 4년 동안 실정에 실정을 거듭하고도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이회창 씨야 대권 꿈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지난번 대선에서 아깝게 졌고, 오로지 대권 꿈 하나만을 위해 절치부심하며 소매 딸딸 걷어붙이고 여당에 맞서 사사건건 용감무쌍하게 정면 대결을 벌여왔으니, 그만하면 대쪽같은 그 자질이 썩 좋지 않은가.

또 대권 쟁취에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사람도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조세정의를 우습게 알고 우리를 비호하느라 밤낮 목에 핏대를 세우고 노심초사하고 있지 않은가. 또 무려 천만권의 저서 판매량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 이문열이 족벌신문들의 친일이력, 세금포탈 따위는 하등 문제도 아니라고 보는 작가적 지성과 양심으로 목숨 걸고 우리를 위해 투혼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저들이 뭘 믿고 언론사 세무조사를 강행하며 언론 개혁이라는 이름의 칼을 휘두른단 말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알다가도 모를 지경에서 우리의 김대중 주필은 드디어 중대한 결심 하나를 하게 된다. "이제부터 할 말은 하겠다!" 참으로 비장한 결심이고, 웅혼한 비분강개였다.

지금까지 할 말 못 할 말 구분할 것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해 왔지만, 그래도 뭔가가 미진한 것만 같은 심사였다. 왠지 똥누고 밑은 닦지 않은 것만 같은 께름직한 기분이었다. 이제부터는 종전처럼 여기저기 자리 볼 것 없이 푸지게 똥을 싸되 밑을 잘 닦아야겠다! 그래야 똥싼 기분이 쌈박할 것 아닌가.

그래서 김대중 주필은 오늘도, '언론 개혁'이라는 화두가 이 시대의 최대의 명제가 되어 있는 이 시점에도 (정부의 세무조사에 맞서 더욱 불타는 사명감으로) 호도와 왜곡과 분식의 탈바가지, 사상과 이념의 거탈, 보수와 수구의 무쇠탈을 더욱 단단히 뒤집어쓰고 <조선일보>의 잡초밭 같은 지면을 최대한 이용하여 재뿌리고 코풀고 똥싸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할 말은 한다'는 미명으로―.

이 글의 앞 부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나는 저들의 전매 특허와도 같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이 글을 쓴 것이 결코 아니다. 할 말과 못 할 말을 절대로 구분 못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칼럼에서 쉽게 발견하게 되는 갖가지 오류와 생각의 천박성, 억지스러움 따위를 잘 경계하면서 그가 즐겨 사용하는 '감상법'을 차용하여 이 글을 썼다.


사족(蛇足)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한나라당 "대구 동구지구당의 경우 당원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언론탄압 규탄대회'에서 규탄사 대신 조선일보 6월29일자 김대중 칼럼 '너, 조선일보에 아직 있냐'가 낭독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기사를 읽고 나서 한참 동안 허리 아프게 웃었다. '한참 동안 허리 아프게 웃었다?' 이건 아무래도 김대중 주필식 '과장법' 같은데….
하여간 나로서는 그 기사의 분명함 속에서도 정당인들의 모임이었는지 중학생들의 모임이었는지 도대체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분간이 되지 않는 현실이 너무 우습고도 슬펐다.


(2001년 7월 13일, 내 아들녀석의 생일에)
충남 태안의 반딧불 같은 작가 지요하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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