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름 어떻게 지으면 좋을까?

고운 한글이름은 개인 - 단체 개성 돋보이게 해

등록 2001.07.16 13:27수정 2001.07.1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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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 수년전쯤 지난 일이다. 나의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보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오더니 갑자기 뾰루퉁하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다.
"아버지 내 이름은 왜 한글이름이어요? 이상하다고 아이들이 놀리잖아요."

빙그레 웃어주었다. 그리곤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 아이들에게 이름으로 상받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구 해." 그 뒤로는 우리 아이의 입에서는 다신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안에는 족보가 있어서 나는 한자 돌림자를 이름 중에 가지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이름 중에 한자 돌림자를 써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자손이 많이 퍼진 가문을 보면 사촌간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오며, 전화번호부에 보면 동명이인이 많게는 수백 명에서 수십 명씩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젠 한자로의 돌림자는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한글로 짓게 되었다. 큰 아이는 "아름 솔", 작은 아이는 "으뜸 솔"이다. 한자 대신에 순 우리말 '솔'자로 돌림자를 대신했다.

'솔'자는 우리말사전에 보면 다음과 같이 좋은 뜻을 가진 낱말들이 나온다.

1. 소나무, 우리 조상들이 소나무 외에는 모두 잡목으로 여겼으며, 궁궐을 짓는데는 꼭 소나무를 썼다. 사철 푸른 나무로 절개를 상징한다.
2. 먼지나 때를 쓸어 떨어뜨리거나 닦아내는 것.
3. 솔기, 옷을 만들 때 두 폭을 맞대고 꿰맨 줄.
4. 활을 쏴서 맞추는 무명 따위로 만든 과녁.
5. 고려 때 동궁(왕세자)의 시위를 맡은 관청의 으뜸 벼슬.

따라서 절개가 있는 재목, 다른 사람들의 더러움을 닦아주는 사람, 서로 다른 사람·이념을 봉합시킬 수 있는 중재자, 목표점(본보기)이 되는 사람, 지도력이 있는 사람 등의 뜻을 동시에 지닌 아주 좋은 낱말이라 생각하여 돌림자로 결정했다.


그리고 큰 아이는 마음이 아름답고, 속이 한 아름 만큼의 넓은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아름'을, 작은 아이는 매사에 으뜸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의미로 "으뜸"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는 1996년 제17회 서울대학교 '고운 이름 자랑하기' 대회에서 가족이름으로 버금상(2등)을 받았다.

그 뒤 그림옷(T셔츠)에 이름을 새겨서 입혔는데 시장 등에 데리고 가면 인기가 집중했다. 우리는 잘 몰라도 아이들의 이름을 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 갔을 때는 많은 선생님들이 이름을 기억하고, 예뻐해주었다. 지금은 우리말 이름이 많아졌지만 그 때만 해도 생소했던 것이다.


또, 내가 운영하는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기업의 이름은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이다. 80년대 후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대표적인 노래인데 소나무, 즉 선구자의 상징성을 잘 드러내는 노래이다. 처음 문을 열 때 온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는데 아내가 이 이름을 제안하게 되었다. 온 식구 만장일치로 박수를 쳤다.

점포 주변을 지나는 젊은 사람들은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녔는데 많은 사람들이 쉽게 기억되고, 뜻도 좋으며, 추구하는 목표를 잘 드러낸다고 칭찬들을 했다. 물론 상호가 길어서 간판을 만들 때나 홍보물을 만들 때 어려움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에게 쉽게 기억되고, 의미를 잘 드러낼 수만 있다면 좋은 이름이 아닐까?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름을 지을 때 성과 이름의 소리 어울림을 고민하지 않아 이상한 이름이 되거나 너무 흔한 한 낱말로 이름을 지어 의미가 퇴색해버린 경우도 있다. 부모가 자식들의 이름을 지을 때 여러모로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문(高生文), 방귀례(方貴禮), 이분례(李糞禮:분자는 사람의 변을 뜻함), 팽소주' 등의 놀림을 받을만한 이름이 되어 자식이 일생 원망하며 살면 안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짓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한글 이름을 쓴 사람들이 많다.
특수학교 선생님 한 분은 "이 하얀언더기", 성까지 한글로 고친 "밝 한샘"선생님, 성과 이름을 멋있게 연결한 "배 우리"선생님, 유명한 관현악단 지휘자인 "금 난새"선생님, 한글운동을 온몸으로 하시는 "이 대로"선생님 등은 뜻도 아름답고 소리도 예쁜 훌륭한 이름들이다.

한글 이름하면 떠오르는 사람, 한국땅이름학회장 "배우리" 선생의 책 <고운 이름 한글 이름>을 토대로 고운 한글 이름을 짓는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1. 뜻이 좋은 말을 쓴다.
당연한 말이며, 누구나 그렇게 하려고 할 것이다.

2. 소리가 고운 말을 고르고, 성과 아름답게 어울려야 한다.
뜻만 좋다고 좋은 이름이 될 수 없다. '보람', '슬기' 등은 뜻도 좋지만 소리도 아름답다. 하지만 '알벗'은 뜻은 좋지만 소리내기가 어렵다. '오심'은 '잘못한 판정'으로 오해될 수 있는 말이다. 이름 혼자로는 좋은 말이지만 성과 어울렸을 때 이상한 말로 변하는 경우 즉, '강아지', '국어진(구겨진)', '김새내(김세네)', '고리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3. 낱말을 잘 다듬으면 좋은 이름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봄+이(봄에 태어난 아이의 뜻)'를 '보미'로 '이음소리 적기(연철 표기)'를 하고, 앞가지(접두사) '한, 새, 참'이나 뒷가지(접미사) '이, 나' 등을 붙이거나, '예나(예쁘게 자라나), 슬옹(슬기롭고 옹골찬)으로 줄여 만들기 등을 하면 좋은 이름이 될 수 있다.

4. 둘 이상의 오누이 등에게는 이어짓기면 좋다.
한자 이름의 돌림자처럼 한글로 돌림자를 만들어 이어짓기를 하면 좋다 예를 들면 '봄비-단비-꽃비',
'따사롬-슬기롬', '가람-새암' 등이 있다.

5. 밝고 부드러운 소리여야 한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어감이 칙칙하거나 거친 느낌을 준다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물론 남자 이름은 강한 느낌을 내기 위해 거센소리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거센소리, 된소리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음성홀소리(ㅓ, ㅜ 등)보다는 양성홀소리(ㅏ, ㅗ 등)를 써야 밝고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안 좋은 거센소리의 예 '밝히(발키)', 된소리 예 '짝별'

6. 흔한 이름은 피한다.
이름은 고유명사라 한다. 혼자 쓰는 이름이라는 뜻일 것이다. 한데 어디가도 같은 이름이 있다면 문제가 있다. 한자 이름을 쓸 때와 차별성이 별로 없다. 이제 '아름, 보람, 슬기, 나래' 등은 너무 흔한 이름이 되었다. 그 점을 피하기 위해서는 두 낱말을 쓰고 좀 길어도 괜찮다. 좋은 예로는 '봄소리, 푸르뫼, 새한누리' 등이 있다. 하지만 '밝차고나온노미새미나'처럼 지나치게 길면 부를 때 문제가 있다.

한글학회에서는 오는 10월 9일 555돌 한글날을 맞아 "아홉째 온 겨레 한말글 이름 큰잔치"를 연다고 한다. 우리 토박이말과 한글로 지은 이름 가운데에서 빼어난 것을 골라 드높여 줌으로써, 온 국민이 한글 문화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우리의 말글에 대한 사랑을 더욱 북돋우게 하고자 한다고 그 뜻을 밝혔다.

모집대상은 사람이름(호적에 등록되어 실지로 쓰이는 이름), 상호(상호 등록이나 영업 등록된 이름-회사, 가게, 단체, 학교, 학원, 교회 따위), 상품이름(상표 등록이 되어 유통되는 상품 이름) 등이며, 상으로는 문화관광부 장관의 상패와 부상을 주는 으뜸기림(최고상) 등 여러 상이 주어진다.

이름 받는 기간(응모기간)은 2001년 6월 10일부터 8월 15일까지이며, 뽑힌 이름 알림(발표)는 2001년 9월 15일(개별 통지)이고, 상 드리는 행사(시상식)은 2001년 10월 한글날 앞뒤(개별통지)에 한다고 한다.

보낼 곳은 (110-061)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1가 58-14. 한글 학회 사무국 "온겨레 한말글이름 큰잔치" 담당자 앞이며, 전화는 (02) 738-2236∼7, 주최는 한글 학회이고, 후원은 문화관광부, 소년한국일보사,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다.

일생을 담고 가야할 이름, 단체의 운명을 가름할 이름은 정말 아름답고, 훌륭하게 지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다. 따라서 이젠 나만 쓰면서도 모두가 쉽게, 아름답게 기억해 줄 한글 이름을 지으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참고
 
고운 이름 한글 이름, 배우리, 해냄, 1993
한글이름은 온누리에, 연세대 국어운동 학생회 한글물결, 일신서적출판사, 2000
사람이름 뜻풀이 : home.opentown.net/~bigstars/b/asd.htm
한글이름에 대해서 : kitel.co.kr/~wsoyose/hangulmain/hangulmain.htm
한글학회 누리집(홈페이지) : www.hangeul.or.kr/index.htm

덧붙이는 글 참고
 
고운 이름 한글 이름, 배우리, 해냄, 1993
한글이름은 온누리에, 연세대 국어운동 학생회 한글물결, 일신서적출판사, 2000
사람이름 뜻풀이 : home.opentown.net/~bigstars/b/asd.htm
한글이름에 대해서 : kitel.co.kr/~wsoyose/hangulmain/hangulmain.htm
한글학회 누리집(홈페이지) : www.hangeul.or.kr/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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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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