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참 먹는 아빠의 모습을 그리면서

단식 9일째인 아빠에 보내는 두번째 편지

등록 2001.07.21 12:42수정 2001.07.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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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우리 아빠의 단식농성은 9일째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 본 아빠의 얼굴은 더 야위어져 있었습니다.


아빠의 얼굴에 언제나 짧아 까칠까칠 하던 수염이 길어져 이제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부드러워졌습니다. 오늘 가서 방문자 명단을 보니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전보다 더 많아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아빠의 단식농성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이 글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빠에게 서명만 남겨주실 게 아니라 아빠의 일을 함께 도와주신다면 이 일이 더 빨리 끝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빠가 걱정되어 언제까지 이 단식농성을 할거냐고 물었더니 이 일이 끝날 때까지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언제 끝나냐고 물었더니 아빠한테 물어보지 말고 대통령할아버지에게 물어보라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이 일이 정말 대통령이 결정할 일입니까? 그저 레미콘 회사가 노조를 인정만 하면 간단히 끝날일 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아빠도 더 이상 고생없이 이 일을 끝낼수 있을텐데......

아빠가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곳에 가서 우리 아빠가 나온 신문을 보니 국회의사당에서 단식농성을 하다가 안되면 청와대 앞에 가서 한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진짜 청와대 앞에가서 할 거냐고 물으니까 국회의사당에서 하다가 안되면 청와대 앞에가서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발 엄마, 언니,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 모두가 아빠를 보러 청와대까지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는 지금 레미콘 아저씨들을 위해 단식농성을 하고 있어, 우리한테 필요한 일들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농성을 하기전에 우리한테 책장과 책상을 짜준다고 약속하였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것이 없습니다. 아빠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가족도 레미콘 아저씨들 만큼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빠는 9일째 물외에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계시지만 우리는 아빠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사가지고 돌아와 오자마자 먹었습니다. 먹을 때는 몰랐지만 다 먹고 나니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밤참을 거의 거르지 않았던 아빠가 벌써 9일째 아무 것도 드시지 않고, 아직 참을만하다고 하시면서 그만두는 건 생각하지 않고 계십니다.

하루빨리 아빠가 행복한 얼굴로 밤참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단식 9일째였던 김칠준 변호사의 둘째 딸 김정인이 두번째로 쓴 편지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단식 9일째였던 김칠준 변호사의 둘째 딸 김정인이 두번째로 쓴 편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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