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0개 계단을 세면서 오른 '태산'

리에의 좌우지간 중국이야기(21)

등록 2001.07.24 15:33수정 2001.08.0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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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96년 2월 2일부터 2월 12일까지의 중국 여행기이다. 필자와 10여명의 일행(교수, 시인, 화가, 사진작가, 학생 등등)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위해(威海)에 내려 장보고의 얼이 서려있는 적산(赤山) 법화원(法化院)을 거쳐 공자의 생가와 공묘가 있는 곡부를 거쳐 태산(泰山)이 있는 태안(泰安), 연대(烟台)를 거쳐 기차로 북경에 도착해 둘러본 후 프로펠러 쌍발기를 타고 연변에 들렸다가 다시 북경으로 나와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10박 11일의 일정을 적은 글이다. 편집자 주)

태묘를 둘러보고 태산에 올랐다. 태산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1호 자가용을 이용하는 방법(터벅터벅 걸어서 오르는)이고 또 하나는 케이블카(삭도)를 타고 오르는 방법이다. 케이블카는 당시 50위엔이었는데 따져보면 싼 편은 아니었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두 패로 갈렸다. 단장님 이하 몇몇 쉰세대들은 연세도 있고 해서 케이블카를 타고 가기로 했고 나처럼 "체력은 국력이다"를 외친 패들은 걸어서 오르기로 했다. 휴...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걸어오르는 길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태산은 글쎄 뭐랄까. 여하튼 좀 특이한 산이었다. 산 어귀부터 정상까지의 길이 모두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7600개. 직접 세보지는 않았지만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단다. 내가 다니던 한양대 인문대에는 108계단이 있다. 한양대 자체가 언덕 위에 있는데 인문대는 그 중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그곳으로 오르는 계단에 붙여진 이름이다. 언젠가 학교 다니면서 진짜 계단이 108개인지 몇 번이나 세어보려고 했지만 헷갈려서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냥 108계단이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생각만 했다. 그 생각이 나서 "그래, 한 번 세어보자"하고 당차게 도전하기는 했는데... 휴.

108계단도 못세던 내가 7600계단에 도전하다니. 그래도 한 2∼3백번 까지는 용케 세어보았던 것 같았는데 더는 세지 못하고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친구들이 무식하게 여기까지 와서 계단 숫자 세고 있다고 핀잔도 주고 또 계단 세느라 주변 경관을 다 놓쳐버릴 것 같아 그냥 7600개라고 굳게 믿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오르기 대회가 있다고 하는데 혹시나 해서 태산에서도 그런 행사가 있냐고 물었더니 매년 태산 오르기 경주대회가 있다고 했다. 최고기록을 들었는데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하튼 도저히 인간이 만들어낸 기록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던 것 같다.

계단의 경사는 심한 곳은 50도가 넘는 곳도 있었고, 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해서 그런지 일부러 닦아놓은 것처럼 반들반들 윤이 났다. 또 어떤 곳은 폭이 너무 좁아 딛기가 힘든 곳도 있었다. 해마다 백만명 이상이 태산을 찾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폭이 좁아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태산은 산 전체가 온통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부분이 화강암, 연자석, 목어석(木魚石)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태산의 대표적인 수종은 아카시아였다. 산이라고 하면 으레 계곡을 숨기고 있기 마련인데 태산에는(산동반도 전체가 그렇지만) 물이 없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을 견디고 살아남은 놈들이 아카시아였다.

또 하나 아카시아가 많은 이유는 일부러 식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산 전체가 암석 투성이인 데다 험하기도 험해 어떻게 심었냐고 물었더니 비행기를 이용해 항공식재했다고 하였다. 우리가 태산을 찾은 때가 겨울이어서 그런지 나무도 그렇고 정상에 다가갈수록 하나둘씩 나타나는 건물들도 그렇고 모두 아슬아슬하게 산세에 빌붙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태산에 오르기 전 태묘에 들렀을 때에도 엄청난 양의 비석을 보고 놀랐지만 태산에 비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태산은 온통 산 전체가 서예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검은색, 붉은색, 황금색으로 일필휘지한 글씨들이 여기 저기 바위마다 새겨져 있었다.

나중에 호텔에 돌아와서 보니 태산 바위에 새겨진 글과 낙관 등만 따로 모아놓은 책이 보였다. 그걸 새긴 사람들도 대단하거니와 그걸 다시 책으로 만든 사람도 보통내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태산은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크고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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