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책, 우리 정신의 척도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1.07.26 03:11수정 2001.07.2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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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사동에 있는 통문관이라는 헌책방에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토아트라고 흙 土자에 영어로 Art를 쓰는 커피 마시는 곳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 시간이 남아 우연히 들른 것이다.


들렀다가 횡재를 했다. '단 돈' 몇십만원에 1940년대의 책 열 권을 손에 넣은 것이다. 횡재라니? 그러나 나는 오늘 굶어도 카드로 긁어도 마음에 드는 책은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

월북한 작가 이기영의 해방 때 책 <어머니>에다 역시 월북한 이태준의 <문장강화> 증보판, 여기에 그의 장편소설 <제2의 운명>, 그리고 또……. 그날 만나는 분들에게 책 자랑도 하고 제 세상 만난 듯이 즐겁게 지내다 집에 돌아와 상민(常民)이라는 시인의 1948년도판 시집 <獄門이 열리는 날>을 들추다 보니 뒷장에 이런 정갈한 만년필 글씨가 씌어 있다.

"그야말로 한숨에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을 울리는 그 무엇이 없었고 눈이 화끈거리는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혁명 정신을 많이 상실했는가 보다. 주먹이 불끈 쥐어저서 떨리고 의분의 눈물에 젖은 눈알이 샛별처렴 뻔적이고 정의에 끓는 피가 용소슴처야 될 터인데. 1949.4.21."

철자에 맞지 않는 그 문장들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옛날에 이 시집을 산 사람은 민중주의적인 사상을 지닌 이였으리라. 나 역시 민중의 존재를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 왜 감회가 새롭지 않으랴. 지금 이 바로 앞의 문장을 쓰고 나서도 나는 그것을 과거형으로 처리한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민중주의나 진보사상에 대해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상민이라는 시인의 그 옛 시집은 얇은 미농지로 싸여 있었다. 이렇게 미농지로 헌 책을 싸놓는 법을 어디서 또 보았던가. 일본 도쿄의 간다(神田)에서였다. 거기 몇 백미터인지 모르도록 길 양쪽에 길게 늘어선 헌책방마다 오래된 책들은 저마다 어른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었고 더 귀한 책들은 예의 그 반투명 미농지에 싸여 있었다.


가격을 써넣은 스티커는 책 표지가 아니라 미농지에 붙어 있어, 혹여 오래된 책의 가치를 떨어뜨릴 흠집을 내지 않으려는 주인의 배려가 엿보였다. 헌책방마다 즐비한, 일본근대문학의 아버지라는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에 관한 책들보다 더 부러운 것은 그토록 헌책을 아끼는 그네들의 마음씨였다.

나는 책이 곧 정신이며 책을 만드는 마음이 문화를 창조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하나이다. 신림동에 퍼부은 집중호우로 사람들이 상하고 집이 떠내려갈 때 나 역시 신림동 반지하방에 쌓여 있는 나의 책들을 걱정하며 잠을 못 잤다.

나의 책들이 사는 방은 다행히 물에 잠기지 않았으되 물난리는 신림동을 휩쓸었고…, 정작 서적 도매상이며 헌책방이 밀집해 있는 청계천에는 책난리가 나버렸다. 멀쩡한 새 책도 헌책도 물벼락을 맞았던 것이다. 물에 젖은 책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상인들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그 청계천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1970년대에는 한국사나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일본인들이 청계천에 찾아와 그 귀한 일제시대며 1940년대 책이며를 무게로 달아 사갔다는 것이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사듯이 폐품 사듯이 무게로 사갔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의 마음은 얼마나 쓰렸던가. 아마도 며칠 전 청계천을 휩쓸고 간 비는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게 입혔으되 문화적 손실은 그만큼 입히지 못하였으리니, 왜냐하면 정작 귀한 책들은 이제 그곳에 없기 때문이다.

워낙 깔끔한 집이라서 오래된 책은 쌓이기만 하면 고물상에 팔아버리는 집이 많다. 그러나 책을 귀하게 여기고 보관하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에 어떻게 깊은 정신이 배일 수 있겠는가. '진품명품'이라는 텔레비전 프로를 볼 때마다 나는 우리들 헌책의 가엾은 운명을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그 언제 오래된 책 숭상하는 습관을 잃었던가.

'왜(倭)'에 나라를 잃으면서 우리는 우리 정신의 '그릇'조차 함부로 여기게 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제아무리 인터넷 시대라 해도 오래된 책이 귀한 대접을 받지 않는 나라는 언제나 정신의 빈곤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헌책은 우리 정신의 척도이니, 책을 만들되 튼튼히 아름답게 만들고 책을 사되 버리지 않을 책을 사고 그 책 다시 사고팔되 그 견딘 연륜을 귀하게 여김이 '감히' 마땅하지 않은지. 그토록 책을 숭상하게 된 '왜(倭)'인들이 정작 역사의 정신 저버리는 이 때를 당하여 나는 우리 정신의 깊이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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