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방, 반지하방 세상의 물난리

방민호의 <문화칼럼> 우리는 슬픈 공동체인가?

등록 2001.07.19 00:50수정 2001.07.1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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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텔레비전으로 신림동에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여럿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하방, 반지하방에 더러운 물이 넘쳐나고 자동차들이 엿가락처럼 뒤얽혀 상가를 덮친 곳은 내가 늘 지나다니던 곳, 지금도 그런 곳이다. 신림본동부터 10동까지 중에 어느 곳인지 숫자로는 몰라도 눈으로 몸으로 다 아는 곳이다.

수해가 난 곳은 어디나 그렇지만 도림천 휘돌아가는 그곳, 더러운 물에 사람이 죽고 방이 젖고 이불과 옷가지가 흙탕이 되어 사람 마음을 쇠갈퀴로 헤집어놓은 듯한 그곳은 정녕 사람이 살 땅인가 싶다. 내가 당한 것처럼 마음이 쓰리다.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처음 놀랐던 일 중의 하나가 서울에는 지하방과 반지하방이 많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살아 잘 모르다가 신림동이니 봉천동이니 신대방동이니 하고 떠돌아다니려니 보증금 오십만원, 월세 오만원에 자취도 했고 나중에는 보증금 팔백만원에 얼마인가 하는 데서도 살았다.

그러려니 토굴처럼 캄캄해서 낮에도 형광등 안 켜고는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곳에서도 살았고 그보다 조금 나아서 지상으로 창문을 낸 곳에서도 살아보았다. 반지하에 대여섯 가구 사는데 공동 화장실 한,두 개 딸린 곳에서도 살고 큰 집 뺑뺑 돌아 구석구석 세 안 들인 곳이 없는 3층집 반지하방에서도 살았다.

지하방, 반지하방의 가장 탁월한 의학적 효능 가운데 하나가 몸의 수분 함량이 월등히 증가한다는 데 있음은 알 만한 분은 다 알리라. 몸이 물먹은 솜 같고 멍석말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고 배 밑창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은 집은 좀 낫지만 10년 전에 지은 집만 해도 그런 탁월한 효능을 보여주지 않는 집은 드문 법이었다. 사람 몸에만 물이 스며드는 게 아니라 벽지에 책에 옷에 푸릇시커먼 곰팡이가 핀다. 벽은 또 왜 그리 얇고 연탄보일러, 기름보일러는 왜 그렇게 자주 고장이 나고 연기는 왜 안 빠지는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심리적 정신적 훼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왜 그런 다세대 주택을 짓고 지하, 반지하에 방을 들여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울은 땅값이 비싼 곳이고 많은 경우에는 집 주인 분들도 높은 은행 이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생각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 이것은 분명 경제주의에 물든 우리들 사회의 정신의 문제이다. 우리들의 7·8·90년대에는 '최소' 또는 '최저', 또 '기본'이라는 것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람을 부리려면 최소한 대주어야 할 것이 있지 않은가? 사람에게 방을 빌려주고 돈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만은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관광지에 토산품을 갖다 놓으려면? 밥을 팔려면? 서비스업으로 돈을 모으려면? 월급 받고 학생을 가르치려면? 출판사를 하고 신문사를 하려면?……문학을 하려면?

슬픔에 빠진 신림동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우리는 슬픈 공동체 아닌 공동체, 기쁨은 나눌 이들 없이 자기만의 기쁨으로 끝나고 오로지 슬픈 사람들끼리 함께 슬퍼하는 슬픔의 '공동체'를 꾸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스럽고 안타깝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슬픈 '공동체'의 방관자로 남을까, 내 자신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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