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뉴스>는 미국의 조선일보?

'공정보도'로 위장한 한·미 양국의 극우언론

등록 2001.07.29 10:05수정 2001.07.30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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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뉴스가 없었다면 어떻게 홍보를 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지난 플로리다주 재검표 사태 당시 공화당측 개표위원이던 트렌트 롯트의 고백이다.

"언론이 스포츠 심판이라면 훌륭한 코치는 심판을 어르고 협박도 해 구워삶는 재주 또한 뛰어난 법이라네." 언론이 온통 민주당 편이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리치 본드 공화당 의장의 말에서는 공화당 대언론 전략의 일단이 엿보인다.

언론에 대한 공화당의 피해의식은 뿌리가 깊다. '60년대 반전운동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미국의 언론인들이 대체로 진보적인 성향인데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유력 신문들이 대선 때마다 민주당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혀왔음을 생각하면 공화당의 울분을 이해할 법도 하다.

언론 혐오증에 시달리는 공화당에게 호주의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설립한 24시간 뉴스채널 <폭스 뉴스>는 구세주나 다름없는 존재. 보수적인 게스트들이 줄줄이 등장해 진보적 시민단체를 공박하고 민주당에 직격탄을 날리는 <폭스 뉴스>의 활약에 공화당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실토할 정도니까.

<폭스 뉴스>가 보수적 인사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보수우익 연구소인 헤리티지 재단이 서버의 과부하를 우려해 직원들에게 PC를 이용해 <폭스 뉴스>를 시청하는 행위를 금지한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비평가들은 <폭스 뉴스>의 보수일색인 편파적 논조에 대해 줄기차게 비판을 해왔지만 머독은 <살롱>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폭스 뉴스가 편파적이라는 증거가 있다면 누구든 한 번 가져와 보라"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머독의 허풍에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 미국의 매체비평지 <페어>는 최근호에서 <폭스 뉴스>의 편파적인 논조를 세밀하게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해 흥미를 끈다.

<페어>의 보고서는 먼저 폭스 뉴스의 경영진이나 주요 논객들이 일찍이 진보파를 겨냥한 독설로 이름을 날린 극보수 인사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또 뉴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평론가들이 대부분 공화당 계열 인사들이며 민주당 측 인사를 초청할 때도 가능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만을 선별해 출연시킨다는 분석이다.

<조선일보>가 주로 한나라당 주변의 보수적인 필진을 동원해 정부의 진보적인 정책을 공격하되 때로는 진보적 인사들에게도 지면을 할애해 나름대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허상을 독자들에게 심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흡사한 모습이다.

<폭스 뉴스>가 실시하는 여론조사의 설문 또한 치졸하고 얄궂기 그지 없다. "빌 클린턴과 앨 고어가 카드놀이를 한다. 누가 더 속임수에 능란할까?" 지난 해 5월 <폭스 뉴스>가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의 설문이다.

<페어>의 보고서는 <폭스 뉴스>의 보수적인 논조 자체는 문제삼을 거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언론이 나름대로 정치적 성향을 갖는 것이야 뭐라 나무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폭스 뉴스>가 보수적인 논객들에게 중립과 객관의 탈을 씌워 줌으로서 시청자의 정치적 판단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즉 실제로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극우적인 의견을 마치 중립적이고 공정한 의견인양 포장해 시청자를 길들이면 진보적 시각은 마치 극좌파의 주장인양 느끼게 되고 정작 온건하고 균형 잡힌 시각마저 좌파에 치우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조선일보>가 실제로는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편드는 편협한 주장을 펼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니 '자본주의 시장경제'니 하는 애매한 중립적인 언사로 자신의 극우적 색채를 위장하려는 시도와 매우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정작 노동자들에게는 자본의 편이라는 비판을 듣는 DJ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한나라당이 사회주의, 좌파 정책이라며 비난을 한다거나, 수십년 동안 <조선일보>에 인이 박힌 골수 독자들이 유럽의 사회주의 단체에 비하면 지극히 온건한 주장을 하는 것에 불과한 시민단체들을 대뜸 홍위병이니 빨갱이니 하며 매도하는 것과도 지극히 흡사한 광경이다.

이제 겨우 5년을 갓 넘긴 미국의 극우 방송 <폭스 뉴스>에 대해 미국의 양심적인 언론인들이 이런 우려를 하고 있다면 반세기가 넘게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언론의 이념적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한국의 독자들이야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jean

덧붙이는 글 | *<페어>의 보고서 원문이 궁금한 독자는 www.fair.org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페어>의 보고서 원문이 궁금한 독자는 www.fair.org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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