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에는 도사가 산다(?)

리에의 좌우지간 중국이야기(24)

등록 2001.07.31 11:47수정 2001.08.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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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96년 2월 2일부터 2월 12일까지의 중국 여행기이다. 필자와 10여명의 일행(교수, 시인, 화가, 사진작가, 학생 등등)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위해(威海)에 내려 장보고의 얼이 서려있는 적산(赤山) 법화원(法化院)을 거쳐 공자의 생가와 공묘가 있는 곡부를 거쳐 태산(泰山)이 있는 태안(泰安), 연대(烟台)를 거쳐 기차로 북경에 도착해 둘러본 후 프로펠러 쌍발기를 타고 연변에 들렸다가 다시 북경으로 나와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10박 11일의 일정을 적은 글이다. 편집자 주)

태산을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가파라 정상이 눈 앞에 보였지만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보이는 계단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실수라도 하면 미끄럼을 타듯이 우리가 출발했던 아래까지 단번에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가마꾼도 만나고, 짐꾼도 만나고 또 엽기적인 매점 아저씨와 담배도 나눠피면서 두어 시간을 올랐을까? 승선방(昇仙坊)이라는 패루가 보였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나보다. 태산을 오르면서 정상에 가까워지자 천가(天街), 승선방(昇仙坊) 등의 패루가 보였는데 그런 패루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선계(仙界)로 조금씩 빠져드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름 자체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거니와 세상 모든 만물이 내 발밑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 더욱 그러했다.

태산의 정상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산의 정상이라면 으레 몇 사람이 겨우 발을 디디고 설 수 있는 그런 곳이라 생각했는데 태산의 정상은 산정이라기보다는 높은 곳에 펼쳐진 구릉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마치 작은 고원이라고나 할까.

정상에서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도교서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별도의 관람료를 내야 하고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해서 사진 찍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믿어 안에서는 사진도 찍을 수 없다고 하여 밖에서만 바라보았다.

도교 서원 안에는 "동방불패"나 "소호강호" 같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푸른 옷에 상투를 튼 도인들이 살고 있었다. 산꼭대기에, 그것도 태산 꼭대기에 그런 도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 도인들은 무협영화에서 늘상 우리가 보아오던 것처럼 휙휙 하늘을 날아다닐 것만 같은 신비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나이를 물으면 "이백살이요. 나는 삼백살이요"하고 대답할 것만 같았다.

아마 정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태산 주위를 날아다니는 도인들이 있지나 않을까 유심히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속세에 사는 범상치 못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거나 태산 같은 곳에서 도를 닦으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수행이든지간에 도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교 서원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뭔가로부터 경계를 지으려고 했던 것 같은 담벼락 같은 것이 쭉 펼쳐져 있었고 그 벽 가운데에는 원형의 출입구가 나 있었다. 문도 없이 그저 원형의 출입구만 있는 것이 신기해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자세한 내막은 자기도 알 수 없고 다만 그곳이 바로 공자가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는 말을 하였던 곳이라 한다. 내친김에 공자가 천하를 내려보며 호령했던 것처럼 필자도 원형 출입구에 서서 잔뜩 폼을 잡았다.

태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저 아래로 몇 개의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태산을 오르기 전에는 그저 드러난 태산의 해발고도만 보고서 별로 높지도 않다며 적잖이 실망했는데, 올라가보니 발 아래로 몇 개의 연봉을 거느린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었다. 산둥반도 전체가 평평한 평지인데 그런 평지에 홀로 불쑥 솟아있었으니 사람들이 태산을 말 그대로 '泰山(태산)'이라고 느끼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이럭저럭 대충 구경을 하고 나니 뭔가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겨야 할 것만 같은데 무식하게 바위에다 "나 왔다 간다"하고 낙서를 할 수도 없고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동물적 본능이랄까? 짐승들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소변을 보는 것처럼 우리 일행도 태산 화장실에 저마다의 흔적을 남기기로 하고 두리번거리며 화장실을 찾았다. 저기 멀리 보이는 화장실로 일제히 뛰어간 우리들은 그만 기겁을 하고 다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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