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있어도 눈이 없음만 못한 것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1.08.01 08:00수정 2001.08.01 08:0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채만식의 소설과 희곡 가운데 '심봉사' 세 편이나 있다. 그는 소설로 한 번, 희곡으로 두 번 '심청전'을 '심봉사'로 다시 썼으니, 그가 우리의 고전인 '심청전'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가히 알 수 있다.


'심청전'이라면 초등학교 어린이라도 다 아는 이야기이다. 눈 먼 아비 심학규를 지극정성 공양하다 못해 임당수에 몸을 던져 기어코 아비의 눈을 띄운 효녀가 바로 심청이라고, 우리는 생각하는 것이다.

채만식은 이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그 아비인 심학규의 이야기로 만들었으니 그것이 먼저 흥미롭고, 다음으로 팔려간 심청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하니 그것이 슬프고, 마지막으로 눈을 뜨고도 딸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였음을 알게 된 아비가 손가락으로 제 눈 스스로 찔러 도로 눈멀고 마니 그것, 참으로 비극적이다.

왜 그는 그런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꾸며냈을까. 이 자리에서 그것을 세세히 해석할 여유는 없고 다만 채만식이 심봉사에 초점을 맞춘 이유만을 말할 수 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눈을 떠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영달을 누리고 싶어 한 심봉사의 과도한 욕망이 한 점 혈육인 심청을 희생시키고 종국엔 자기 자신마저 파멸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나는 이 '심봉사]'을 여러차례 읽어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심봉사의 그 눈이라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두 눈 모두 뜨고 살고 있다. 그러나 심안(心眼)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연 나는 마음의 눈을 환하게 뜬 채로 살고 있을까. 나 역시 이런저런 세속적 욕망에 시달리는, 눈 먼 심봉사 같은 존재가 아닌가. 육신의 눈을 떠도 마음의 눈이 맹목(盲目)의 어둠에 묻혀 있다면 나는 세상을 제대로 살지 못하리라.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옛날에 한 눈 다친 아름답고 순수한 친구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수많은 인생의 빚을 지고 갚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하게 된다. 두 눈 모두 뜨고 살아가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그 친구가 간직한 마음의 빛을 떠올리지 않고는, 그 등불 빌려 어두운 내 길을 밝히지 않고는, 나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눈이 있어도 눈이 없음만 못한 사람이 그런 때가 우리들 세상에는 있다. 이것은 누구의 무엇의 비유도 아닌 '사실' 그 자체이다. 나는 그런, 나를 포함한 사람들 삶의 불행이 안타깝기만 하다. 언제나 누구라도 후회를 남기게 되는 삶이라는 것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약속드렸던 삶이라는 것에 관한 단상을 다룬 것입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주제를 너무 좁지 않게 보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약속드렸던 삶이라는 것에 관한 단상을 다룬 것입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주제를 너무 좁지 않게 보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