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린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고정 관념」은 <창비> 사이트에서 매우 예리하고도 충실한 비판글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비판글에 대해 실명으로 글을 올리는 시인 박민규 선생의 반박문이 오르고, 또 나의 보충 설명이 오르고 하는 설왕설래 끝에 "지요하 님의 겸허한 글의 논리에 수긍이 가는 바입니다"로 시작되는 최초 비판자 님의 의미심장한 글을 접할 수 있었다.
결국 산뜻하고 기분좋게 토론이 종결된 셈인데, 나는 '공동경비'라는 익명을 사용하시는 그분의 마지막 글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나라 중산층 젊은 가장들의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의 애환, 그들의 가치관의 뷰유 현상과 관련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이 곡진하게 느껴져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만큼 수긍이 가는 말들이 많았다.
'인터넷 토론 문화'의 한가지 바람직한 양태로도 볼 수 있는 이번의 '건설적인' 토론을 통해 나로서는 얻은 것이 많았다. 내 글이 의미 있는 비판글과 그 글에 대한 반박문을 유도해 내고 얻을 수 있었다는 것 역시 내게는 참으로 유익한 하나의 '수확'이 될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내 나름의 논조들을 계속적으로 줄기차게 펼치는데 있어서 많이 참고해야 할 귀중한 사항들이 담겨져 있는 글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 올린 글로 말미암은 '토론'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정보동' 사이트에서 내게 토론을 제의해 온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분은 과감하고 열렬하게 '보수파'임을 자처해 온 분이기도 해서 나는 조금 긴장하고 있다. 토론 자체에 대한 부담감은 없지만(나는 내 양심과 정의감에 기초해서 나름껏 최대한의 이성과 합리성을 조율해서 글을 쓰므로…), 가뜩이나 바쁜 생활 속에서 필요 이상의 시간과 노고를 바치게 되지는 않을까―'체력 유지' 문제가 은근히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논박 내용에 대한 호기심은 내게 좋은 선물일 수 있다.
오늘은 「<조선일보>의 '양비론'에 대한 기억」을 쓰기 위해 컴 앞에 앉았는데, 어제 올린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고정 관념」과 일정 부분 관련되는 글이기도 해서, 우선 어제 글에 대한 '보충 설명'을 몇마디 적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그 가치를 전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다. 이 사회는 절대적으로 이분법적인 사고나 그 가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설령 무개성적인 것일지라도 이 사회를 이루는 다양성과 그 다별한 가치들 속에서 실은 이분법적인 사고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선과 악의 개념에서도 악을 이루는 요소가 매우 다양하고 선을 이루는 요소 또한 매우 다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삶속에서 선과 악의 갈래들이 서로 밀접하게 엇갈려 있는 현상도 자주 보게 된다. 그리하여 그런 현상 속에서 진정한 악과 선은 무엇이며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모호한 의문을 가져보게 되는 것도 내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손은 두 개이되 그 두 손을 이루는 열 손가락―그 하나 하나의 중요함에 대한 인식도 이 세상의 다양한 가치에 대한 혜안이나 겸허함을 잘 일깨워주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탱크가 굴러가는 데는 양쪽의 바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바퀴들을 이루는 숱한 로울러의 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외 수많은 부품들의 독립성이 유기적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탱크의 움직임은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해방 공간 시기와 6.25사변 시기에 극심했던 '좌·우' 이념 대결에 대한 나의 언급은 중립적인 완충지대나 가치관이 자의에 의해서보다는 타력에 의해서 왜곡되고 축소되는 현상에 대한 지적이었다. 극심한 '좌·우' 이념 대결을 완충하기 위한 의지자들의 시도가 그만큼 양쪽으로부터의 심각한 타격 대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어제의 글에서 내가 주제로 설정한 것은 이분법적 사고의 총체적인 정당성을 강변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비판하는 사람 자신이 오히려 이분법적인 고정 관념으로 그것을 타매할 수도 있는 상황을 적시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세상의 성격을 말함에 있어 이분법적인 사고의 잣대로 그 가치를 규정하려 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서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도 있으며, 그것의 철저함과 치열성이 참으로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은 그것을 설명하고 강조하고자 한 글이었다.
자신이 지닌 다양한 가치관으로부터 이분법적인 사고 체계가 더욱 분명해질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이분법적인 사고의 치열성으로부터 다양한 가치관을 획득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인간의 삶을 탄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나는 지난 수십 년의 암울했던 시기를 거치며 오늘의 민주화를 진전시켜 온 과정에는 어느 정도 이분법적인 사고가 기여를 했다고 본다. 물론 그것을 총체적인 눈으로 보자면, 사회의 다양한 제(諸)요소, 제기능이 유기적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하고 또 그래왔음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극히 단순하고 초보적인 것이 명쾌한 진리일 수도 있듯이 민주와 반민주―이 이분법적인 대결 구도의 치열성이 부분적으로는 (절대적이라는 뜻이 아님) 선도적인 구실을 했다는 뜻으로 그런 논지를 폈던 것이다.
이분법적인 사고 체계를 부정하고 타매하는 사람들 중에는 깊은 성찰의 과정 없이 타성적으로 (또는 알레르기적 반응으로) 그런 또 하나의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 스스로 귀착해 버리는 경우도 있음을 본다. 그것은 참으로 분명한 우리의 현실이다.
오늘의 언론 개혁 운동을 부정하고 가로막으려는 사람들 중에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는 것은 내가 경험적으로 느끼고 알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나는 어제의 글도 처음에는 길게 쓰려고 마음먹었었다. 오해의 소지도 있을 것이기에 그것을 잘 해소하기 위해서는 많은 언어들이 필요할 듯싶어서였다.
그러나 나의 긴 글들이 일부 독자님들께는 식상을 안겨 드리고 노고와 시간 손실도 끼쳐 드리는 것 같아 의도적으로 줄였다.
그리고 그 글의 주제를 보강해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은 다음 글로 나누어 쓸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에 의해, 이야기의 한 부분은 오늘의 글 「<조선일보>의 '양비론'에 대한 기억」속에 축약시키고, 더 많은 부분들은 내일이나 모레부터 여러 차례 나누어 일종의 '시리즈' 형식으로 쓸 '장광설' 속에 농축시킬 생각이다.
그러니, 그 얘기들에 귀를 기울여 주신다면 여러분은 어제 글의 내 논지에 대해서 더욱 확실한 이해에 도달하실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 이제부터 오늘의 얘기를 시작하겠다.
어제의 글에서 내가 논지로 띄우고 설명한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또 하나의 이분법적 사고 - 고정 관념'은 사실상 <조선일보>로부터 유래한 측면이 짙다. 시민정신을 강제하던 시절, 그점에서는 모든 신문이 대동소이한 모습이긴 했지만, 내가 조선일보를 우선적으로 꼽는 것은 조선일보가 5공 정권의 최대 '수혜신문'이기 때문이다. 5공 정권과의 찰떡궁합 같은 밀착으로 말미암아 종전의 4위에서 일약 1위로 뛰어오른 배경에는 시민정신을 강제한 그 공적이 가장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와 반민주,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 최면과 깨어남―그런 이분법적 사고 구조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킨 조선일보의 공은 그 어떤 장광설로도 표현이 부족하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그 공적 사례들을 여기에서 일일이 예거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군사독재정권에 밀착한 조선일보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의한 무수한 논조들은 오히려 반대편의 그 대립항을 더욱 강화시켜 놓는 작용을 했다.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특히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와 논조들을 보면서 치를 떨고 울분을 토해야만 했다. 조선일보를 일러 내가 '개똥신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의 일이다.
(1987년 마흔살 노총각과 결혼한 내 아내는 내가 조선일보를 볼 때마다 '개똥신문'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쉽사리 부창부수가 되었다.)
군사독재정권과의 찰떡궁합에 의한 괴력으로 우리 사회에 이분법적 사고 구도를 정착시키는 한편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역할에 의해 2항 대립적 구도가 심화되는 현상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반사적으로 다른 한쪽을 약화시키기 위한 별의별 요설을 다 동원한다.
그러자니 자연 조선일보도 2항 대립의 잔혹한 뻘발에 깊숙이 발이 빠져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악순환이 악순환을 부르고, 부작용이 부작용을 낳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 깊고도 너른 뻘밭을 이룬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뻘밭'이라는 단어를 쓰고 보니 여기에서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민주와 반민주 식의 큰 의미로서의 구도가 아닌, 즉 어느 특정한 이해 집단끼리의 대립 구조라면, 충돌을 방지하고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별도의 가치 개념은 참으로 필요하다. 스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완충 지대의 설정이나 존립은 사회 공동체의 삶을 한결 탄력적으로, 창조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수많은 크고 작은 이해 집단들이 늘 긴장 관계 속에서 상충하며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것을 조정하는 완충 지대의 존재는 인간 사회의 핵심적 가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완충 지대의 세목을 우선적으로 언론과 지식인으로 설정해 볼 수 있다. '정치'라는 단어의 원뜻 대로라면, 정치 권력도 마땅히 완충 지대에 위치해야 하며, 그 정치적 소임을 충분히 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천박한 정치 문화는 그것을 쉽사리 허용치 않는다. 정치 권력은 늘 대립 구조 속의 한편에 위치해 있었고, 이해 집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오늘에도 거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완충 지대의 사회적 소임은 언론과 지식인들에게 더욱 크게 부과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그 소임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 육지로부터 마구 흘러 내려오는 오폐수들을 모두 끌어안고 잘 여과하고 정화하여 바다를 늘 청정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갯벌―개펄'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함에도, 우리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오히려 육지의 오폐수를 증폭시켜 바다까지 오염시키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해 왔다.
가장 큰 원인은 조선일보 같은 최대의 친독재 족벌신문이 언론으로서의 진정한 사명을 일찍이 포기한 탓이었다. 우리 사회에 이분법적 사고 구조를 심화시켜 놓는 일에 주력하다보니 그것이 이미 관성화 되어서 특정한 사회 집단 간의 분쟁이나 갈등 국면에서도 균등 차원의 조정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매사에 수구 또는 색깔론을 앞세운 이분법적 사고 구조에 의한 편향된 보도 태도와 논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탓이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신문이 족벌 언론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늘 살아 있는 싱싱한 갯벌―개펄로 존재하기보다는 자신의 권력과 비대함에 취해 스스로 썩은 뻘밭으로 화하면서 자신의 사지마저 그 썩은 뻘밭에 묻어버린 현상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한때 이분법적 사고 구조의 뻘밭에서 슬며시 발을 빼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타나게 된 것이 이른바 '양비론'이라는 이름의 괴물이다.
딴에는 이분법적 사고 구조를 탈피하고 다양한 가치를 지향한다는 미사려구를 앞세웠지만, 한때 조선일보 논조의 특징이었던 양비론은 기왕의 이분법적 사고 구조의 뻘밭에서 파생한 일종의 '사생아'적인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자신을 분식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었고, 따지고 보면 양비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것 역시 이분법적 사고 구조의 또 하나의 갈래인 셈이었다.
아무튼 조선일보의 양비론은 5공 시절부터 슬슬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직선 대통령인 노태우의 제6공화정 시절에 점점 더 위력을 나타나게 되었고, 스스로 '문민정부'라고 일컬은 김영삼 정권 시절에 그 위력이 최절정에 이르게 된다.
언뜻 보면 참으로 그럴 듯한 조선일보의 양비론은 오랜 세월 이분법적 사고 구조에 젖으면서도 조금씩 멀미를 느끼던 사람들에게 더더욱 최면 효과를 발휘했다.
그리하여 그것은 많은 독자들에게 꽤나 합리적이고 공평한 모습으로도 비치면서, 조선일보는 그러므로 '정론지'다라는 허무 맹랑한 가치 판단을 단단히 응고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럼, 이쯤에서 내가 충남 서산·태안의 지역신문인 <새너울> 1997년 6월 30일자 지면에 썼던 칼럼 하나를 소개해 보겠다. 내 개인 홈피 <글나라>의 '안티조선' 방에 오래 전부터 올라 있는 글임을 밝히며, 글이 더욱 길어지고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양비론'의 뻔뻔스러운 얼굴
'양편의 잘못을 들어 똑같이 비판한다'는 뜻으로 정리할 수 있는 '양비론'은 아직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그만큼 이 말은 신조어적인 성격이 강하다. 아마도 80년대로 넘어와서 갖가지 정치적 곡절을 겪으면서도 성장을 구가해 온 우리 나라 언론사들의 곡예를 부리는 듯한 논조로부터 파생한 말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보면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어지러운 세월 속에서 '권언유착'이 체질화·습성화되다시피 한 우리 나라 보수 언론들의 한 특징을 분명하게 규정 짓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양비론'이라는 이 신조어는 우리 나라 보수 언론들의 성격과 오늘의 언론 상황, 더 나아가 한국 지식인 사회의 한 단면을 가장 극명하고 적절하게 제시해 주는 말이라는 뜻이다.
양비론이라는 말에는 우선 '중립'이라는 뜻이 결부된다. 어느 한쪽만을 두둔하지 않고 양쪽을 다 비판하는 것이니 제법 공평함과 균형 감각이 자리해 있을 법하다. 어쩌면 '중용'의 도리와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세상 사물에 있어 양비론의 여지는 무한정하다. 세상 일의 모순을 적시하고 합리성을 추구하자면 양비론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양비론의 여지가 무한정 하다는 사실은, 양비론처럼 편리하고 쉬운 건 없다는 뜻도 된다.
양비론은 우선적으로 무책임하다. 어떤 일이나 양쪽에 다 잘못이 있다더라도 잘못의 경중은 있는 법이고 원인에 대한 책임의 크기도 다른 법이다. 그것을 잘 판별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그런데도 교묘하리 만큼 양쪽을 '공평하게' 비판하는 것은 잔재주를 느끼게 하고 비겁함을 읽게도 한다.
그동안 우리 나라 보수 언론들의 양비론은 많은 뜻 있는 이들의 비판의 대상이었다. 문제의 본질이나 핵심을 흐려놓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이 더 많은 쪽을 오히려 두둔하는 결과를 낳곤 해 온 것이 양비론이다. 독자들의 판단을 방해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실로 위력적인 언론의 양비론에 의해 피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야권이나 진보적인 비판 세력이었다.
보수 언론들은 그들의 양비론을 옹호하는 자세도 실로 만만치 않다. 일전에 보수 언론의 대표격인 조선일보는 "양편의 잘잘못을 비교 논법으로 잘 가리기 위해서는 양비론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말까지 했다.
다소는 궤변적인 논법같이 들리는 이 강경한 말이 시사하는 바대로 보수 언론들이 아직은 양비론에 대해 반성적인 태도를 취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보수 언론들의 그런 태도는 아무래도 시대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들이 처음부터 자체 의지로, '중용적'인 자세로 양비론을 취한 건 아니었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 양손에 채찍과 당근을 든 정치 권력과의 타협의 산물인 양비론은 그러므로 처음부터 굴절적인 속성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보수 언론들이 오늘날에도 양비론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연초부터 국가적 혼란을 불러왔던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의 날치기처리를 보도하는 자세에서도 보수 언론들의 양비론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국민들의 반감과 저항이 워낙 광범위하고 확연했기 망정이지 여차했으면 그때에도 양비론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연이어 터진 '한보사태'의 진상 규명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을 보도하는 보수 언론들의 자세는 양비론의 버릇이 여전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우리 나라의 보수 언론들이 무책임하고 몰의지적인 양비론의 습성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일일 것 같다. 그릇된 버릇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오히려 양비론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보수 언론들의 오만이 나에겐 큰 두려움을 안겨 준다. *
(1997년 <새너울> 6월 30일)
그런데 대표 주자 조선일보의 이런 양비론은 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슬며시 꼬리를 감추는 형국을 보였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것을 대체하는 별다른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곧 조선일보의 또 하나의 근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론 권력'이라는 이름의 횡포였다. 이분법적인 사고 구조를 바탕으로 사사건건 씹고 찢고 딴죽을 걸고 발목을 잡는 오만 방자한 권력 놀음이 완전히 그 양비론의 자리를 가득 채워버린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또 한번 묘하게도 조선일보의 양비론을 다시 반추해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조선일보가 오랜 세월 신주단지 모시듯했던 양비론을 완전히 헌신짝 버리듯하고서는 다시금 철저히 이분법적 사고 구조 속으로 귀착해 버린 탓이다.
조선일보는 지금 '지식인 사회의 위기'라는 제법 그럴 듯한 이름의 특집 따위로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 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 또는 지식인 사회의 극심한 편가르기 현상을 걱정 개탄하는 척하면서 실은 그것을 한껏 조장하는 뻔번스러운 작태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공기로서의 역할을 방기하거나 포기한 채로 신문을 자기네들의 사보처럼, 그리고 한나라당의 당보처럼 만들고 있는 작태는 가증스러움과 함께 가없는 연민을 느끼게 한다.
나는 조선일보가 우리 사회에 심화시켜 온 이분법적 사고 구조의 사생아인 조선일보 특유의 양비론이 지금 어디 숨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왠지 그것이 슬몃 그리워지기도 하는 이 묘한 심회가 참으로 착잡하고도 서글프다.
오늘의 조선일보에서 그 양비론만이라도 다시금 부활했으면 하고 바라는 이 마음이…!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오히려 잘된 일이다. 조선일보에서 앞서 획책하고 조장하고 있는 이분법적 사고 구조는 이참에 더욱 뚜렷해지고 확실해져야 한다.
그리하여 민주와 반민주,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 최면과 깨어남, 개혁과 수구―등등으로 대별되는 이분법적 사고 구조가 다시금 부활하고 명확해져서, 마침내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오늘, 언론 개혁―역사 발전의 장을 좀더 확실하게 열어갈 수 있다.
사족(蛇足)
이분법적 사고 구조가 궁극적으로는 정당한 것이 아니지만, 시대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는 대단히 필요한 것이기도 한데 우리는 그것에 좀더 철저하지 못했다는 반성적 성찰을 바탕에 깔고 있는 나의 논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나 모레부터 새로 쓰게 될 글들은 형식을 좀 달리할 생각이다. 어쩌면 극히 단순하고 초보적인 것일 수도 있는 그런 논지를 좀더 보강하기 위한 수단으로 50여 년을 살고 있는 나의 지난 세월의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경험들을 결부시켜 많은 실제 이야기들을 가능한한 재미있게 펼쳐 볼 생각이다.
여러분께 계속 관심 가져 주실 것을 부탁 드린다. *
2001년 8월 2일
충남 태안의 반딧불이 작가 지요하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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