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바람타고 전해지는 가을소식

김영조의 <민족문화 바로알기 >

등록 2001.08.07 10:46수정 2001.08.0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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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밤새 열대야에 고생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북녘 하늘 저편에서는 가을 하늘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입추를 시작으로 가을절기로 들어간다. 24절기 중 이번엔 입추, 처서, 백로를 알아본다.

입추(立秋)


24절기의 열 세 번째로 음력 7월 즉 맹추월(孟秋月:음력 7월의 또 다른 말, 초가을이란 뜻)의 절기인데 올해는 양력 8월 7일이다.

해의 황도가 135도인 날이며, 대서와 처서 사이에 있고, 가을에 들어서는 절기라는 이름이다. 동양의 역(歷)에서는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의 석 달을 가을로 한다.

옛날 사람들은 입추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초후(初候)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中候)에는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말후(末候)에는 쓰르라미가 운다고 표현하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칠월칠석을 전후하므로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8월 7~8일 경이 입추인 것은 계절이 실제보다 빠른 느낌을 준다. 이것은 대륙적 기후가 우리나라보다 빨리 와서 빨리 가는 중국의 계절이름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입추가 지난 뒤의 더위를 잔서(殘暑:남은 더위)라고 하고,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에도 더위가 남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사전에서 보면 입추는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고, 말복(末伏)은 '여름의 마지막 더위'를 뜻한다. 그렇다면 입추가 말복 뒤에 와야 하는데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게 정해 놓지 않았다. 주역에서 보면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을, 여자라고 해서 음기만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한다. 조금씩은 중첩되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인데 계절도 마찬가지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이 역할을 입추와 말복이 하고 있는 것이다


입추부터는 가을채비를 시작한다. 특히, 이때에 김장용 무, 배추를 심는다.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하니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벼가 한창 익어 가는 계절이므로 이 때 비가 많이 오는 것은 흉년의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래서 입추 뒤 비가 닷새동안만 계속돼도 옛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는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날이 개기를 비는 제사)를 올렸다. 성문제(城門祭)또는 천상제(川上祭)라는 또 다른 이름도 있다.


제를 지내는 동안은 성안으로 통하는 수로(水路)를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게 한다. 그리고 모든 성안 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며,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 비를 유감(類感)하는 일체의 행위는 금지된다. 심지어 방사(房事=성교)까지도 비를 유감한다 해서 기청제 지내는 전야에는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는다.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일체 금한다. 제장(祭場:제사를 지내는 곳)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다.

참고로 '입추(立錐)의 여지(餘地)가 없다'는 말은 이 입추(立秋)와는 관계가 없다. 송곳(추:錐)을 세울 만한 여유가 없다. 즉, 아주 좁고, 여유가 없음을 가르키는 말이다.

처서(處暑)

24절기의 열 네 번째 절기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들며, 올해는 음력 7월 5일, 양력은 8월 23일이 된다. 해의 황도가 150도에 있을 때이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낱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한다.

옛 사람들은 처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중후(中候)에는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여름 동안 습기에 눅눅해진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쬘 폭·포,  :쬘 쇄)도 이 무렵에 하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파리 모기의 성화도 줄어가는 무렵이다.

백중날(百衆:명절 중의 하나로 음력 7월 보름)의 호미씻이(세소연:洗鋤宴-농가에서 마지막 논매기를 끝낸 음력 7월에 노는 놀이)도 끝나는 무렵이라 그야말로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농촌은 한가한 한 때를 맞이하게 된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고 하여 곡식이 흉작을 면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전해지고 있다. 또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도 있다.

백로

24절기의 열 다섯 번째 절기로 처서와 추분 사이에 들며, 음력 7월 20일, 양력 9월 7일이다. 해의 황도가 165도에 올 때이다.

이때쯤이면 밤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해진다.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 입기일(入氣日)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때는 장마도 걷히고 중후와 말후에는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백로가 올해처럼 음력 7월중에 드는 수도 있는데 제주도와 전라남도지방에서는 그러한 해에는 오이가 잘 된다고 전해진다. 또한 제주도 지방에서는 백로에 날씨가 잔잔하지 않으면 오이가 다 썩는다고 믿는다. 경상남도의 섬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을 새벽에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는 말도 전해진다.

옛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백로에서 추석까지 시절을 포도순절이라 했다.

그 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알은 다산(多産)을 상징시키는 의미이다. 또 조선 백자에 포도 무늬가 많은 것도 역시 같은 뜻이다. 지금도 어른들은 처녀가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치는 분이 있는데 바로 이 의미 때문이다.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했는데,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으로 먹여주던 그 정을 일컫는다.

이제 여름의 막바지에 와 있다. 더운 여름철엔 자칫 짜증이 나기 쉬운데 지금 저 산모퉁이에는 가을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한다는 희망으로 이겨내자.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 하나라도 나눠주려는 마음을 가질 때야말로 건강한 여름나기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참고>
디지털한국학 : www.koreandb.net/KoreanDB_Services.asp?URL=/holiday/heritage/cult_day.html
한국의 24기 : my.netian.com/~uylee/main.html
뿌리넷 : www.poori.net/
옥지네 : user.chollian.net/~cha0523/

덧붙이는 글 <참고>
디지털한국학 : www.koreandb.net/KoreanDB_Services.asp?URL=/holiday/heritage/cult_day.html
한국의 24기 : my.netian.com/~uylee/main.html
뿌리넷 : www.po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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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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