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한 포기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자연을 닮아가는 아이들...한광여중 '생태연구반'

등록 2001.09.01 10:51수정 2001.09.0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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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거 있죠. 들풀 하나도 다 관심이 가고... 이름이 뭘까 궁금해지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아는 것이 늘어나면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설명해줄 때는 뿌듯하죠"
자연을 알아 가는 즐거움을 아이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활짝 핀 얼굴에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다른 학교에 비해 긴 여름방학의 끝자락, 지난 8월 29일 오전 9시 30분 한광여중 생태연구반 32명 중 10여명의 아이들이 학교 앞으로 하나둘 모여 들었다. 지도를 맡고 있는 김만제 선생은 부인과 문협(중앙초교ㆍ5년), 문범(〃ㆍ3년) 두 아들과 함께 왔다.

오늘은 안성시 원곡면에 있는 칠곡저수지 밑 통복천 상류지역의 탐사가 있는 날이다. 마을입구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조용하고 풍요로운 칠곡리 용수마을 일대의 들꽃과 마을을 지나는 소하천을 탐사할 예정이다.

방학이기도 하지만 이미 1학기 중에 진위천과 안성천, 창내리 자연학습장에 대한 탐사활동을 벌인 터로 여유있고 느긋한 폼새들이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생태연구반은 올해 김선생이 푸른경기21의 2001년도 학교실천사업 '평택호 물줄기 탐사를 통한 하천생태 교육프로그램 제작'에 같이 참여하고 있다.

승용차에 나눠 탄 채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쉴새없이 떠들어댄다. 마을에 도착해 김선생의 간단한 설명은 들은 뒤 아이들은 칠곡저수지 둑방길을 올라갔다.

"생태연구반 재미있어?"라고 물었더니, 일행중 비교적 조용한 선미는 "재미있어요. 길을 가다가 아는 곤충이나 들꽃을 보면 기분좋아요. 친구들에게 자랑도 할 수 있고"라고 대답한다.

시원하게 트인 저수지 둑에 서자 아이들의 표정은 한층 밝아진다. 김선생이 개망초를 뽑아들며 "이것의 이름은 뭐지?"라는 질문에 "애그 플라워요"라며 막힘없이 별칭으로 답하고, 직접 들꽃도 만지면서 아이들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현장학습에 젖어들었다.


30여분간의 식물탐사를 마치고, 민물고기 조사를 위해 족대와 어항을 들고 소하천 밑으로 하나, 둘 씩 뛰어들었다. 김선생의 큰 아들 문협이는 어느새 낚시까지 빼들었다.

운동화를 신은 채 물 속에 들어간 김선생이 족대로 하천 바닥을 한번 훑자 붕어와 참붕어, 민물새우, 밀어, 물달팽이 등이 올라왔다. 글을 잘 쓰는 민희는 종류에 따라 개체수를 적고, 다른 아이는 그것을 어항에 담는다.

김선생의 족대질을 지켜보던 용화는 자기도 해보겠다며 달려들었다. 한 번의 족대질에 10여 마리의 물고기들이 올라오자 용화는 스스로 대견한 듯, 얼굴에는 만족스런 웃음이 흘렀다.


특산종과 외래종을 구별하고, 피라미와 비슷하지만 은빛이 더 강한 '치리' 등을 보며 아이들은 이곳이 3급수 하천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반 대표인 하얀나래는 "여기가 통복천 상류인데 잡힌 어종으로 봐서는 거의 3급수에 해당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저 아래는 4급수 수질 밖에는 않되지 않겠어요?"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김선생과 일부 아이들이 어종을 분석하는 동안 은루와 주림이 등은 나무젖가락으로 주변 청소를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탐사를 가는 곳이면 늘 하는 일이다.

민물고기 조사를 마친 아이들이 하천에서 올라오자 김선생의 부인은 빵과 음료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러나 한창 클 나이에 성이 차지 않는지 뭔가 아쉬운 눈치다. 기자가 떡볶이와 김밥으로 한 번 '쏜다'고 말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성을 질러댄다.

자연과 함께 하면서 닯아가는 아이들. 요즘 아이들에게서 쉽게 보지 못한 순수한 얼굴들을 여기서 본다.


민물고기 잡으러 가던 날...

한광여중 3년 류민희

"나래야, 나 손 좀......."
가연이가 물가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에서 먼저 내려간 나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요. 다른 친구들은 이미 다들 양말을 벗고, 신발은 갈아 신고는, 그물 망을 들고 물고기를 잡고 계신 선생님 곁에서 조금은 신기한 듯 첨벙거리고 있고요.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기를 몇 분, 아무 것도 없던 그물 망 안에 어느새 민물고기들이 가득 담겨 올라왔고, 아이들 모두 그물 망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펼쳐진 그물 망 안에는 참붕어와 민물새우를 비롯해서, 징거미, 밀어 등 많은 물고기들이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햇빛에 은빛 비늘이 반사되어 반짝이던 치리가 가장 예뻤어요.

모두들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는데 언제 갔다왔는지 수자가 조그만 어항에 깨끗한 물을 담아왔어요. 그 어항에 잡은 물고기들을 한 마리씩 넣고, 어떤 물고기들이 있는지, 몇 마리인지 하나하나 적고, 설명도 들었어요. 아이들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선생님 말씀을 듣더라고요.

그리고 몇 번을 더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올렸는데, 용화가 그물로 몇 번 시도 끝에 물고기 잡는 것을 성공하고는 좋아하는 모습을 봤어요. 밝게 웃는 모습에서 자연하고 동화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용화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소리가 들려서 보니, 다른 친구들이 나무 젓가락을 들고는 비닐 봉투에 저수지에 있던 쓰레기들을 주어 담고 있는 게 보였어요. 누가 시킨 것도, 그렇다고 봉사점수를 준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전혀 귀찮다거나 싫은 내색 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청소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한 어떤 것으로 가득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가꾸자는 열 번의, 백 번의 외침보다 우리 주변의 풀들을 허리 숙여 한번 살펴보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런 활동을 하는 부서가 저희 학교 밖에 없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하면서도 안타까웠어요.

조금 더 많은 학생들이 함께 이런 활동에 참여하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 때문에요. 그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쓰레기를 줍고 있는 친구들 속으로 뛰어갔어요. 물가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주우며 신나게 웃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어떤 화려한 연예인들의 모습보다 아름다워 보였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짧은 시간 동안의 활동이었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날이 될 것 같아요. 보았던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다웠던 날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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