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에 관한 의심과 소망 한가지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1.09.05 19:00수정 2001.09.0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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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로서는 '언론개혁' 사안이 최대의 관심사다. 이미 여러 번 강조했지만, 언론개혁 문제는 우리 민족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참으로 중대한 일이다. 제반 사회개혁과도 관련되는 일이고, 사회정의와 민족정기의 수립 또는 회복 문제를 포태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민족의 통일 과업과도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인식이 어느 정도 명확할진대 나는 한 사람의 지성인이요 작가로서 오늘의 이 현실 문제를 온 가슴에 껴안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나름껏 신명을 바친다는 각오로 언론개혁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터넷 상에 언론개혁에 관한 글들을 꽤나 많이 쓰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 다른 사람들의 언론개혁 또는 안티조선에 관한 글들도 많이 읽게 된다. 참으로 읽는 재미도 실팍하고 얻는 것도 많다. 때로는 내 글에 대한 '독자 의견'이나 '답변글'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얻는다. 실로 인터넷 상에서도 공부를 많이 하며 사는 셈이다.

그러나 익명 공간의 삭막성과 포악성을 가슴 시리게 접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어느 사이트에나 실명으로 글을 올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내 나이를 밝히기도 한다. 나 자신부터 떳떳한 자세를 견지하려는 뜻이기도 하고, 네티즌들이 대부분 나보다 젊은 층임을 감안하여, 어느 정도 예의를 지켜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이기도 하다.

내 글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욕설이나 무례한 언사를 쓰지만, 간혹은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나처럼 실명을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익명을 사용하면서도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추고 반박을 해주시는 분을 만나게 되면 더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아무래도 '가물에 콩나기'다.

최근 어느 사이트에서 접한 한 익명의 독자는 대뜸 '놈'이라는 언사를 썼다. 나와 동갑이라는 말도 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젊은 사람도 아닌, 나이 오십이 넘은 사람이 최소한의 예의도 차릴 줄 모르고, 글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거친 언사부터 지르고 나오다니, 실망감이 컸다. 사람의 나이라는 게 뭔가. 나이값이라는 건 또 무슨 소린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이를 밝히지 않는 게 더 나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모든 의견을 귀중하게 여긴다.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은 글이라 해서 버리거나 함부로 취급하지 않는다. 여러 사이트에 게시된 그 모든 답변글들을 취합해서 맞춤법과 띄워쓰기를 고치고 보기 좋게 정리를 한 다음 내 개인 홈피의 게시판에 올려놓는다. 나 자신부터 기회가 되는 대로 다시 참고를 하려는 것이고, 여러 사람에게 참고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뜻에서다.

그런데 나는 요즘도 언론개혁 운동에 동참하는 내 글들에 대한 반대 의견들보다 언론개혁이나 안티조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에서 더욱 크게 곤혹스러움을 겪는 경우를 경험하곤 한다. 언론개혁이나 안티조선을 주장하는 것은 좋은데, 그게 심한 욕설로 채워진 글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글들이 심지어는 천주교의 교구청 홈에도 올려지는 것을 볼 때는 너무도 황당하다. 아무리 그럴 듯한 논리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 글에 거친 언어와 욕설이 난무하는 지경이라면 동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큰 반감과 혐오감을 사기 마련이다. 그것은 곧바로 언론개혁이나 안티조선 운동에 누를 끼치는 게 아닌가.

나는 언론개혁 운동에 참여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존경심을 갖는다. 그들이 그런 '인식의 눈'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들이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때로는 그들의 고뇌와 의분, 애타는 마음을 생각하면 그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내게 있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가. 그들은 내가 가지는 우리 민족에 대한 '희망'의 근거이기도 한 까닭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언론개혁을 바라고 추구한다면 모든 주장과 발언에 진지함이 있어야 한다. 진지함이란 진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읽는 이에게 진정성을 느끼게 하려면, 다시 말해 설득력을 지니려면 글이 논리 정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예의를 잘 갖추어야 한다. 독자들에 대한 예의를 결한 글은, 더더구나 욕설과 거친 언어를 무절제하게 동원하는 글은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개혁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그 정도를 모를까. 그 정도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언론개혁에 대한 인식의 눈을 가지게 되었을까? 언론개혁에 대한 인식의 눈이란 높은 정신 수준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내 나름의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언론개혁이나 안티조선을 주장하는 이들의 일부 거친 글들을 접하다보면 참으로 이상스럽기만 하다. 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로 이들이 언론개혁을 소망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일까―대단히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런 의심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쩌면 개혁 대상으로 몰려 있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족벌 신문들을 돕고 언론개혁 운동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일부러 그런 장난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런 내 상상력이 어쩌면 순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욕설의 글들만을 잘도 골라 '호외'라는 이름의 '찌라시'에다 최대한 활용해 먹는 조선일보의 행태를 보노라면 그것은 이미 확실한 사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제부터는 다른 또 하나의 기준을 세우려고 한다. 안티조선이나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글이면서도 거친 언사나 욕설을 동원하는 글들에 대해서는 언론개혁 운동의 상궤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만 간주하지 않고, 언론개혁 운동을 심대히 방해하면서 개혁 대상인 족벌 신문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행위로 치부하려고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족벌 신문들의 사주를 받고 행위하는 일종의 '공작'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진정으로 언론개혁을 소망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언어에 대한 사명감과 인터넷 문화에 대한 소명의식도 가져야 한다. 인터넷 문화를 잘 발전시키고 인터넷 상에서의 우리의 언어를 좀더 아름답고 품위 있게 가꾸어 가는 일도 언론 개혁을 소망하는 진보 세력―양심 세력의 몫이 되어야 한다.

(비아냥과 야유를 구사하더라도, 정곡을 찌르는 해학과 유머와 위트, 그리고 탄력성을 지닌 탁월한 논객 진중권 씨의 글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또 한 가지 부과된 이 소중한 몫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다같이 담뿍 안고 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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