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참을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지역감정과 결부되는 말을 듣게 되면 쉽게 자제력을 잃곤 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지역감정 문제를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파악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만큼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충청도 사람인 나는 정확히 1995년 이전까지는 주변 사람들의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편견―그 오도된 인식 따위가 주로 내가 상대하는 것이었지요. 누구한테서든지 전라도에 대한 그릇된 말을 듣게 되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서곤 해서, 때로는 말다툼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95년 이후부터는 일시에 충청도를 휩쓸고 장악해 버린 김종필 씨에 의한 이른바 신지역감정 바람과도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지금은 그것과의 싸움이 가장 힘겹고도 치열한 상황입니다.
나는, 충청도 사람인 내가 영·호남의 지역감정에는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기가 어렵지만, 현실 생활에서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바람에는 명확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지성인의 분명한 몫이라고 생각했지요.
나는 충청 지방의 일부 지식인들이, 그것도 명색이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충청도의 신지역감정을 고질화된 영·호남의 지역감정과 비교하면서 '당연한 것'으로 파악하는 관점에 놀란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속에서 전라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더욱 확대재생산되며 기승을 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고향에 몸을 놓고 살고 있는 작가로서 내 고장의 지역감정 바람과 분연히 맞서 싸워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고, 이런 내 신념을 생활 속에서 나름껏 최대한 열심히 실행해 왔습니다. 우선은 내 고장의 지역감정과 치열하게 맞서 싸운 다음에야 다른 지방의 지역감정에 대해서도 이왈저왈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명료히 했던 거지요.
그리하여 나는 주위 사람들과 자주 충돌을 일으켰고, 지역 언론매체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민련바람'이라고도 하고 '황색바람'이라고 부른 충청도의 신지역감정과 사투하듯 싸웠습니다. 그에 따라 무서운 전화 폭력―언어 테러에 시달린 적도 여러 번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실상은 1997년 <작가> 11·12월호와 <소설충청> 5집에 발표한 단편소설 '한 번도 지지 않은 사람'속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만, 오늘의 이 글에서는 내가 우리 고장의 지역 언론매체들에 썼던 꽤 많은 칼럼과 사설들 중에서 일부를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충청도정신'의 진정성
6.27 지방선거가 끝난지도 둬 달 되어가니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에 의존하여 선거 당시엔 하기도 어려웠고 해본들 씨가 먹히지 않을 터라 그저 혼자 속만 끓였던 얘기 하나 하고 넘어가야겠다.
이것은 작가 명색으로서 시대에 대한 비판자적 구실과 증언자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내 나름껏 반드시 기록으로 정리, 남겨야 할 사항이다.
지난 92년의 14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직후 부산의 한 여성 작가로부터 받은 전화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 선생님 사는 동네가 차암 멋진 동네네예."
충청도에서 유일하게 야당 후보를 당선시킨 지역에 대한 경탄의 표시였다. 그러나 나는 다소 과분한 심정이었다. 한영수 씨의 당선은 그에 대한 동정심을 포함한 지역 정서와 관련하는 것의 폭이 크지, 이 지역이 특별히 야성이 강하다거나 수준 높은 시대 정신의 결집에 의해 결과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제13대 땐 통일민주당의 박태권 씨가 당선했고, 그전에도 한영수 씨에게 삼선의 영예를 안겨 준 곳이긴 하지만, 당시에 박태권 씨에 대한 동정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든지, 한영수 씨가 중선거구 시절의 덕을 많이 본 저간의 사정들을 미루어보면 우리 지역도 별로 특출난 곳은 아니다. 그저 '천박한 충정도 정서'에 충실한 충청도 지방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실은 지난 6.27 지방선거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자민련의 충청도에서의 놀라운 싹쓸이 현상은 왜곡된 충청도 정서의 집단 최면적 위력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 주었다.
처음부터 자민련이 충청도에서 강세를 보이리라는 것은 능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태풍이 되어 싹쓸이 현상으로 나타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하였다. 나는 이런 놀라운 현상 앞에서 끔찍한 공포감과 절망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단순하고도 순진무구한 사람들은 자민련의 완전 승리를 놓고 크게 흥분했다. 일찍부터 멍청도 핫바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자민련을 밀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떨거둥이가 된 김종필 씨를 지지하는 것만이 충청도가 무시당하지 않고 충청도의 정신을 세울 수 있는 길이라고 굳게 믿은 사람들은 자연 승리감에 도취했다. 충청도민의 단결력과 본때를 보여 주었다는 말들이 참으로 무성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진정한 충청도 정신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나는 늘 충청도라는 우리 지방의 이름에서 찬란한 기상을 느껴왔고, 우선 그 이름에서부터 큰 긍지를 품어왔다. 맑고 푸른 기상의 이름만으로도 우리 충청도가 한반도의 심장을 상징한다고 여겨왔고, 우리 충청도 정신이 한반도 전체의 정신을 선도해야 한다는 생각도 해 왔다.
그러므로 충청도 정신은 충청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뿌리칠 수 없는 것이었다. 충청도 정신이란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가치관과 높은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충청도인으로서 우리 민족을 분열과 대결의 질곡 속으로 몰아넣은 영·호남의 지역 감정을 몹시 안타까워 했었다. 그것을 완화시키고 극복의 길로 유도할 수 있는 길 하나가 바로 우리 충청도가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역 감정에 초연한 초월성, 대결 구도에 함부로 휩쓸리지 않는 의연함을 지니고 영·호남을 정신적으로 다독거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민족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충청도도 지역 감정을 조장하여 기반 삼으려는 한 정파의 정략에 철저히 휩쓸리므로써 영·호남과 똑같이 천박한 지역 감정 지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는 영·호남의 지역 감정 대결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도 잃게 되었고, 한 정파의 이익을 초월하여 진정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토대도 매우 부실하게 되고 말았다.
그저 오늘만을 생각하는 간단한 이해 타산의 잣대로, 우리 나라에 군사 쿠데타와 군사 독재의 시효를 연 인물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도 철저히 묻어버린 채, 그리고 그의 수많은 훼절들도 간단히 정당화시켜 주는 이런 몰이성적인 현상은 앞으로 더더욱 부정적인 현상들을 낳을 것이다.
민중으로 승화되지 못한 대중은 놀라운 일시적 현상을 만들어낼 수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역사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역사에 대한 자각과 애정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치한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이용하여 거기에 기반하려는 사람은 역사에 이름이 남을 수는 있을지언정 길이 빛나지는 못한다. 오늘만이 중요할 뿐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까닭이다.
나는 양반골의 의연함이 사라지고 '패거리 정신'이 기승하게 된 오늘의 현상을 가슴 아파하며, 거대한 왜곡의 물결에 도매금으로 파묻혀버린 것을 창피스럽게 생각한다. 또다시 왜곡되지 않을, 진정한 충청도 정신의 복원과 참된 미래를 갈망할 뿐이다. *
(1995년 <태안신문> 8월 21)
오늘의 이 긴 글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위에 소개한 6년 전의 칼럼을 기억하긴 했지만, 소개까지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벌어진 사태―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국회 해임안 결의와 관련하여 김종필 씨와 자민련 의원들이 보여 준 행태들을 보노라니 위의 칼럼을 다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고, 소개해야 할 필요도 느끼게 되었지요.
민족통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충청도는 이제라도 진정한 '충청도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김종필 씨와 자민련에 의해서 야기된 충청도의 신지역감정을 과감히 극복해야만 합니다. 노회한 극우 수구 정치인 김종필 씨와 자민련이라는 정치 집단이 조장하고 이용하는 천박한 지역감정에 언제까지 매여 있을 것입니까.
이번 기회에 충청도부터 지역감정 극복의 모범을 보인다면, 그것은 충청도의 자존심을 고양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민족 화합의 단초를 열어가는 멋진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