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방식 HDTV 시청기

탁월한 화질, 불안한 수신

등록 2001.09.10 15:34수정 2001.09.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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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집에는 HDTV가 있다. 미국에서 산 것이니 당연히 미국방식 HDTV다. 지난 해 이곳에 오면서 집의 TV를 처분했기에 새것을 사야했는데 고민 끝에 거금을 주고 HDTV를 구입했다.

그래도 HDTV 셋탑박스는 금년 초에야 겨우 구할 수 있었으니 실제로 고화질방송을 시청한 기간은 약 반년 정도다. 미국에서도 아직 방송방식에 대한 논란이 완결된 것이 아니어서 제조업체들이 수신기를 내장한 일체형 HDTV를 내놓지 않고 셋탑박스를 별도로 판매하고 있다.

한국도 HDTV 본방송이 임박했지만 아직도 미국식과 유럽식을 놓고 격론이 계속되고 있어 지난 반년간 경험한 기자의 HDTV 시청소감이 한국 시청자들의 판단에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우선 독자들이 궁금해 할 화질 문제. HDTV가 구현하는 화질은 35mm 극장 스크린의 그것과 동등하다고 보면 된다. 기자의 TV는 34인치 크기의 브라운관형 스크린이지만 커다란 은막 스크린에 투사된 HDTV 화면을 보면 소극장에서 볼 수 있는 화질과 거의 차이가 없다. 여기에 HDTV는 AC-3의 입체음향을 지원한다. 디코더와 서라운드 스피커 세트를 추가하면 극장같은 입체음향을 안방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

지난 주말 CBS 방송은 US오픈 테니스 결승전을 HDTV로 중계했다. 윌리엄스 자매가 벌인 117년 만의 자매간 결승전을 생생한 화면으로 즐길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다. 일부에서는 HDTV 방송엔 영화가 제격이라고 주장하지만 기자의 소감엔 생방송 중계에서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비너스 윌리엄스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방울 하나,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한올까지 마치 사진처럼 생생하게 구별할 수 있다. 거대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수만명의 관중도 시력만 좋다면 한명씩 알아 볼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 정도.

미국에서는 CBS가 HDTV 방송에 가장 적극적인 반면에 ABC나 NBC 등은 아직까지는 HDTV 수상기 보유자가 적다는 판단에서인지 황금시간대를 제외하면 방송에 소극적이다. 화질 역시 방송사 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기자의 비교로는 CBS가 가장 선명하고 Fox가 조금 뒤떨어진다. 아마 송신장비의 성능이나 방송사 녹화기기의 성격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서 비롯되는 현상인 듯 하다.

HD급으로 송신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SD급 화면으로 시청할 수 있다. SD급 화질은 DVD 정도를 상상하면 될것이다. HD나 SD급 모두 돌비 AC-3의 입체음향을 지원한다.


미국방식 HDTV를 시청하는데 있어 가장 큰 골치거리는 수신 안정성이었다. 기자가 사는 아파트는 샌프란시스코 인근을 커버하는 트윈픽스의 대형 송신탑이 지척에 있고 전파를 가로막는 빌딩이나 산도 없기 때문에 수신 조건은 매우 좋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몇달간은 일본에서 구입한 YAGI사의 실내형 필름 안테나를 창문에 붙여 사용했다. 이렇게 하니 전파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몇개 채널은 쉽게 잡히지가 않았다.

HDTV는 디지털 방식이어서 전부 아니면 전무다. 조금이라도 전파가 약하면 아예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 특히 방해전파를 발산하는 커다란 트럭 등이 지나갈 때면 화면 끊김 현상이 자주 발생해 매우 거슬렸다. 결국 100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 강력한 성능의 실내외 겸용 안테나를 구입해 설치한 뒤에야 이런 현상이 해소됐다.


육중한 무게의 TV를 들고 다니며 시청할 일은 없을 터이니 이동수신은 아예 논외의 이야기지만 안정적인 수신은 별도의 성능 좋은 안테나를 구입하기 전에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방송사들은 지금까지는 고화질 방송에만 치우치고 있어 당초 약속했던 데이터 방송이나 인터랙티브 기능 등은 제공하지 않고 있다. 애초 필름으로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는 비교적 자주 HD송신을 하지만 생방송의 경우는 SD급 송신이 대세인 형편이다. HD급 TV 카메라가 아직은 매우 고가인 탓에 방송사가 전면적인 HD 생방송에 필요한 만큼의 수량을 확보하지 못한 탓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HD급 전파를 송신중인 방송사는 ABC, CBS 등 지상파 방송사와 <디렉TV>라는 위성방송사등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디렉TV>는 접시안테나를 구입한 가입자들이 월정 수신료를 내고 시청하는 방식이며 수신품질은 전국에 걸쳐 균일하다. 한국의 방송사들이 위성이 아니라 지상파를 이용해 HD방송을 하기로 결정한 만큼 미국방식의 단점인 수신화면의 불안정성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수신성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유럽식 고화질 방송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위성을 활용한 송신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적절한 해결책은 아닐까 하는 것이 기자의 소견이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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