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의 <뉴스브리핑> 미국, 공격당하다

등록 2001.09.12 09:12수정 2001.09.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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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격당하다

테러리스트들이 화요일 아침, 미국에 광범위한 공격을 가했습니다. 수많은 전쟁에 참여했으면서도 역사상 한번도 본토를 공격당하지 않았던 미국으로서는 '최대의 위기'이자 '최대의 비극'이라고 표현할 만 합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때 죽은 군인이 2700여명인데 비해 이번에는 최소한 1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8시 48분(한국시간 밤 9시 48분), 어메리칸 에어라인 11편(보스톤발 로스엔젤리스행)이 납치돼서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충돌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9시 6분에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175편(보스톤발 로스엔젤리스행)이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에 충돌했습니다. 남쪽 건물은 10시 5분에 붕괴됐고 이어 북쪽 건물, 그리고 주위의 건물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편 9시 43분에는 어메리칸 에어라인 77편(워싱턴발 로스엔젤리스행)이 펜타곤 부근에 떨어졌습니다. 펜타곤의 헬리콥터와 충돌한 후 이 비행기는 펜타곤 건물로 돌진했습니다. 이 비행기도 납치된 것입니다. 또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편(뉴와크발 샌프란시스코행)은 펜실베니어 부근 서머스에서 추락했습니다.

현재 미국 상공에는 한 대의 민간기도 떠 있지 않고 미국의 금융거래는 모두 중지됐습니다.

누가 공격했을까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3대의 비행기가 미국의 상징을 공격했다는 사실입니다. 두 대는 미국의 경제적 지배를 상징하는 월스트리트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공격했고, 또 한 대는 미국 군사적 지배의 사령탑인 펜타곤으로 돌진했습니다. 특히 언론은 세계무역센터 부근은 유대인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납치한 민항기로 공격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민항기만 상공을 낮게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악용한 것이고 동시에 미국인의 살상을 직접적인 목표로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사실은 이번 사건이 대단히 치밀하게 준비한 대규모 테러 조직의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일단 공적인 국가기구는 이런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보복을 염두에 둔다면 자국 국민의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사건은 중동과 관련된 조직이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지하드와 하마스는 자신들이 한 행위는 아니라면서도 "이번 공격은 미국의 중동정책의 귀결"이라고 말했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관리는 "빈 라딘 씨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했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짙은 혐의를 받고 있는 빈 라딘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은신해 있습니다. 빈 라딘은 96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발사건을 비롯해 98년 케냐 및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탄테러, 지난해 10월 예멘에서 발생한 미 구축함 폭탄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왔습니다. 빈 라딘 조직은 공개적으로 "민간인이건 군인이건 미국과 그 동맹국을 공격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무슬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빈 라딘 씨는 지난 6월, 자신을 따르는 테러리스트들이 훈련받는 모습을 공개했고, 영국 BBC에 따르면 런던의 아랍신문 알쿠드 발행인은 "3주일 전에 빈 씨가 미국에 '엄청난 공격(big attack)'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으며 이번 사건이 그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사건 이후 11시간이 지난 시점에, 우리 시간으로 아침 8시경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폭발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의 미사일 공격이 아닌가 하는 보도가 있었지만 미 국무부와 백악관은 미국과 관련이 없다고 부정했습니다. 현재로서는 내전이 재개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어쨌든 반군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는 사건 직후 "우리는 테러리즘을 지원하지 않는다. 오사마 빈 라딘은 그런 능력을 지니지 않았다"고 부정했습니다.

물론 빈 라딘만이 이런 테러의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의 CIA는 아직 단정할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로커비 상공에서 팬암 103편이 폭발했을 때 그 배후로는 리비아의 가다피가 지적된 바 있습니다. 또 이라크도 충분히 이러한 테러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 국가의 공적기구가 직접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미국 내에서 미국의 중동정책이나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혐오하는 세력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오클라호마 미 연방청사 폭발사건의 범인은 미국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력이 대규모의 조직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입니다.

배경과 파장

중동쪽에서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면 아리엘 샤론(현재 이스라엘 수상)의 예루살렘 방문(2000년 9월 28일) 이후 이스라엘과 피의 보복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수천명이 사망한 중동의 상황이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부시행정부는 아랍에 대해 강경정책을 취해 왔고 최근 유엔에서 열린 인종회의에서는 시오니즘을 인종차별주의로 규정하는 선언문 채택에 반대해서 이스라엘과 함께 대표단을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의 보복'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런 행위를 한 종족을 사냥할 것(hunt down the folks who committed this action)"이라는 극언을 했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략은 현실적으로 강력하고, 또 논리적으로 합리적 행위이지만 역사는 이러한 전략이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테러조직은 소수의 정예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미국의 응징에 대해서 또 다른 테러조직이 생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테러 직후 나온 영국 BBC의 화면은 아랍인들의 반응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경적을 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BBC 리포터의 코멘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의 한(hatred)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

이번 사건으로 미국의 MD 계획 등 강경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 확실합니다. 강경파들의 주장해 온 '깡패 국가', '테러 위협'의 실체가 확인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시대통령은 공격자가 누군지 확인하기만 하면 가장 강력한 군사 공격을 할 것입니다. 군수산업의 요구도 들어주고 자신의 인기도 만회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번 사건이 MD계획의 타당성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꾸로 이번의 테러는 외부에서 날아오는 미사일보다 내부의 민항기가 공격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입니다.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느니 보다 내부의 보안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반론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죠.

물론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 이런 의견이 힘을 얻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또 하나,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도 거의 확실합니다. 세계의 3대 축(미국, 일본, 유럽)이 모두 침체상태에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안정성이 높아진다면 세계경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장 런던 증시는 5%이상 폭락하면서 문을 닫았고 내일 뉴욕 증시는 열리지 않습니다. 패닉 상황은 모든 신용거래의 중지를 의미하고 이것은 거래 규모의 대폭 축소로 이어집니다. 금과 같은 실물에 대한 투기가 이어지면서 생산적 투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생필품에 대한 사재기 현상은 일어날 수 있어도 경제의 회복에 도움을 주는 내구소비재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줄어들 겁니다. 미국 관리들이 공언하는 '전쟁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현재의 침체분위기는 위기 상황으로 돌변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우리 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선 미국의 대외정책이 더욱 강경해진다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합니다. 럼스펠드 등이 주도권을 쥐면, 미국의 핵사찰 요구 등, 대북 정책이 더욱 가혹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재개된 남북장관급 회담이 다시 무한정 연기될 가능성마저 있는 것이죠. 이번 월말에 미국에서 있을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얼마나 부시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경제 역시 좋을 리 없습니다. 첫째는 증시의 동조현상은 한국에서도 주가폭락을 불러올 겁니다. 특히 투기적 자본은 한국의 증시를 떠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한반도에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 자본은 좀 더 안전한 곳을 찾을 겁니다.

둘째는 수출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미국의 내구소비재 수요는 더 빨리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대미 수출상품이 주로 자동차, 그리고 컴퓨터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수출 환경은 더욱 악화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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