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CNN이 진보적인 매체"

등록 2001.09.20 15:12수정 2001.09.2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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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나면 정든다고 CNN에 대해 기자는 개인적으로 애증이 많다. 이번 테러사건 직후 방영된 팔레스타인의 환호 장면이 조작된 것이라는 혐의 때문에 CNN이 한창 비난을 받고 있는데 진보세력만 그런 것은 아니다. 독자들이 보수신문의 하나로 알고 있는 중앙일보에서도 CNN의 뉴스 독점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을 보면 세계 어디서나 별로 고운 시선을 받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유럽, 동남아, 일본 등 어느 곳에 가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뉴스원은 CNN 밖에 없으니 호텔방의 TV는 어느새 CNN에 맞추어져 있다. CNN이 탄생한 '80년대에는 학생으로서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후엔 프로듀서로서 수십개의 뉴스를 CNN에 직접 공급하기도 했던 기자로서는 더욱 관심있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프카니스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서방기자가 결국 추방당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CNN 기자다. CNN을 아메리카 제국주의 현신으로 보는 사람들은 중동이나 이라크에서 제일 손가락질을 받는 방송이 CNN일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실상은 거꾸로다.

미국에 적개심을 보이는 최악의 반미 국가에서도 유일하게 환영받는 서방매체가 CNN이다. 나중에 해설이야 어떻게 달든 일단 이들의 목소리를 그나마 최대한 보도해주는 매체가 바로 CNN이기 때문이다. 걸프전 당시 서방 언론 중 유일하게 사담 후세인을 인터뷰하고 평양에 한국언론보다도 앞서 서방 언론사 최초로 지국을 개설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공정보도의 노력이 적대국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탓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을 증오하는 아랍의 테러리스트조차 CNN만은 인터뷰를 허용한다. 어차피 서방 언론사 하나를 골라 자신들의 입장을 알릴 필요가 있다면 우호적 보도는 기대 못해도 최소한 왜곡보도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CNN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에 와서 국제뉴스에 관한 한 전 세계가 CNN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은 이런 악어와 악어새 관계가 있었기에 더욱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사주인 테드 터너도 특이한 사람이다.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테드 터너는 기자들이 'foreign'이란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어차피 전 세계의 모든 뉴스를 보도하겠다고 나섰는데 도대체 무엇이 'foreign'이냐는 지론이다. 따라서 CNN에서는 US news 아니면 World news다. 미국도 여러 뉴스원 중 하나로만 보겠다는 뜻이다. 테드 터너의 개인적 소신 탓에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가장 관심이 많은 뉴스 채널 중 하나다.

걸프전 당시 전쟁을 비디오 게임처럼 생중계 해 오락거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 역시 CNN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 그래도 폭탄이 떨어지는 바그다드 시내에 끝까지 피터 아넷 특파원을 남겨두고 이라크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 준 방송사는 CNN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쟁을 탈인격화하여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을 비인간적인 전쟁의 미래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그것도 결과론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차피 크루즈 미사일을 날리고 위성카메라로 이를 확인하는 전쟁놀이는 미군이 먼저 저지른 것이고 CNN은 수완이 좋아 이것을 받아 보도한 죄 밖에 없다.

한국에 있는 시청자 입장에선 국제뉴스의 거의 유일한 공급원으로 자리잡은 CNN이 아메리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미국의 보수적인 기성 미디어 중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편이다.


국제뉴스를 가지고 편파적 보도를 하다가는 아예 취재 자체를 거부당해 뉴스 방송으로서 존폐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조선일보 취재, 인터뷰 거부운동을 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CNN은 아무리 그래도 미국의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미국의 미디어 재벌이다. 이제는 타임워너와 AOL까지 계열사로 두고 있으니 보수화 경향을 피할 수는 없겠으나 소수의 좌파 진보매체를 제외하면 미국의 메이저 방송사 중엔 그래도 가장 균형 잡힌 보도를 하는 매체라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번 여객기 테러사건은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니 CNN 미국 본사가 취재해 보도한 것이다. (CNN은 런던, 홍콩에 각각 유럽과 아시아 지역본사를 두고 독자적인 방송을 한다.) 따라서 미국시청자의 입장에 기운 보도가 송출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CBS, ABC, NBC 등 미국 시청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나머지 대형 민간 방송사들의 보도태도가 어떨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CNN이 보도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환호장면에 대한 조작시비가 어떻게 판명날지 모르지만 이 정도 사전 지식을 가지고 CNN의 뉴스를 본다면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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