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제도에 맞선 인도의 불촉천민들

Cast out Caste!

등록 2001.09.23 16:00수정 2001.09.2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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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말에서 9월초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번에서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국제 회의가 유엔 주재로 열렸다. 한국의 언론에 소개된 것은 주로 이 회의 내내 큰 논란거리였던 시오니즘이 인종차별인가 아닌가를 둘러싼 아랍권과 미국/이스라엘의 대결, 그리고 대서양 노예 매매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간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 또 하나의 논란이 된 것이 남아시아의 카스트제도 문제라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채 넘어갔다.

확실히 인도 헌법에 의하면 인도에는 더이상 카스트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도 정부 역시 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카스트의 문제가 이 회의의 안건으로 채택되는 것에 강력히 반발하였다. 그러나 현지 인권단체들에 의하면 현재에도 단지 불촉천민(달릿)이라는 이유로 폭행 당하고, 성폭행 당하고, 집이 불타고 하는 일들이 거의 매일같이 일어난다고 한다.

반다바시(Vandavasi)는 남인도 최대의 도시 첸나이(마드라스)에서 버스로 5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타운이다. 버스를 타고 내리면 어지럽게 질주하는 차들과 그 속에서 외국인들을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인도인들의 모습은 여느 다른 인도의 소도시와 전혀 다를바가 없다. 그러나 이 도시는 불촉천민들과 상층카스트간의 유혈충돌의 한복판에 있었던 긴장의 도시이기도 하다.

불촉천민들은 타운에서 조금 더 들어가 있는 콜로니에 살고 있다. 이 콜로니에 들어가려면 상층카스트들이 사는 마을을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데, 당신이 불촉천민이라면 상층카스트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들의 마을을 지날때 반드시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통과해야만 했다. 또한 찻집에서 차를 마실 때에도 불촉천민들만이 앉는 자리에 따로 앉아야하며 차를 마신 후 그 컵은 불촉천민 스스로 씻어야만 했다. 사원에 들어갈 때에는 웃옷을 벗어야 한다. 어떤 종교적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사원에 들어가는 이가 불촉천민인지 상층카스트인지를 구분하는 효과를 갖는다. 왜냐하면 브라만을 비롯한 상층카스트에 소속된 사람들은 어깨에서 허리로 내려오는 흰 띠를 두르고 있고, 불촉천민들은 이것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불촉천민들이 지나간 자리는 오염되었다고 생각하여 물로 씻어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하느님앞의 평등'이라는 카톨릭 교회에서조차 불촉천민들이 앉는 자리와 상층카스트출신들이 앉는 자리가 따로 있었으며, 이것이 카스트충돌의 한 불씨가 되었다. 참고로 인도 가톨릭 인구의 절반 이상이 불촉천민들이지만 인도주교단에서 불촉천민 출신은 단 한명에 불과하다. 신학교에서 알게 모르게 불촉천민들은 성직자가 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교에서도 차별이 있다. 축구장에서 만난 한 불촉천민 축구코치는 자신이 학교에 다닐때 그 누구보다 공을 잘 찬다고 누구나 인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코치가 상층카스트였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거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콜로니에 모여사는 불촉천민들은 주로 들일을 하거나 돗자리를 만드는 일들을 하여 먹고 산다. 이들이 하루를 꼬박 일하고 받는 돈은 50루피(1400원)정도가 된다. 콜로리에서 만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돈으로는 자식들의 공부를 결코 시킬 수 없다며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10여년전 사회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거리 연극을 불촉천민들이 마을 입구에 있는 광장에서 하려고 하자, 갑자기 상층카스트인들이 그 광장의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여기에 대해 불촉천민들이 항의하며 카스트충돌은 촉발되었다. 불촉천민들의 주장에 의하면 경찰에 의해 3명이 살해당하였고, 상층카스트들의 손에 의해 또 많은 수가 죽임을 당하였다. 콜로니에서 만난 한 불촉천민 할아버지는 이 때 상층카스트인들에게 맞아서 눈이 멀었다고 이야기하였으며, 어머니가 자신을 뱃속에 품고 있을 때 폭력을 당하여 한쪽 팔이 불구가 되어 태어난 아이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카스트 충돌의 와중에 임신을 한 여인이 상층카스트인에게 쫓겨 산으로 도망가다가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후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다는 이야기이다. 카스트 충돌후 많은 불촉천민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고, 남은 이들은 차별과 악몽의 기억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카스트충돌은 불촉천민 스스로를 계몽시키고 단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카스트 충돌의 한 복판에 있었던 한 콜로리는 자기 마을에는 더 이상 다우리(결혼지참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 마을에서 도시에서 결혼하였다가 결혼지참금 때문에 쫓겨나 딸아이와 같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모녀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남편에 의한 아내 폭력도 마을에서 금기시 되고 있으며, 아이들의 교육에 커다란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한 콜로리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달에 조금씩 돈을 모아 그 중 얼마는 다른 콜로니의 사회 의식을 고양시키는 일에 쓰고, 나머지는 돌아가면서 한 달에 두 가계를 돕는 자활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청년들 역시 한 콜리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다른 콜로니들이 그 콜로니를 돕는 연대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나의 차별에 대한 계몽은 열가지 차별에 대한 자각을 낳아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해방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콜로니의 모습이었다.

Cast out Caste! 이것이 새천년을 맞는 인도 불촉천민들의 구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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