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번호 4040번'의 안타까운 죽음

평화의 다리 투신, 실향민 할아버지의 장례식

등록 2001.10.08 15:25수정 2001.10.09 09:32
0
원고료로 응원
글 공희정 / 사진 노순택 기자

10월 6일 밤 11시. 정인국(82) 할아버지의 시신이 안치된 고양시 덕양구 명지병원 장례식장에는 부인 임영선(78. 황해도 재령 출신) 씨와 둘째 아들 철수(56) 씨 등 유족들이 눈물조차 말라버린 듯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영정을 지키고 있었다.

▲ 북망산 오르는 길에 꿈에도 그리던 고향마을이 있을는지... 가신 임은 말씀이 없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빈소에는 정씨가 투신 자살할 당시 지녔던 유품과 정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알렸던 중앙일간지의 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물에 번져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이산가족 상봉 접수증과 주민등록증, 손목시계, 손자손녀 사진, 현금 2만1100원이 그가 가지고 있었던 전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씨가 오랜 동안 간직해 왔다는 구형 손목시계는 4시 25분 40초에 멈춰 있어 그가 숨을 거둔 시각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씨의 유족들은 갑작스런 정씨의 죽음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밀려드는 취재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기력이 빠져 있었다. 부인 임씨는 "이제 더 이상 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손을 흔들며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정인국 할아버지 유골 임진각에 뿌려져

▲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품에 간직하고 있었던 이산가족찾기 신청 접수증(왼쪽)과 우편으로 둘째 아들에게 보낸 돈. 접수증은 물에 젖어 이름을 뺀 다른 글씨를 확인하기 어렵고, 아들은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아버지가 보낸 돈봉투를 뜯어보지도 않았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유족들은 정씨는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랐다고 전했다. 특히 남한으로 내려오기 전 공무원 생활이 너무 바빠 제대로 귀여워해주지도 못한 큰아들(철환. 당시 6세)을 그리워했다고 입을 모았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정씨는 해방 직후 공무원 전력 때문에 친일파로 몰릴 것을 우려해 부모와 큰아들을 고향에 남겨둔 채, 1948년 부인 임씨와 당시 한살배기 둘째 아들 철수(56) 씨만을 데리고 황해도 옹진을 거쳐 서울로 월남했다.

정씨는 이후 서북청년단 일원으로 활동하다 47년 서울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이승만 대통령 시절 경무대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제주도와 경남 김해, 충북 충주 등에서 20여 년 경찰공무원 생활을 하다 대구 달성경찰서 경위로 퇴직한 이후 서울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다 5년여 전에 '고향이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다'며 고양시로 이주했다.


▲ 여당 대표가 '조의'를 보내온들 무슨 소용일까. 가족들은 "이런 일들이 다른 실향민께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아버님의 뜻일 것"이라고 말한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 동안 정씨는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 관련당국을 통해 수없이 서신을 보내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임진각을 다녀오곤 했지만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또한 지난해 7월부터 네 차례 방북신청을 했으나 한 번도 뽑히지 못하자 정씨는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TV를 보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고 유족들은 회상했다.

정씨를 모시던 아들 철규(48) 씨는 "아버님은 지난 추석날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차례를 지내고 3일 새벽 집을 나가 아무 소식 없다가 4일 오전 울먹이는 목소리로 '잘 살아라.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온라인으로 송금했다'는 아버지 전화를 받고서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

철규 씨는 "아버님이 부쳐주신 돈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북쪽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 아버님의 유품과 더불어 모두 전달할 작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손에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온라인 우편이 들려 있었다.

정씨는 3년 전부터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이북이 가까운 곳에 뿌려달라고 말해 왔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결국 정씨의 유골은 7일 오전 평소 정씨 유언대로 벽제에서 화장돼 임진각 근처에 뿌려졌다.

▲ 고인이 남기신 유품. 아날로그 손목시계가 4시 25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인은 임진각에서 날을 지새고 새벽녘 즈음 강에 몸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지갑에는 얼마간의 돈과 접수증, 손자들의 사진, 아들의 연락처 등이 들어 있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60세 이상 이산가족 고령자 69만명

정부가 추산하는 전체 이산가족의 규모는 약 760만명, 그 중 북에서 출생해 남에서 살고 있는 1세대는 123만명, 60세 이상 고령자는 69만명에 달한다.(2000년 말 현재)

또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0여 년 전부터 상봉 신청을 한 이산가족들은 지난 달 20일 현재 모두 11만7311명. 이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10만4647명으로 그 동안 실향민 1만3000여 명이 숨졌다고 한다.

그 가운데 80대 이상 신청자는 2만3000여 명이었지만 이중 생존자는 1만6000여 명에 불과하다. 또한 70대 신청자 4만8000여 명 중 생존자는 4만4000여 명이고, 60대 신청자 3만2000여 명 중 생존자는 3만여 명이다. 이처럼 실향 1세대는 대부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고령이다.

이미 지난 7월 현재 남쪽의 상봉 신청자 중 11%인 1만2000여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작년 6·15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통해 가족을 상봉한 이산가족은 3600여 명뿐이다.

▲ '접수번호 4040번'의 죽음. 또 다른 '접수증 소지자들'은 오늘도 두고온 고향생각에 눈물을 훔친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정씨의 유족들은 "하루빨리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를 설치, 실향민들이 이산가족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아버님의 죽음은 이러한 실향민들의 아픔을 대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당국이 탈락자에게 다음 상봉 일정만이라도 제시해주면 고령 이산가족들이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을 텐데, 접수하고 나면 감감무소식"이라며 "때문에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를 뽑는다고 하면 건강하던 분들도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뽑아주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하지를 말아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적십자의 한 관계자는 "방북단 선발시 고령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 등이 있지만 1백명 규모의 상봉단으로 이산가족의 안타까움을 소화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상봉규모 확대하고 면회소 개설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했다.

4040번. 대한적십자사에 남아 있는 실향민 정인국 할아버지의 방북신청접수번호다. 하지만 이제 이 접수 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어 버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2. 2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3. 3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4. 4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5. 5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