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놀이 문화가 아쉬워

흙을 잃어버린 아이들

등록 2001.10.09 15:55수정 2001.10.09 16:07
0
원고료로 응원
싸아하게 맑은 공기가 기분 좋은 강마을의 아침이다. 포플러나무는 여린 바람결에도 작은 손을 연신 흔들어대고 ,그 아래 노오란 골프공 같은 열매를 달고 있는 탱자나무에도 가을이 왔다.

억새는 흰 머리를 날리고 논둑과 강둑 어디 빈자리만 있으면 기를 쓰고 자리를 잡는다. 그 사이사이에 보랏빛 쑥부쟁이가 청아한 웃음을 날리고, 지난 여름의 화려한 추억인냥 검은 열매를 가득 단 맥문동을 만나면 참 반갑다. 어릴적 열매를 짓이겨 손톱에 붉게 바르던 미국자리공의 탐스러운 열매와 잎은 아무 쓸모 없다고 해도 흔하게 보인다.

봄꽃이 분홍과 노랑의 화려하고 풍성한 색감을 자랑하지만, 가을꽃은 아무래도 맑고 시원하다. 용의 쓸개처럼 쓰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용담은 그 짙푸른 꽃이 시리도록 차갑고, 줄기까지 노오란 마타리는 산기슭에 길다랗게 솟아나서 늘씬한 모델같이 후리후리하다. 연보라의 쑥부쟁이는 무성하게 피어도 화려하다기 보다는 어쩐지 애처로운 인상을 받은 것은 그 색감 때문인지 아니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소녀 쑥부쟁이의 전설 때문인지 모르겠다.

강마을 아이들이 시험기간이라 운동장에 덜 나온다. 운동장가를 지키고 있는 측백나무들이 좀 심심하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축구공이 측백나무 울타리를 넘어 논으로 빠지는데, 이때마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공을 꺼내오느라 아랫부분 잔가지는 많이 망가져 있다. 또, 열매가 열려도 아이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측백나무 열매를 따서는 던지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걸리면 선생님께 벌을 서는데도 몰래몰래 지들끼리 맞추기 놀이를 한다.

이처럼 자연이 놀이감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요즘 강마을 아이들도 흙에서 노는 일은 드물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배터민턴을 하지만 손에 흙을 묻혀가면서 놀던 나의 어린시절 놀이는 이제 아이들에게 잊혀져 간다.

우리들의 어린시절은 거의 흙에서 놀고 흙투성이가 되어서 집으로 가곤 했다. 그 정겨운 놀이들의 아이들에게서 외면받고 있다. 자연과 공감하고 자연에 동화되는 그 옛날에 비해 오락기나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의 마음밭은 조금은 황폐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내가 아는 옛놀이들을 살펴보면,


땅따먹기: 어느 장소에서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두꺼운 나무나 석필로 바닥에 둥근 원을 그린 후 합리적인 규칙을 정하여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가위 바위 보를 하거나 작은 돌로 순서를 정하여 손가락으로 팅겨 위치를 정하여 땅을 서로 빼앗는 놀이이다.

깔래 받기: '공기 받기'라고도 하는데 주로 어린 여자애들이 모여 다섯 개의 돌을 가지고 손가락을 재치있게 놀려 횟수를 더해가는 것으로 승부를 가리는 놀이이다. 그리고 비슷한 돌멩이를 수십 개 수백 개씩 모아 죽 널어놓고 따먹기도 참 많이 했다. 우리들은 이것을 '꼼 받기'라고 했다. 손에 돌을 들고 있다가 높이 올린 다음 그 사이 돌을 모아 올린 돌을 받는 것이다. 많이 돌을 확보하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점심시간 나무밑에 모여 앉아 꼼받기를 하다가 시작종이 치면 누가 가져갈까봐 화단 구석에 숨겨두고 갔었다.


방치기: 운동장이나 마당에 평평한 길가에 가로세로 1미터 가량의 직사각형을 두 줄로 칸을 만든 다음 납작하고 작은 돌(말)을 한칸씩 차며 돌아나오는 놀이이다. 이 때 말이 금에 닿거나 다른 사람의 방에 가서는 안된다. 가위표를 한 방은 깨끔발로 뛰어서 건너는 상당히 활발한 운동량과 정교함을 요하는 놀이이다. 이 놀이에 열중해서 해지는 것도 모르고 동무들과 놀다 엄마가 찾아 나오던 생각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자치기: 두 명 이상의 아이들이 길이 50센티 정도의 자 막대와 20센티 정도의 짧은 막대를 가지고 노는 놀이이다. 땅바닥에 길이 5센티 가량의 홈을 파고 이 홈에 짧은 막대를 비스듬히 세우곤 떠 있는 쪽을 자 막대로 치면 널뛰기 할 때처럼 새끼 막대는 공중에 튀어 오르게되는데, 이것을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자 막대로 힘껏 내리친다. 그래서 새끼 막대가 날아간 거리를 자 막대로 재어서 승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놀이는 공간의 넓고 좁음에 따라 자기의 역량과 기술을 요령을 발휘하므로 거리를 예측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구슬치기: 주로 남자 아이들이 많이 한 놀이로 유리 구슬로 맞추기, 구멍 속에 넣기, 삼각형을 그려서 그 속에 있는 구슬을 굴려서 따내기, 홀짝 짓기 등으로 손등에서 피가 나와서 재미있게 하였다. 그리고 특히 큰 것을 왕구슬, 대빵이라 불렀다. 이것을 가진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에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딱지치기: 종이로 만든 딱지를 땅바닥에 놓고 다른 딱지로 그 옆을 쳐서 땅바닥의 딱지 뒤집히거나 일정한 선 밖으로 나가면 따먹는 놀이이다. 요즘 문방구에 가지 아예 딱지용 종이가 따로 판매되는 것을 보았다.

이외에도 제기차기, 비석치기, 팽이돌리기, 술레잡기, 실뜨기.... 이렇게 많은 놀이 문화가 아이들 곁에 있었다.

2교시 시험 감독하면서 1학년 교실 창가에 섰다. 2학기 중간고사 시험지를 받은 강마을 아이들의 진지한 눈매 옆으로 풍성한 가을 들판이 펼쳐져 있다. 콤바인을 몰고 혼자 타작을 하고 있는 젊은 농부의 모습이 외로와 보인다. 이 풍요로움이 완전한 기쁨일 수 없음이 안타깝다. 어쩌면 저 농부도 쌀 수매를 걱정하고 있는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경남 의령군 지정면의 전교생 삼십 명 내외의 시골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 이선애입니다. 맑고 순수한 아이들 눈 속에 내가 걸어가야할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5. 5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