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집에 정을 들인다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1.10.19 10:48수정 2001.10.1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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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사람에 정을 들이고 고양이는 집에 정을 들인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못 듣던 그 말을 저는 소설 속에서 두 번 본 적이 있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어쩌면 그렇게 딱 맞는 말일까요?


개는 제 주인만 보면, 또 주인집 아들딸만 보면, 거의 정신을 잃고 반가워하고 따르지 않습니까? 저도 어렸을 적에 개를 키워본 적이 있어 잘 알지요. 페이지가 딸을 낳고 그 딸이 아들 셋을 낳았는데 그만 비극이 시작되었지요. 페이지는 제가 오래 아팠던 탓에 미신 믿는 어머니 손에 끌려 어딘가로 사라지고 그 딸은 동네 나가 산책하다 쥐약을 먹었지요. 아들들은 셋 중에 막내 코리지만 남고 뿔뿔이 헤어져야 했구요. 사랑하는 개들을 잃고 슬프게 울던 어린 날의 제가 새삼스레 생각나는군요. 아무튼 개는 참말 사람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짐승이지요.

그런데 고양이는 그게 아니지요. 저는 고양이를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어 고양이의 생리를 모른답니다. 그냥 그 오만해 보이는 무관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니까요? 또 미신 믿는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제가 '똥통' 중학교에 추첨되던 날 밤새 고양이가 을씨년스럽게 울었더라는데, 그처럼 고양이는 우리네 사람들한테 이쁘게 받아들여지지만은 않지요. 그런데 그 말, 고양이는 집에 정을 들인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제 무릎을 찰딱 소리가 나게 쳐야 했답니다.

아하, 고양이는 개와 달리 야성이 더 강해서 사람이 아니라 집에 정을 들이는구나. 자기가 사는 집을 제 영토로 알아서 항상 거기 웅크리고 앉아 제 영토의 한가로움을 즐기고 먹이사냥을 나갔다가도 제 영토로 돌아오곤 하는구나. 그러니 사람을 번거로운 동거자 정도로밖에는 안 여기는구나.

물론 사람과 친한 고양이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요, 오만한 놈, 새침떼기, 얌체, 응석받이, 장난꾸러기, 요염한 년, 하다가 급기야는 아유, 내 새끼, 하고 끌어안고 목 간지려주고 입맞추고 함께 뒹굴게 되지 않던가요? 하지만 고양이는 역시 고양이인지라 결국은 사람이 아니라 집에 정을 들이고 때가 되어 문 열어놓으면 진짜 제 집 만들러 떠나는 거지요.

얼마 전에 제가 새로 이사했다는 소린 들으셨지요? 그런데 그 저의 집 아랫층 정원에 도둑고양이 식구가 살더군요. 어미하고 새끼 두 마리지요. 보름이나 되었나요?


어느날 저녁 그날 따라 제가 집에 일찍 돌아와 열쇠로 대문 따고 들어오는데 1층 주인집에서 공들여 가꾸어 놓은 정원 잔디밭에 새끼 고양이가 혼자 놀고 있는 거였어요. 저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하고 두리번거리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미와 형제가 그 주변에 있었겠지요. 나는 그 장래의 도둑님이 너무나 귀엽고 예뻐서 한 번 안아라도 주고 싶었는데 그 친구는 저를 반기지 않고 앙증맞은 다리를 놀려 껑충껑충 뒤뜰 쪽으로 도망을 가버리더군요.

그리고는 어제였지요. 어디 외출 나갔다 낮게 잠깐 볼 일이 있어 집에 돌아왔는데 아, 글쎄, 정원 잔디밭 한가운데에 어미와 새끼 두 마리, 이렇게 셋이서 나란히, 사이좋게, 누워 따사로운 가을햇살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이 친구들이 대문 열고 들어선 저를 보고도 움직일 생각도 않고 저 놈이 뭐하러 이렇게 대낮에 남의 집에 들어왔나? 하고 따지기라도 하듯이 빤히 쳐다보지 않겠어요?


아마 제가 대문 열고 들어와 정원을 가로질러 2층으로 올라가는 걸 꽤나 숨어 보았던 모양이지요? 그리고 이제는 대담도 무쌍하게, 그래 어쩔거냐?, 하고 마치 정원이 전부 제 집이라도 된다고 일가족이 함께 시위라도 하려는 모양 같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합니까? 그 대담한 정원의 새 주인님들 비위 거슬릴세라 세(貰) 사는 사람의 통성(通性)으로 어깨 늘어뜨리고 조심조심 정원 옆으로 난 길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갈밖에요. 그렇쟎아도 아랫층 주인이 집을 내놓은 탓에 사람들이 가끔씩 집 보러 올 때마다 마음 편치 않은데 이제 이 새 주인님들 비위까지 맞춰야 하니 이래저래 저는 더 고달픈 신세가 되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새 주인님들이 부디 잘 살았으면 하는 주제넘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심각한 불황시대에 제가 지금 누구를 걱정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 새 주인님들도 어쩌면 IMF에 즈음하여 사람들 집에서 쫒겨난 숱한 고양이님들의 후손일테니 어쩌겠습니까? 집에 정 들인다는 고양이가 제 집을 가졌으니 얼마든지 '추카' 드려도 될 일이 아닐까요?

경제가 말이 아니라지만 산 목숨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가는군요. 생명이라는 게 그렇게도 모질고 강한 모양이지요.

덧붙이는 글 | 집 없는 분들 모두 집 생겨나기를, 그런 세상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집 없는 분들 모두 집 생겨나기를, 그런 세상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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