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누가 만드나?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1.10.24 01:02수정 2001.10.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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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누가 만드나? <로렌스의 요한계시록> 쓴 사람이 D.H. 로렌스임을 누가 모르랴. 그러나, 책은, 누가, 만드나? 작품을 쓰는 것은 작가이겠지만 책 만드는 것은 그들이 아니다.


생화가 생화인지라 잡지사며 출판사며 왔다갔다 하다보니 그 쪽에서 편집하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남자도 많지만 워낙 여자가 많은 것이 그쪽 일이다. 월급은 많지 않은데 시간과 품은 한량없이 드는 교정, 교열에 필자들을 상대하는 스트레스까지 몽땅 감당해야 하는 그네들을 볼 때마다 나의 고질적인 감상벽이 안으로 돋아난다.

어이, 소명출판사 김영이 씨, 요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가요?
참, 현대문학 계시던 양선희 씨께서는 언제 열림원으로 옮겨 거기서 전화를 받으시나요? 문학동네 김현정 씨, 거기 지금도 계신가요? 지난번에 다른 분이 저를 찾아서 뜻밖으로 섭섭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산타나에서 늦은 밤까지 '한 술' 한 이승은 씨, 가을 깊어 그런지 남방이 추워 보이더군요…….

오늘 잡지 얻어보러 실천문학사 가서 만났네요. 정은영 씨, 정말 한 곳에 오래 계시네요. 덕분에 가난한 실천문학사에 잡지도 단행본도 오탈자(誤脫字)는 없네요.

문학사상에서 만난 친절한 편집자 분 깜빡 그 이름 석자를 잊었다. 문득, 창작과비평사에서 디딤돌로 옮겨 간 공병훈 씨 생각난다. 고마웠습니다.

출판사에서 편집 일하는 여자분들 다 화장기 없다시피 하다. 혈색도, '미인은 잠꾸러기'일 수가 없다. 문 열고 들어가 보면 책상에 머리를 박다시피 문자벌레들과 씨름하고 있다. 애써 표정 밝혀 눈치 없는 방문객 맞아내는 일 보는 것도 마음 편하지만은 않다.

작가분들, 여러분 변덕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계시지요?


늘 그곳에 있을 것만 같던 편집자가 어느 날 휑하니 사라져 버리고 나면 괜히 배신당한 느낌이 든다. 은근한 짝사랑 끝에 버림받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 무슨 적반하장(賊反荷杖)? 그네들 거기 그 자리에 못 있게 만든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나 자신인 것을.

이승은 씨 일산 가는 택시 잡아타고 합정동 대로(大路)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데 공연히 마음만 쓰렸다. 말만 거창한 기획 일 거든답시고 마음 불편한 사람 더 못 살게만 군 게 못내 미안하다. 이제 헤어질 때 되어 술 자꾸 받아주마 해보지만 그네 쌓인 피로만 더해줄 뿐.


책은 누가 만드나? 손수 눈과 어깨를 놀려 책이라는 신묘한 물건 세상에 내는 이들이 없다면 한갓 문장만으로 무슨 소용 있을까?

필자연(筆者然)하는, 형광등 스타트 전구도 못 가는 서생들아, 서푼짜리 재주 믿고 스스로 감탄하고 잘난 척 말괘라! 무명(無明)의 피로가 온전히 그대 것이라 믿는 책 속에 감추어져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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