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턱의 국화는 다른 꽃이 져야 피는데

'국화 사랑 학교 사랑' 실천, 여수 서초등학교 노판기 교장

등록 2001.11.09 21:58수정 2001.11.1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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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고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읊었다.

활짝 핀 국화꽃을 보노라면 살갗으로 가을을 느끼게 한다.
동양적인 이꽃은 그 생김새와 향기로 하여 난초, 대나무, 매화와 더불어 사군자의 하나로 높이 칭송되고 있다. 다른 꽃이 다 지고 난 후 쓸쓸할 때 유아독존처럼 피어 자태를 뽐내는 국화의 모습이 너무 좋아 학교에 온통 국화를 심고 장식하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이 있다.

여수 서초등학교 노판기 교장(61).
99년 3월1일자로 이 학교에 부임한 노 교장은 철쭉과 동백, 소나무, 상록수만으로 뒤엉켜있는 학교 운동장 주변과 정원에 국화를 심어 조화를 이루기로 했다. 우선 학교 뒤뜰 약40평 규모 1동, 본관 옆 공터에 8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2동을 만들었다.

그 후 여수시 농촌지도소에 꽃꽂이용 국화 줄기 공급을 요청했고 지도소는 10여 종의 대륜종, 중륜종 국화 줄기를 보내줬다. 이 10여 종의 갖가지 국화는 비닐하우스에 가득 심어졌고 이를 정원과 화분에 심어 정성을 다해 길렀다.

그 해 가을 노 교장은 탐스러운 꽃이 만발한 국화 화분 8백여 개를 제1회 서초등학교 학예 발표회 날 학부모들에게 모두 무상으로 나눠줘 모처럼 학교를 찾은 학무모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지금 학교의 가을 정원은 온갖 국화로 치장 되어있다.
녹색장원 사이로 대륜 공작을 비롯하여 황색, 연노랑, 연자주색 등 갖가지 국화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고 평온하다.

2000년과 금년에는 실국화, 공작 등 10여 종의 국화 화분 9백60여 개를 길러 11월 초 바자회를 통해 학부모와 인근 주민들에게 판매했다.
이를 통해 거둬들인 매년 8백여만 원의 수입은 모두 체육부 기금으로 쓰여졌다.


이 학교 체육부 가운데 육상부는 전통을 자랑하고있다. 지난 10월 도 평가전에서 금메달 7개, 은메달 6개로 학교 단위에서는 최고의 성적을 거양했다. 또한 서초등학교는 여수에서는 유일하게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이다. 운동장에 야구 전용구장을 갖고있으며 팬스와 서치라이트도 설치되어있다.

체육부 지원을 위한 국화 재배를 이해한 교사와 사무원 기능직 등 30여 명의 모든 직원들도 참여해 이제는 국화 재배 전문가가 되다 시피 됐다.


이제는 물 한 번 주는데에도 3시간이 넘게 걸려 노 교장 한사람만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다. 노 교장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학교에 나와 국화에 물을 주느라 하루해를 넘긴다. 국화 사랑이 학교 발전에도 적잖은 보탬이 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거를 수가 없다.

노 교장이 국화를 좋아하고 기르기 시작한 것은 최연소 교감이 된 80년부터이다. 당시 돌산 금봉초등학교 부임하여 국화 기르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국화와 함께 해온 것이 이제는 20년을 넘어섰다.

노 교장은 내년 8월이면 정년이다.
국화꽃의 생명은 그 그윽하며 짙은 향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그 아름다운 자태가 조금도 오만하거나 강렬하지 않아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는 꽃이다. 이런 국화가 학교에 등장하면서부터 학생들의 밝은 생활에 도움을 주고 자연 사랑의 정신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화 사랑 학교 사랑”이라는 푯말처럼 학생들 스스로가 국화를 아름다움으로 느끼는데서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도 지극해지고 있다.

6학년 모 어린이는 일기장에 “오늘도 교장선생님은 국화를 기르느라 땀을 흘리신다. 아름다운 국화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우리는 꽃을 사랑해야 되겠다”고 쓰기도 했다.

겨울 문턱에 있는 지금 학교정원은 물론이고, 교실에도 비닐하우스에도 고결한 품격을 지닌 국화에서 뿜어내는 향기가 산뜻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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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기자임. 80년 해직후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밥벌이 하는 평범한 사람. 쓸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것에 대하여 뛸뜻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항상 새로워질려고 노력하는 편임. 21세기는 세대를 초월하여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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