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중국 혁명 정신이 싹튼 곳

<책들고 떠나는 중국여행18> - 광저우와 ‘아Q정전’

등록 2001.11.12 18:56수정 2001.11.1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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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비참하게 형장을 향해 끌려가고 있다. 그의 이름은 아Q다. 그는 반역의 혐의가 있다. 그는 순간 4년전 산기슭에서 만난 굶주린 늑대의 눈을 기억한다. 흉악하면서도 겁을 내는 그 눈은 도깨비불처럼 빛나면서 그의 살가죽을 꿰뚫는 것 같았다. 이제 그 늑대의 이빨이 총알이 되어 아큐의 가슴을 곧 뚫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큐가 총살형을 당해 즐겁지 못하다. 총알이 날아가 가슴을 박아 죽이는 총살형은 참수에 비해 그다지 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 루쉰이 아큐를 통해 마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또 사람들이 자신을 죽여 그 피로 만두를 해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피해망상증’에 걸린 모씨 동생을 그린 ‘광인일기’를 통해 그리고자 했던 것은 또 무엇일까. 또 자식에게 공부를 시켜서 뭐하겠느냐는 지식인의 자조가 담긴 ‘쿵이지’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중국인의 정신개조였다. 광인일기에서 “역사책에는 연대가 없고 어느 페이지에나 ‘인의도덕’(仁義道德)이라는 글자가 비스듬히 쓰여 있었다... 한밤중까지 자세히 들여다 보았는데 글자와 글자 사이에 가득 씌어있는 두 글자는 ‘식인(食人)이었다”라고 말한다.

중국이 서구 제국주의에 유린되고, 내부는 전통과 현대의 갈등으로 혼돈에 있을 무렵 당시에 대한 통렬한 메스였다. 루쉰은 일본에서 의학을 배우려다 중국인의 육체의 병을 다스리기 보다는 마음의 병이 중한 것을 앓고 귀국해 문학과 교육으로 정신개조 운동을 벌인 근현대 가장 대표적인 지성이다.

광저우는 루쉰과 그리 깊은 인연을 가진 도시는 아니다. 루쉰이 47세이던 1927년 1월 샤먼(廈門)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중산(中山)대학에 교수로 취임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4월 국민당 우파의 반공 쿠데타를 맞아 9월에 피신의 형태로 이곳을 떠나게 된다. 루쉰과 광저우의 인연은 짧았지만 중국 근현대사가 만났던 변화의 물결속 가장 가파른 용소에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신해혁명의 주역이자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孫文)과 가장 깊은 인연을 가진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광저우의 의미는 남다르다.

따라서 광저우 여행은 복잡하기 그지 없는 중국 근대사 여행의 일부다.

반골의 땅에서 개발의 땅으로

홍콩과 맞닿은 선전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는 1시간 만에 승객을 광저우 동역에 내려놓는다.

광저우 시에서 역사적 산물로 만날 수 있는 것 가운데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없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내 중심에 자리한 공원과 쑨원의 문화적 유산이다. 이곳에 ‘중산기념비’와 기념관이 있다.


광저우에 가장 대표적인 휴식시설인 월수(越水)공원에는 광저우의 도시 설립의 주인공인 다섯 마리 양(五羊)의 신화를 담은 석상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경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장면이 있다. 경악에 가까운 발전을 거듭한 광저우 지역은 중국 경제의 1/3을 차지할 만큼 엄청난 규모와 생산력을 갖고 있다. 광저우가 역사의 급류를 탄 것은 근대다.

광저우는 쑨원의 정치적 고향이다. 반청운동(反淸運動)을 벌이던 쑨원은 격랑속에 유랑하다가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 광저우를 중심으로 국민당계의 지방정권을 수립해 중국에 대한 장악력을 키우려 한다. 그는 국공합작으로 북벌을 꿈꾸지만 결국 객사한다.


삼민주의로 대표되는 그의 사상은 태평천국(太平天國)의 혁명적 전통을 이어받고, 서구 근대사상을 결합한다. 그런 광저우를 키운 것은 물론 광저우다. 광저우는 신해혁명의 촉매제인 황화강사건(黃花岡事件)이 발생한 것은 물론이고 태평천국의 난에 중심무대의 하나였다. 태평천국의 주도자 홍수전의 고향도 광둥이기 때문이다.

루쉰-쑨원은 지금은

중국의 대표적인 근대 지성인 루쉰은 작가라기 보다는 사상가의 풍모가 강하다. 그의 소설들에 담겨있는 것들은 문학적 기교에 앞서서 중국 사상의 문제점, 중국인들 성격의 문제점, 역사를 보지 못하는 문제점, 탐익하기 쉬운 문제점 등을 문학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또 그 스스로가 희망을 키우는 교육에 강한 열정을 보였었다. 물론 루쉰의 마음의 고향인 당연히 저지앙(浙江)성 샤오싱(紹興)이다.

1881년 샤오싱에서 태어난 그는 18세부터 난징(南京)에서 학업을 시작해 일본으로의 유학, 샤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에서 창작과 교육활동을 벌이다가 1936년 1월 56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1911년 실패한 신해혁명의 유산을 붙잡고, 1918년부터 10여 년간 집중적으로 세상에 대한 번민을 문학작품으로 드러냈다. "신해혁명의 실패로 청년시절 내내 키워온 사회변혁에 대한 열망이 무참히 좌절된 절망적인 현실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당대 중국 사회에 드리워진 ‘암흑’의 근원을 묘파하는 데 혼신”(전형준의 ‘작품집’ 평에서)을 바쳤다.

루쉰이 보는 지금, 미덥거나 말거나

사실 루쉰이 그리던 20년대 중국의 현실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 임화, 박태원 등도 한국의 현실을 루쉰과 비슷한 시각에서 그렸다. 루쉰은 물론이고 우리의 작가들도 절망과 희망을, 때로는 냉소를 퍼부었다.

루쉰이 하늘에서 광저우와 중국을 내려보는 감회가 어떨까. 거짓된 ‘인의도덕’의 사상은 여전히 중요한 사상으로 대우받고 있다. 또 폐병환자에게 주기 위해 총살당하는 사형수들의 피를 만두에 묻히지는 않지만 공개적인 처형에 몰리는 군중의 숫자도 이전과 같다. 그가 한때 강의를 하던 중산대학 교정의 풍경도 예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남방의 정원답게 캠퍼스 곳곳에는 사시사철 껴안은 젊은 이들의 다양한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혼돈속에 무엇인가가 만들어져 간다. 그 만들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수 있는 이는 드물다. 루쉰도 그 작품에 대해서 분명히 고깝게 생각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아Q정전’, 역사이해하며 읽으면 좋아

‘아Q정전’은 중국 관련 문학작품 가운데 가장 넓고 다양하게 번역됐다. ‘아Q정전’은 전형준(창작과 비평사 간),  정노영(홍신문화사 간), 허세욱(범우사)본을 포함해 ‘아Q정전·광인일기’으로 번역된 정석원(문예출판사 간)본 등 적지 않은 이가 번역출간했다.

루쉰의 작품을 읽는 가장 큰 문제는 과연 그를 역사적인 인물과 그 작품으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문학작품을 해석하는데 중점을 두어 읽을 것인가의 문제다. 중국에서도 80년대 후반들어 “먼저 루쉰이 있는 그 자리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대두되어 그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루쉰의 소설을 문학적으로만 읽는 다는 것은 지나치게 딱딱할 뿐만 아니라 흥미를 갖기 어렵다. 

루쉰이 주로 창작하던 1910년에서 30년대까지 중국 현대사를 알아가면
서 루쉰의 문학작품을 읽는 것도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 
그의 시대를 이해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책은 조너선 스펜스의 ‘천안문’(이산 간)이 될 것 같다. 

루쉰 소설의 번역본은 제외하고 루쉰의 전기나 주변에 관한 기록들도 출간되었다. 전인초의 ‘민족혼으로 살다 : 루쉰 그 위대한 발자취를 찾아’(학고재 간)나 왕샤오밍의 ‘인간루쉰’(동과 서 간)와 번역집도 낸 전형준 교수의 ‘루쉰’(문학과 지성사 간)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영복 교수의 ‘루쉰전’도 찾아서 읽을 만하다.

덧붙이는 글 ‘아Q정전’, 역사이해하며 읽으면 좋아

‘아Q정전’은 중국 관련 문학작품 가운데 가장 넓고 다양하게 번역됐다. ‘아Q정전’은 전형준(창작과 비평사 간),  정노영(홍신문화사 간), 허세욱(범우사)본을 포함해 ‘아Q정전·광인일기’으로 번역된 정석원(문예출판사 간)본 등 적지 않은 이가 번역출간했다.

루쉰의 작품을 읽는 가장 큰 문제는 과연 그를 역사적인 인물과 그 작품으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문학작품을 해석하는데 중점을 두어 읽을 것인가의 문제다. 중국에서도 80년대 후반들어 “먼저 루쉰이 있는 그 자리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대두되어 그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루쉰의 소설을 문학적으로만 읽는 다는 것은 지나치게 딱딱할 뿐만 아니라 흥미를 갖기 어렵다. 

루쉰이 주로 창작하던 1910년에서 30년대까지 중국 현대사를 알아가면
서 루쉰의 문학작품을 읽는 것도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 
그의 시대를 이해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책은 조너선 스펜스의 ‘천안문’(이산 간)이 될 것 같다. 

루쉰 소설의 번역본은 제외하고 루쉰의 전기나 주변에 관한 기록들도 출간되었다. 전인초의 ‘민족혼으로 살다 : 루쉰 그 위대한 발자취를 찾아’(학고재 간)나 왕샤오밍의 ‘인간루쉰’(동과 서 간)와 번역집도 낸 전형준 교수의 ‘루쉰’(문학과 지성사 간)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영복 교수의 ‘루쉰전’도 찾아서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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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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