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등 친일 행적이나 권력야합의 전력이 확실한 이들의 죽음 앞에 나는 어떠한 경의를 드러낼 수 없다. 그것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문단은 그들에 대한 호불호를 드러내는데, 적지 않은 반감이 있다. 살아있을 때, 그리하고 죽을 때도 그러하면 문인의 도덕성이나 추태는 언제 누가 밝혀야 하는가. 아니면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문인은 행적에 상관없이 텍스트만을 갖고 잘하네, 못하네하는 평가를 내려야할까.
사실상 그런 행적과 텍스트 둘 모두에 존경심을 가질만한 작가가 드문 세상에 박완서 선생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존경스럽다. 볼혹의 나이에 등단해서, 누에처럼 뿜어낸 작품들은 문학적인 성취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맵고, 험난한 가정사는 물론이고 한국에서 여성의 처지는 물론이고, 가족이라는 제도의 모순 등 우리 사회 내부에 암초처럼 자라는 독소들을 드러내는 일에도 누구보다 우선했다."
박완서 선생님. 그간 안녕하신지요. 제가 사는 중국 톈진은 겨울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짙은 안개들이 아침 저녁으로 사위를 감쌉니다. 서울이나 선생님이 사시는 아차산 아래 마을도 그러하겠지요.
전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팬레터를 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팬레터라기보다는 호소에 가깝군요. 선생님 앞 머리에 있는 글은 제가 올초 선생님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쓴 독서일기의 앞 부분에 쓴 글이랍니다.
전 선생님의 팬입니다. '아주 쓸쓸한 당신'을 읽고 즐거워서 쓴 99년 벽두의 독서일기에는 "99년의 시작은 박완서의 소설들과 함께 해서 즐거웠다"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위의 글은 전혀 고쳐진 것도 아니고, 제 홈페이지에 가면 다시 볼 수 있는 잡문들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 존경으로 인해 이번에 언론에 보도된 이문열과 관련된 보도는 저에게 너무 당혹스러웠습니다. 사실 누가 어떤 의견을 내놓은 거야 당연합니다. 더욱이 선생님처럼 저명한 분이 그랬다는데야, 모든 이들이 다시금 사건을 생각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다시금 사건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선생님에게 편지 형식으로 글을 올립니다. 제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글을 올리는 것은 이미 저 역시 그 문제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곳을 통해 이문열 씨의 행위를 '문학적 마스터베이션'으로 지칭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퍼포먼스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오마이뉴스를 통해 이문열 씨의 책 반납운동을 봤습니다. 좀 섬뜩하더군요. 가슴도 아팠습니다. 평소에 이문열의 행위를 비난하던 이들도 그 기사에 대해서 비판하는 이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들의 천진한 모습 앞에 나중에 그것을 즐거운 퍼포먼스로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좀 편해지더군요. 물론 당하는 이로서는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자식도 있는 이가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과정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어떤 갈등이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갈등을 담아두고 안에서 문드러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 아닙니까. 이문열 씨를 통해 비롯된 홍위병 논쟁이나 곡학아세 논쟁이 그렇게 부정적일까요. 전 그렇게 보지 않는답니다. 홍위병이 뭔지도 몰랐을 많은 이들이 '홍위병'에 대해서 알았고, 문화대혁명에 관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혹시 보셨는지 모르는데, 이곳저곳의 자유게시판에서 오가는 논쟁은 상당한 수준도 있었습니다. 이런 논쟁이 무의미한 것이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헤겔이나 노자(老子)도 말했지만 세상사 모두에는 그 사건 자체에 부정과 긍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 긍정에도 눈을 한번 돌려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이 논쟁은 누구보다 이문열 씨가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홍위병'이라는 쓰지 않아도 될 표현을 써서 시끄럽게 만든 것도 이문열 씨고, 다음에 두 군데의 시사월간지와 인터뷰해 더 복잡하게 한 것도 이문열 씨고, 최근에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라는 시비성 짙은 책을 내서 이 문제를 재론시킨 것도 이문열 씨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이 논쟁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문단에서 그 가치가 바랜 그로서는 이런 논쟁을 통해 가십의 중심에 서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덕분에 동정도 받고, 책도 팔구요. 부탁컨대 선생님께서 직접 이문열 씨에게 왜 이 논쟁을 지속시키는지 물어주십시오.
이번에 선생님께서는 많이 분노하시면서 "내가 이문열 씨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에겐 최소한 그런 상처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인터뷰에서 하셨더군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상처'가 무엇인지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번 논쟁은 이문열 개인에 대한 무엇보다는 조선일보와 연관된 '언론권력' 논쟁 등 많은 것들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상처받는 이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상처는 모두가 나눠갖습니다. 그 일을 주도했던 이들도 모두 일반인들입니다. 자신의 주변에게 이상한 손가락질을 받으며 그 일을 행한 이유를 한번 들어보세요. 그리고 선생님의 '문예중앙' 인터뷰가 나간 후 언론의 반응만 보셔도 언론의 편향성과 권력성, 단장취의, 자가당착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실 듯합니다.
선생님이 쓰셨는지 중앙일보 기자가 썼는지 모르지만 '분서갱유'라는 표현도 있더군요. '분서갱유' 역시 남의 역사라고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진시황제가 명백히 잔혹한 황제이기는 하지만 중국사에서 갖는 의미가 있고, 그가 당시에 행했던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의 논쟁에서 그런 정책을 취한 이유도 있습니다. 또 이후에 수천 년 동안 정치적 헤게모니가 장악한 유가에 의해 변질됐을 진시황제의 역사도 한번 잘 살펴 보셨으면 합니다.
편지가 지나치게 길어진 감이 있군요. 이제 접을까 합니다. 제가 상당히 오래 고민한 끝에 이 편지를 드리는 것은 제가 선생님에게 갖고 있는 존경심의 크기가 그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신난한 삶 속에서 진주같은 작품을 내셨고, 그것이 작품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 작품 속에서 선생님의 삶에 대한 지극한 본성도 만나고, 힘에 의한 억압의 문제들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억압받는 여성들의 대변자였고, 비자 발급조차 까다롭기 그지 없는 미국의 횡포에 분노하셨고, 노년의 사랑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으시지 않았습니까. 전 선생님의 글을 사랑해서 모두 읽고, 독서일기도 씁니다.
전 얼마 전에 중국여행 가이드 북을 하나 냈습니다. 출판사에 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조선일보에 광고를 싣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좀 주저주저하면서 마지막 부탁을 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의 종신심사위원이시지요. "옛말에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고, 외밭에서는 신발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말을 아실 겁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은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기우처럼 말씀을 드리자면 지나치게 그들의 이야기만을 듣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선생님의 이데올로기관을 지나치게 경직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합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사색의 틀을 고정시키는 느낌도 듭니다. 제가 많이 건방지지요.
전 젊고 아직 판단을 고쳐야 할 일도 많습니다. 또 전 세상에 대한 견문도 짧고, 지식도 부족합니다. 제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다시 깨우쳐 주십시오.
겨울이 다가옵니다. 선생님이 계시는 아차산 아랫골에는 이미 서리가 내렸을 듯합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시구요, 좋은 작품도 기대합니다.
하늘나루(天津)에서 선생님의 팬 조창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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